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신기술 강국 토대는 인재 확보부터

2025-12-18 13:00:01 게재

인재 없는 인공지능(AI) 전략은 공허한 설계도에 불과하다. AI 알고리즘을 설계하고 제대로 작동하게 만드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AI 3대 강국’이라는 정부 목표가 현실이 되기 위해선 사람에 대한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

세계는 지금 AI 주도권을 쥐기 위해 투자와 함께 인재 확보에 혈안이 돼 있다. 한국도 AI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지만 그 기반이 될 인재 양성은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한국은 2029년까지 인공지능 클라우드 빅데이터 등 신기술 분야에서 최소 58만여명의 인력이 부족할 것이라고 대한상공회의소는 추산했다.

‘AI 3대 강국’ 목표 내놓았지만 현실 녹록지 않아

이재명 대통령은 ‘AI 세계 3대 강국’ 목표를 제시하고 “AI 투자 100조원 시대를 열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한국은 과학기술 인재 육성은 고사하고 육성해 놓은 젊은 과학인재들마저 해외 유출이 무척 심각하다. 게다가 의과대학 선호현상으로 공대 입학생의 15%가 이탈하는 등 외부와 내부 모두에서 과학 인재 유출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한국은 해외로 이직하는 기술인력이 많은 반면에 해외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인재는 드물어 AI 인재 유출입이 인구 10만명 당 3.6명의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35위로 최하위 수준이다. 이를 반영, ‘디지털 인재 부족’을 AI 활용 확대의 가장 큰 장애물로 지목한 기업이 조사 대상의 절반에 육박하는 43%나 됐다.

한국은행이 최근 국내 석·박사급 이공계 인력 2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43%가 ‘향후 3년 내 해외 이직을 고려 중’이라고 답했다. 20대는 무려 72.4%, 한창 일할 30대도 61.1%가 ‘가능하면 해외로 떠나겠다’는 의향을 보여 미래가 어둡다.

이공계 고급 두뇌들이 해외로 가려는 이유는 분명하다. 국내에서는 최종학위 취득 10년 차 이공계 인력의 평균 연봉이 9740만원에 불과하나 해외 취업을 하면 3억9000만원을 받는다. 국내 의사 평균 연봉도 3억원 수준이다. 또한 대기업의 69%가 AI 인력 확충을 원하고 있지만 국내 임금체계가 연공서열 구조로 되어있어 파격적인 연봉 제시가 어렵다.

기술육성 정책과 제도 개편이 동시에 이루어져야만 인재들이 국내로 되돌아올 계기가 생긴다. 이렇게 가다간 반도체·자동차·조선 등 주요 업종의 K-테크(Tech) 아성이 하루아침에 허물어질 판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기술 인재 육성 방안을 연이어 내놓았다. 교육부는 내년에 총 1조4000억원의 예산을 투입, 초등학교부터 ‘AI 기본 교육’을 실시하고 대학 교직과목에 AI 기본소양 교육을 포함시키며 AI 우수 인재가 5년 반 만에 학사·석사·박 과정을 모두 마칠 수 있도록 ‘패스트트랙’을 신설하기로 했다.

또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AI 융합 분야를 이끌 핵심 연구인력 400명을 육성하는 ‘이노코어(InnoCORE)’ 사업을 적극 전개, 선발된 박사후연구원에 연 9000만원의 연봉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밖에도 정부는 ‘국가과학자’ 제도를 신설, 매년 20명씩 향후 5년간 100명 내외의 세계적 수준의 연구자를 선발해 이들에게 연간 1억원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한편 세계 최대 반도체 설계기업인 영국의 ARM과 협력해 한국에 ‘ARM 스쿨’을 설립,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AI 설계 인재 1400명을 양성하기로 했다.

그러나 과거에도 정부는 ‘과학기술 인재 유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키는 등 인재 확보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기업도 기술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늘 강조해 왔다. 그런데도 인재의 해외유출과 국내 기업의 인재난이 되풀이되고 있다.

우수 이공계 인재유출 막고 ‘기업할 맛 나는 나라’ 만들어야

정부는 우수한 이공계 인재들이 의대나 해외 기업으로 이탈하지 않고 국내에서 연구 활동에 매진할 수 있게 하는 정교한 로드맵을 짜야 한다. 연봉과 보상체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해 기술인력의 국내 유턴을 유도하고 연구 활동을 제약하는 주 52시간 제도와 같은 낡은 규제도 서둘러 완화해야 한다.

이와 함께 교육부·과기정통부·산업통상부·고용노동부 등 여러 부처에 분산돼 있는 인재 정책도 통합, 일관성과 실행력을 강화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정부가 기업경영을 옥죄는 과도한 경영권 개입을 자제하는 등 ‘기업할 맛 나는 나라’를 만드는 일이다.

박현채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