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원화약세의 원인과 대응방안

2025-11-21 13:00:01 게재

최근 달러-원 환율이 빠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일부에서는 1500원 돌파를 점치는가 하면, 최근의 고환율 흐름을 과거 위기 시기와 빗대어 해석하며 불안해 한다.

지난 주 달러-원이 1470원 위로 빠르게 상승하다 20원 이상 급락한 것은 이러한 시장의 불안심리를 잘 보여 준다. 그러나 이번 환율상승을 위기의 전조증상으로 단정하는 것은 과도하다. 환율상승이 언제나 위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환율급등은 오히려 위기의 결과였다. 문제는 외화 유동성 부족에 있었다. 단기 외화부채가 누적된 상태에서 해외 금융불안이 발생하면서 외화조달이 막히고, 외국인 투자자금이 급속히 이탈했다. 그 결과 환율이 급등한 것이다. 현재 외환시장에는 그런 달러화 부족 현상이 없으며 단기외채 규모도 안정적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환율상승의 구조적 배경은 해외투자 확대와 달러 강세

환율이 높은 수준을 보이는 이유는 구조적 변화에 있다. 한국의 경상수지는 여전히 견조한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흑자는 약 1000억달러, 올해 1~9월 누적 흑자도 828억달러로 9개월 기준 사상 최대다. 이렇게 외화가 꾸준히 유입되고 있음에도 원화가 약세를 보이는 것은 외환의 흐름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한국의 국민총저축률은 GDP 대비 약 30% 수준으로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이 자금이 국내 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해외로 유출되고 있다. 국민연금과 보험사, 그리고 개인 투자자들이 원화를 팔고 달러를 사들여 해외 주식과 채권에 투자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예컨대 2024년 한해 동안 한국 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유액은 1100억달러를 넘어섰다.

글로벌 달러 강세도 중요한 요인이다.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달러 약세 전망이 우세했지만 연준의 금리인하가 예상보다 늦어질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달러가치(DXY)는 여름 저점에서 가을 들어 99~100선으로 회복했다.

여기에 미국에 대한 3500억달러 규모의 투자 패키지도 시장에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원화약세는 이러한 투자흐름과 대내외 환경 변화가 만들어낸 결과다. 달러 유동성 부족 때문이 아니다.

높은 환율은 수출기업의 채산성을 개선하고 주가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등 경기회복에 도움이 된다. 외환위기 직후 급등한 환율이 수출 확대와 외국인 투자 유입으로 이어졌던 경험을 떠올려 보자. 최근 환율상승은 우리 경제의 불균형을 조정하고 균형을 회복하는데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변동환율제를 채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 환율이 상승 추세를 보인 배경에는 한국경제의 생산성 둔화와 낮은 투자수익률이 자리하고 있다.

국내에서 형성된 저축이 국내 투자로 이어지지 못하고 해외로 빠져나가는 구조는 성장 잠재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일본식 저성장의 악순환에 빠질 위험이 있다.

변화한 환경 차분히 바라보고 미래 경쟁력으로 연결하는 지혜 필요

막연히 불안해하기보다는 근본적 처방을 찾아야 한다. 환율상승이 두려워 인위적으로 억누르려 하면 부작용만 커질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고환율을 기회로 바꾸는 일이다. 수출기업은 환율상승으로 늘어난 이익에 안주하지 말고 이 기회에 구조조정과 혁신투자에 나서야 한다. 정부는 자본시장 활성화와 금융안정 유지에 힘써야 한다. 변화한 환경을 차분히 바라보고, 이를 미래 경쟁력으로 연결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승헌 숭실대 교수 전 한국은행 부총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