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깐부치킨' 회동이 의미하는 것
2025년 10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맞춰 이뤄진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의 방한은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새로운 리더의 전형을 보여줬다. 그는 깐부치킨 매장에서 한국의 재벌 총수들과 같이 하던 치맥파티, 지포스 게이머데이, APEC CEO 서밋에서 이뤄진 기조연설, 이재명 대통령과의 환담으로 30여시간의 짧은 일정을 알차게 소화했다.
그 바쁜 와중에서 도착한 당일 밤 한시간여 넘게 한국 엔비디아 직원들과 별도의 치맥파티까지 했다는 후문이 들리는 것을 보니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한 것 같다. 젠슨 황과 가까이 일해 본 경험이 있는 필자로서는 이번 방한의 일정이 그의 한국에 대한 경험과 인식을 잘 드러내 준 것이어서 흥미로웠다.
사업을 시작한 후 첫 인연을 아주 중시하는 젠슨 황
젠슨은 사업을 시작한 후 첫 인연을 아주 중시해왔다. 공동창업을 한 크리스는 아직도 엔비디아에서 같이 일하고 있으며, 자신에게 처음 투자한 벤처 캐피탈리스트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엔비디아 이사회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젠슨이 처음 웨이퍼를 만든 후 칩으로 못 만들어서 애를 먹을 때 처음 손을 내밀어준 대만의 SPIL이라는 반도체 패키징 업체는 현재까지도 계속 사업관계를 이어오는 든든한 파트너다.
그럼 한국에서 그를 처음으로 알아본 사람은 누구일까? 최소한 젠슨은 그 사람을 지포스를 활용하는 한국의 젊은 게이머들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지포스의 시장점유율이 90% 안팎인데, 비슷한 시기 전세계의 지포스 시장점유율은 60% 내외였다. 한국의 높은 시장점유율의 이유를 파악하고 그 전략을 다른 나라 시장에서도 확산 적용하라는 젠슨의 지시는 항상 단골메뉴였다. 그래서 직접 용산 전자상가를 돌아다녔으며, 한국 시장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항상 갖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의 대기업과의 비지니스 과정은 지포스를 판매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어려움과 지난한 과정이 있었다. 삼성전자가 2010년대 중반 HBM 개발 제안을 거절한 사연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젠슨은 비지니스 관계에서 준비되어 있지는 않더라도 꿈과 비전을 평가하고 인정한 최초의 파트너와 평생의 관계를 맺어 온다. 한국에서는 이들이 바로 지포스 게이머들이다. 그래서 그가 이번 방한에서 그 게이머들을 위한 행사를 하고 그 행사 직전에 깐부치킨으로 기업총수를 불러내는 이벤트를 기획한 것은 자신의 의도를 보여주는 동시에 지포스 게이머들에 대한 감사와 경의의 의미도 있었다고 본다.
전세계 시가 총액 1위 기업의 CEO로 한국을 방문하면서 그에 걸맞는 광폭 행보 (GPU 26만장 판매 계약)도 있지만, 자신의 성장기에 자기를 한국에서 가장 먼저 알아봐 준 지포스 마니아들에게 감사 행보를 보여준 것이다.
글로벌 인재풀을 관리하는 국가 역량 키워야
한국은 아직도 국가나 큰 조직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젠슨처럼 크게 성장할 사람, 파트너, 벤처·스타트업 기업들을 미리 알아보고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떨어진다. 20여년 전 젠슨을 알아보지 못했으니 지포스 게이머들보다 선구안이 떨어진 것이다.
일단 데이터베이스부터 쌓아야 한다. 필자는 엔비디아에서 일할 때 일상적인 업무 중에 만나고 돌아온 모든 고객정보를 회사 DB에 올리는 것이 중요 업무였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창업벤처혁신실장을 그만 둔 후 미국의 은행에서 업무를 봐야했을 때가 있었다. 필자의 중기부 창업실장 경력도 은행에 공통관리되는 데이터베이스에 입력되어 있었다. 이런 작은 시작으로 미래에 리더로 성장하는 글로벌 인재풀을 관리하는 국가 역량을 키워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