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반전 임박한 원화약세
한국은 역사적으로 세 차례 외환위기를 경험했다. 1980년대 초 외채망국론이 대두됐던 시기, 1997~1998년 IMF 외환위기 국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가 그 사례들이다. 1980년대는 환율이 시장에서 결정되지 않는 고정환율제였기 때문에 환율의 급변동은 없었지만, 나머지 두 번의 위기는 원·달러 환율의 급등과 함께 찾아왔다. IMF 외환위기 때 원·달러 환율은 2000원대까지 치솟았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1600원대에 근접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원달러 환율
최근 원·달러 환율은 1460~1470원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원·달러 환율 상승은 한국과 미국 경제의 구조적인 경쟁력 차이가 반영된 결과다. 일반적으로 경제성장률이 높고, 금리가 높고, 물가가 안정적인 국가의 통화가치가 강해지는 경우가 많다.
2023~2024년 미국의 GDP 성장률은 각각 2.9%와 2.8%였고, 한국은 1.6%와 2.0%였다. 2025년 성장률 전망치도 미국은 1.8%인 반면 한국은 1.0%에 그치고 있다. 3년 연속 미국의 성장률이 한국을 웃도는 사상 초유의 일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2022년 7월부터 시작된 한미 기준금리 역전도 지속되고 있는 현상이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3.75~4.0%인 반면 한국 기준금리는 2.5%로 양국의 금리격차가 크다. 한편 원·달러 환율 상승은 수입물가를 자극해 한국의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게 된다. 두루두루 한국 원화 대비 미국 달러의 가치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횐경이다.
다만 한국이 달러를 벌어들이는 기초체력은 과거보다 현저히 개선됐다. 특정 국가가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는 본질적 역량을 측정할 수 있는 잣대는 경상수지다. 최근 한국의 경상수지는 안정적인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경상수지가 흑자에 안착한 것은 불과 십여년 전의 일이다. 과거 개발연대 시기 한국은 투자에 필요한 국내 저축이 부족해 만성적으로 해외차입에 의존했고, 이는 구조적 경상수지 적자로 나타났다. 1980년대 초 외채망국론이 대두되던 시기 한국의 GDP대비 경상수지는 -9~-7%대의 막대한 적자를 나타내고 있었고, 1997년 IMF 외환위기 국면에서는 -4~-3%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에서는 -0.5~0.8%대의 경상수지가 기록되고 있었다. 반면 최근 한국의 경상수지는 확연히 개선되고 있다. 2024년에는 GDP 대비 3.3~5.4%, 2025년 들어서는 5.7~5.8%의 경상흑자가 누적되고 있다.
요즘의 원화약세는 과거 외환위기 국면들과는 전혀 다르다. 한국과 미국의 펀더멘털 격차는 부정적이지만 이를 과장할 필요도 없다. 2025년 GDP성장률 전망치가 5%대에 달해 미국보다 훨씬 높고, 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12%대에 달하며, 외환보유액도 한국보다 40% 이상 많은 6000억달러대를 유지하고 있는 대만의 타이완 달러도 미국 달러 대비 약세를 나타내고 있기는 매한가지다. 한국 원화만의 약세가 아니라 글로벌 달러 강세라는 코드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요즘 원·달러 환율을 상승시키는 주범으로 내몰리고 있는 한국 가계와 연기금의 해외투자 확대는 강요가 아닌 자발적인 선택이다.
현재 수준은 중장기 고점, 하락 반전 가능성 높아
원·달러 환율의 현재 레벨은 중장기 고점 부근이 아닐까 싶다. 2026년에는 한국과 미국의 성장률 격차가 확연히 축소(현재 양국의 성장률 전망 컨센서스는 1.9%로 동일)될 가능성이 높고, 한미 금리차 역시 축소(한국은 기준금리 동결, 미국은 2~3회 인하 예상)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한국 증시가 미국 대비 큰 폭의 초과수익을 기록한 데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장기 박스권에 머물렀던 한국증시를 떠나 미국으로 향했던 ‘국장탈출은 지능순’이었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점도 원·달러 환율의 하락 반전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