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생산성 향상 없는 AI는 버블이다

2025-11-25 13:00:07 게재

1990년대 미국에서 벌어진 정보통신기술(ICT) 생산성 논쟁은 오늘날 인공지능(AI) 시대에도 동일한 경고를 던진다. 당시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컴퓨터와 인터넷을 도입했지만 정작 매출 증가나 생산성 향상은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다. 최신 장비를 갖추고도 업무 방식은 기존 관행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공지능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만큼 과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범용인공지능(AGI)과 대규모언어모델(LLM)은 폭발적으로 확산되고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투자는 경쟁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현장의 기업들은 인력 역량 결여, 데이터 축적 미흡, 운영체계 미비 등 다양한 어려움을 지속적으로 호소한다. 무엇보다 생산성을 창출하지 못하는 AI 투자는 결국 국가적 자원 낭비와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AI가 제조업의 생산성 혁신에 기여하려면

문제는 AI 자체가 아니라 생산성과 제대로 연결되지 못하는 AI 도입 방식에 있다. 그 해법과 기회는 제조업에서 찾을 수 있다. 제조업은 AI가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성과를 내는 대표적인 산업이다. 제조는 설비·공정·품질·물류가 실시간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운영기술과 AI가 결합할 때 즉각적이며 계량 가능한 성과가 나타난다. 불량률 감소, 설비 가동률 향상, 에너지 절감, 납기 단축은 물론 신제품 신속개발까지 국내외 산업현장에서 확인된 기대효과는 막대하다.

현재 한국 제조업은 중국과의 치열한 경쟁과 글로벌 교역질서 재편에 맞서 새로운 돌파구가 절실하다. 반도체 자동차 조선 이차전지 등 주력산업 전반이 생산성 정체에 빠진 상황에서 AI 기반의 생산성 혁신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이런 맥락에서 인공지능을 도입하며 한국 제조업이 반드시 유의해야 할 세 가지 원칙은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인력·시스템·기술의 황금비율(인력 50 , 시스템 30, 기술 20)을 지켜라. AI 전환의 출발점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과 시스템이다. 현장인력은 데이터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하며, 품질과 공정 분야 인력은 AI와 함께 의사결정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경영진은 이를 전략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공정·품질·물류 운영체계를 AI 기반으로 재설계한 뒤 그에 적합한 기술을 투입해야 한다. 제대로 된 운영체계 없이 기술만 투입하면 금세 ‘시범사업의 함정’에 빠진다.

둘째, 고품질 산업 데이터셋과 공용 플랫폼을 구축하라. AI는 데이터가 없으면 작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많은 제 현장은 여전히 센서 데이터의 수집·축적·가공이 초기 단계다. 산업별 고품질 데이터셋, 대기업·중견·중소·스타트업 등 공급망이 함께 활용할 수 있는 산업 공용 플랫폼이 반드시 필요하다. 표준화되고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 없이는 어떤 AI도 지속적인 성과를 낼 수 없다.

셋째, 산업별 파운데이션 모델을 개발하고 밸류체인 전체로 확산하라. 자동차 반도체 조선 배터리는 공정과 구조가 모두 다르기에 범용 모델만으로는 산업의 세밀한 특성을 충분히 반영할 수 없다. 산업별 특화 데이터로 학습된 파운데이션 모델이 필요하다. 이는 개별 공장을 넘어 협력사·물류·품질·유지보수 등 밸류체인 전체로 폭넓게 확산되어야 한다. 제조 AI 전환의 목표는 한 공장의 성공이 아니라 산업생태계 전반의 경쟁력 강화다.

AI기술을 생산성으로 전환하는 역량 절실

AI 시대의 경쟁력은 기술 보유 여부가 아니라 기술을 생산성으로 전환하는 역량에서 나온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기반을 보유하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명확한 원칙에 따른 산업 AI 전환이다. 버블 우려를 넘어 한국 경제의 다음 성장경로를 여는 가장 확실한 길은 AI를 ‘생산성 혁신의 실체적 도구’로 만드는 일이다.

전윤종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