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팩트시트와 과학기술산업 동맹

2025-11-26 13:00:02 게재

지난 11월 발표된 한미 팩트시트는 단순한 외교문서가 아니다. 한국이 미국과 본격적인 과학기술산업(STI, Science–Technology–Industry) 동맹을 맺고 신냉전의 최전선에 서게 되었음을 알리는 구조적 문서다.

이번 팩트시트에는 한미 군사동맹의 현대화뿐 아니라 한국정부와 기업의 3500억달러 대미 투자(1500억달러는 조선 부문), 반도체 공급망 공동 대응, 전기차·배터리 가치사슬 협력, 조선·해양기술 및 제조 협력, 인공지능(AI)·양자컴퓨팅·정찰기술 협력, 우주·사이버 협력, 핵추진잠수함 보유 승인, 민간 핵농축·재처리 용인 등이 포함되었다.

오늘의 신냉전은 군사·이념 대결이 아니라 AI·반도체·배터리·우주·양자 등 전략기술·산업·공급망·인재를 둘러싼 기술패권 경쟁이다. 첨단기술이 국가경쟁력의 핵심이 되면서 동맹의 중심도 군사에서 STI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이 한국을 전략기술 동맹의 핵심 국가로 편입시키는 배경도 이러한 구조적 변화 때문이다.

오늘날의 신냉전은 군사·이념 대결 아닌 기술패권 경쟁

미국이 STI 동맹을 추진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 전략기술이 군사력을 대체하는 패권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반도체·배터리·조선·정밀제조·희소금속·에너지 공급망을 미국 단독으로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 중국의 기술·제조·인재파워가 급성장해 미국 혼자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넷째, 미국은 동맹국 핵심 산업·기술·금융 기반을 미국 중심 기술·산업 블록에 통합하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팩트시트는 이러한 전략을 제도화한 문서다.

한편 한국이 신냉전의 최전선에 선다는 것은 곧 미중 경쟁의 충돌축에 서게 된다는 의미이다. 한국은 무역·생산·소재공급망 등에서 중국과 깊이 얽혀 있으며, 미국과 STI 동맹이 강화될수록 중국의 대응도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국은 미국 중심 STI 동맹에 참여하면서도 중국과의 관계를 정교하게 관리하는 균형 전략이 필수적이다.

한국의 중국 대응은 세 가지 방향이 필요하다. 첫째, 경제·무역·소재공급망 협력을 탈정치화하고, 일반 무역·제조·내수 중심 분야는 유지하되 전략기술 분야는 미국 중심으로 재구조화하는 세분화 전략이 필요하다. 둘째, 직접적인 기술경쟁은 줄이고, 한국이 경쟁력을 갖추고 있거나 전략적 중요성이 큰 영역(메모리반도체 등)에 선택적으로 집중해야 한다. 셋째, 중국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소재·부품·장비 자립도와 수출입시장 다변화를 강화해야 한다.

STI 동맹은 기회와 위험을 동시에 내포한다. 한국의 미국 기술·시장·데이터·인재 네트워크 접근성은 확대되지만 국내 산업기반 공동화와 기술주권 약화 위험도 상존한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다음 세 가지 구조적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첫째, STI 동맹을 기술성과·산업경쟁력 제고와 경제적 사업성과로 전환하기 위해 국가전략기술(NST) 역량을 강화하고, 국가혁신체계(NIS)를 STI 동맹 구조에 맞게 재설계해야 한다. 둘째, 대미 투자가 국내 공동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전략적 리쇼어링과 민관 공동투자를 강화해야 한다. 셋째, 핵심기술역량 제고 등을 통해 동맹 내부에서 설계권을 확보하는 능동적 전략적 자율성을 구축해야 한다. 동시에 중국 리스크를 줄이는 투트랙 전략도 요구된다.

STI 동맹은 도약의 발판도 구조적 의존의 덫도 될 수 있는 양날의 칼

팩트시트는 한국이 신냉전 기술경쟁의 최전선에서 미국과 STI 기반 초연결 동맹체계의 핵심국가로 이동했음을 공식화한 문서다. 중요한 것은 이 구조적 편입을 수동적 의존으로 만들지 않고, 국가혁신체계 도약, 전략적 자율성 확보, 중국 리스크 관리까지 충족시키는 능동적 국가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STI 동맹은 한국에게 도약의 발판이 될 수도, 구조적 의존의 덫이 될 수도 있다. 선택은 우리가 어떤 전략과 시스템을 설계·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

조현대 기술경영경제학회 명예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