내일의 눈
평면적 사고와 곡면의 진실
평면 위에 그린 삼각형 내각의 합은 180도다. 그러나 곡면인 구 위에 삼각형을 그리면 내각의 합은 180도를 넘어 최대 270도까지 벌어진다. 같은 삼각형이라도 2차원에서 3차원으로 차원을 확장하는 순간 기존의 규칙과 상식은 완전히 달라진다.
국회의 입법기능이 마비되고 정책 사각지대가 길어지는 이유도 이러한 ‘차원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사안을 고정된 구도로만 바라보는 한 해법은 나오지 않는다. 현장의 맥락과 실제 작동 구조를 반영하는 ‘차원 전환’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소모적인 갈등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언급으로 재부각된 미프진(임신중지 약물) 도입 논의 역시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이 절실한 사안이다. 기존의 평면적 프레임 속에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두 가치가 정면으로 충돌한다. 찬반 논쟁이 수년째 평행선을 달리는 사이 음지에서는 출처불명의 불법 직구 약물이 유통되며 여성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회색지대가 방치돼 왔다.
이 소모적인 대립을 끝내려면 질문의 축부터 바꿔야 한다. 핵심은 단순히 ‘약물 허용 여부’를 묻는 것이 아니라 ‘발생 가능한 위험을 어떤 의료·사회적 인프라 안에서 관리할 것인가’다. ‘권리 대 생명’이라는 평면적 대립을 ‘음성적 방치 대 제도적 관리’라는 입체적 설계의 문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얘기다.
유사한 진통을 겪은 끝에 해법을 찾아낸 선례가 있다. 바로 ‘위기임신 보호출산제도’다. 제도 도입 초기 논의는 ‘영아 생명보호를 위한 익명 출산 허용’과 ‘양육 포기 유발 및 아동의 알권리 침해’라는 대립 구조에 갇혀 있었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면 다른 쪽의 가치가 허물어지는 제로섬 구조였다.
해법은 상황변화에 맞춘 단계적 설계에서 나왔다. 출산 직후의 긴박한 시점에는 익명성을 통한 생명보호를 최우선으로 제공하고, 이후 상담 과정을 거쳐 직접 양육을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열어뒀다. 나아가 아동이 성장한 뒤에는 일정 요건 하에 출생기록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도 마련했다. 익명성과 알권리를 단순한 대립 항목이 아니라 상황과 필요에 따라 순차적으로 작동하는 요소로 조율해 낸 것이다.
시행 2년을 맞은 보호출산제도는 보완할 점이 여전히 남아 있지만 병원 밖 출산과 아동 유기가 줄고, 국가의 상담·보호 체계 안에서 실질적인 지원이 가능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평면에 갇힌 사고로는 곡면의 진실을 담아낼 수 없다. 정치권의 극단적 대립으로 입법이 마비될 때마다 그 피해는 오롯이 국민에게 돌아간다. 고정관념에 갇힌 가치투쟁을 그만두고 현장의 맥락을 유연하게 담아내는 유기적인 시스템 설계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