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인사제도 개편 논란 확산
‘향찰’ 끊겠다며 순환근무 확대 추진
경감까지 적용 검토 … 현장 “감찰 실패를 인사로 해결” 반발
직협 연석회의·삭발투쟁 예고 … 해외는 위험보직 중심 운영
‘장윤기 사건’을 계기로 경찰청이 경감까지 순환인사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경찰 인사제도 개편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경찰청은 장기 근무에 따른 지역 유착 가능성을 차단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현장에서는 감찰과 지휘·감독 실패의 책임을 일선 경찰관의 인사 이동으로 돌리는 것 아니냐는 반발도 나온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이상식 의원(더불어민주당)이 26일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달 기준 동일 경찰서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경감 이하 경찰관은 1만7130명이었다. 계급별로는 경감 5209명, 경위 8697명, 경사 3211명, 경장 13명이었다. 경감은 전체의 18%, 경위는 24.2%로 각각 5명 중 1명, 4명 중 1명꼴로 같은 경찰서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역마다 달랐던 장기 근무 = 장기 근무는 지방에서 두드러졌다. 서울경찰청의 장기 근무 비율은 8.4%였지만 전북은 23.8%, 충북 21.7%, 충남 21.2%, 경북 20%, 경남 19.1%였다.
반면 장윤기 사건이 발생한 광주경찰청은 2.6%로 전국 평균보다 낮았다. 하지만 사건 관계자인 광산경찰서 A 경감과 장씨의 부친 장 모 경감은 특정 경찰서에서 장기간 근무한 이력이 확인됐다.
경찰청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특정 지역에서 장기간 근무하며 형성되는 이른바 ‘향찰’ 관행이 지역 유착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내년 상반기 시행을 목표로 경감까지 순환인사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장기 근무 기준과 권역별 순환 범위, 예외 적용 대상 등 세부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은 경찰청 업무보고에서 경사급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경찰 내부 반발도 확산하고 있다. 전국경찰직장협의회는 오는 29일 경찰청에서 전국 단위 직협 연석회의를 열고 경찰청의 순환인사 확대 방침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회의에는 전국 단위 직협 대의원과 직협 미가입 단위 회장 등 150여명이 참석한다. 참석자들은 감찰인력 증원과 강제 순환인사 대응, 실질적인 경찰개혁 방안 등을 논의하고 순환인사 확대에 반대하는 릴레이 삭발 투쟁의 방식과 장소도 결정할 계획이다.
◆경찰 조직 안팎의 온도차 커 = 현장에서는 지방청 단위 채용을 전제로 생활 기반을 마련한 경찰관에게 광역 단위 순환인사를 확대할 경우 사실상 전근과 같은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민관기 전국경찰직장협의회 위원장은 “순환인사 범위를 전국으로 확대하는 것이 사건의 근본 대책이 될 수는 없다”며 “경찰관들은 지역별 채용을 통해 생활권을 형성해 근무해 온 만큼 광역 단위 순환인사는 생존권과 주거 안정을 흔드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문제의 핵심은 장기 근무 자체가 아니라 감찰과 지휘·감독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데 있다”며 감찰 기능 강화와 실효성 있는 경찰개혁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찰 내부에는 다른 의견도 있다. 수도권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순환근무 확대에 대한 내부 반발은 예상된 일이지만 제도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며 “지방은 학연과 지연 등 지역 인적 네트워크가 촘촘하게 형성돼 있어 장기간 같은 생활권에서 근무할 경우 유착 논란이 생길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문제는 순환 자체보다 관사와 이전비·교통비 지원 등 현실적인 대책 없이 제도를 시행할 경우 현장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제도 시행에 따른 재정 부담도 적지 않다. 경찰은 지방청 단위 채용 체계를 운영하고 있어 순환 범위가 넓어질 경우 인사 운영 체계 전반을 손질해야 한다. 경찰청은 관사 제공과 거리별 교통비 지원 등을 검토하고 있지만 지원 대상과 재원 규모는 아직 구체화하지 않았다. 적용 대상이 경위와 경사까지 확대될 경우 예산 부담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수사 전문성 유지 역시 중요한 과제다. 조직범죄와 경제범죄, 사이버범죄처럼 장기간 사건을 추적하는 분야는 담당자의 경험 축적과 수사의 연속성이 중요하다. 반면 같은 생활권에서 장기간 근무하면 지역 유착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결국 부패 예방과 전문성 확보라는 두 과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인사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이번 개편의 핵심이라는 지적이다.
◆“일률적 순환보다 맞춤형 관리” 목소리도 = 해외에서도 순환근무만을 부패 방지 대책으로 운영하지는 않는다.
영국은 부패 위험이 높은 보직을 중심으로 순환 원칙을 적용하면서 전문 분야의 연속성을 함께 고려한다. 일본 역시 전국 단위 일률 순환보다 지역 경찰 중심의 인사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홍콩 염정공서(ICAC)는 순환근무와 함께 업무 분리와 내부 감사를 병행하고 있으며,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도 순환근무는 이해충돌 관리와 내부통제가 함께 작동할 때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권고한다.
경찰 안팎에서는 전국 단위 일률적 순환보다 장기 근무자와 부패 위험이 높은 보직을 우선 대상으로 한 권역별 순환이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생활권과 전문 분야를 함께 고려하면 지방 인력난과 전문성 저하를 최소화하면서 지역 유착 가능성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경찰관은 “순환근무는 필요하지만 기간과 범위를 일률적으로 정하기보다 지역 여건과 생활권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5년이 적절한지, 7년 또는 10년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도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관은 “13만여명의 경찰관을 일률적으로 순환 배치한다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데다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킨다”면서 “대상자에 대한 실질적 인센티브를 마련하면서 유착 가능성을 줄일 인사·감찰 대책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순환인사 확대 자체보다 어떤 기준과 원칙으로 제도를 설계하느냐다. 적용 대상과 범위, 전문 보직의 예외 기준, 생활권 보호 대책을 먼저 명확히 하고 감찰과 지휘·감독 체계를 함께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근무지만 바꾸는 방식만으로는 장기 근무에 따른 유착 우려와 조직 내부의 구조적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