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한미 관세협상과 시민의 역할

2025-11-14 13:00:00 게재

관세와 보호무역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미국 트럼프정부의 무역정책은 15~18세기 중상주의 정책의 재림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아담 스미스, 존 스튜어트 밀, 알프레드 마샬 등 전통적인 고전 경제학자들은 관세정책에 부정적이었다. 관세가 시장의 효율성을 낮추고 자유로운 무역의 증진을 저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면, 케인즈주의에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 수단 중 하나인 보호무역 조치로서 관세정책을 어느 정도 활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후 등장한 신자유주의 노선을 취한 각국 정부들은 대체로 관세를 낮추려는 정책을 취해 왔다.

세계 무역질서 당분간 미국이 정한 규칙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

한국은 김대중정부 이래 여러 나라들과 관세를 없애거나 낮추는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해 왔으나 트럼프정부의 등장으로 중대한 전환점에 직면했다. 세계 무역질서는 당분간 자유무역의 확대에 기초해 구축된 기존 거래 질서와 함께 주요 국가나 경제블록과 미국의 양자협상에 의한 무역질서가 병존하게 될 것 같다. 협상력이 부족한 나라들은 미국과 거래하려면 미국정부가 정한 규칙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각국이 복제 금관, 황금 골프채, 황금 롤렉스 등 온갖 선물을 바치며 미국정부와 협상을 하는 촌극이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이번 한미 관세협상을 보면서 3500억달러를 한국정부가 직접 현금 투자하라는 미국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한국정부의 직접 투자 규모를 10년간 2000억달러, 한해 200억달러로 한도를 낮춘 것만 해도 그나마 다행이라는 의견이 많다.

한국정부가 원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 아니므로 지금까지의 협상 결과에 대해 비판만 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런 중차대한 문제에 직면해 아직까지 시민들이 제대로 목소리를 낼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점은 대단히 아쉽다. 정부는 이제라도 그동안의 협상 결과와 쟁점, 투자재원 조달방안 등을 제대로 설명하고 각계 각층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한국 시민들의 입장, 국회의 의견이 앞으로 계속되는 한미 정부간 협상에 지렛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3500억달러 투자금은 투자도 안한 미국정부가 수익의 절반 이상을 가져가기 때문에 과거 시장 상인들에게 같은 자리에서 장사를 계속할 수 있게 해준다는 속칭 ‘자릿세’와 다를 바 없다. 따라서 남은 트럼프정부 3년의 기간 동안 한미 관세협상으로 만들어질 투자펀드에 한국정부가 돈을 투입할 시기를 늦추고 투입을 최소화할 길을 찾아야 한다.

정부는 3년 후 미국 정부와의 전면 재협상도 각오해야 한다. 또한 3500억달러 펀드의 투자처와 투자금액에 대한 의사결정권을 한국정부가 잃으면 안된다. 따라서 투자금 집행에 있어 상업적 합리성과 공동 의사결정을 최대한 내세울 필요가 있고, 한국 기업의 미국 진출 분야에 최우선적으로 투자되도록 해야 한다.

상업적 합리성과 공동 의사결정 최대한 내세울 필요

만약 미국 연방대법원이 미국정부의 상호관세 부과를 위법하다고 판결할 경우 미국정부는 품목별 관세를 확대할 것이 예상되고, 이 경우에도 미국정부는 한국정부가 약속한 투자 펀드를 반드시 관철시키려고 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정부가 기존 투자 약속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된다. 때문에 미국 연방대법원이 상호관세를 위법하다고 판결할 경우 이를 관세 및 투자 관련 합의의 일정을 최대한 늦추는 기회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번 협상을 통해 특정 기업들이 보게 될 이익을 사회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환수할 것인지, 그리고 10년에 걸친 미국 투자로 인한 정부의 국내 지출 여력 축소나 국채 발행 같은 우려 사항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등에 대해 정부는 시민들에게 솔직하게 상의를 구해야 한다.

이강훈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