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반도체 클러스터 이전을 위한 조건

2026-01-21 13:00:01 게재

가히 ‘슈퍼 사이클’이라고 할 만하다. D램(8GB) 반도체 현물가는 2024년 말 1.75달러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11월 10달러를 돌파하더니 올해 들어 20달러를 넘어섰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충으로 수요가 급격히 늘어난 덕분이다. 반도체 업황이 향후 2~3년간 계속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무리는 아니다.

이런 상황에 김용범 대통령정책실장이 16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요구하는 전기를 공급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고 걱정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김 실장은 이어 “전력은 백년대계”라면서 “전력 문제는 지금 해놓지 않으면 10년, 15년 후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 실장이 말한 10년, 15년 후는 묘하게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완공 시점과 겹친다. 삼성전자는 2042년까지 360조원 이상을 투자해 경기 용인 이동·남사읍 일대에 시스템반도체 공장 6기를 건설할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600조원을 투자해 인근 원삼면에 메모리 팹 4기와 연구시설 등을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지금 현재 4개의 팹 중 2025년 2월 착공한 1기 팹이 2027년 5월 완공 예정으로 건설중이다.

송전망 새로 건설하려면 극단적 반발 각오해야

반도체 공장은 전기 먹는 하마로 유명하다. 정부와 업계가 추산한 이 단지의 전력 수요는 최대 15기가와트(GW) 수준으로 원자력발전소 10~15기의 발전량에 맞먹는 규모다. 현재 4개 공장에 필요한 전력은 단지내에 LNG발전소를 세워 확보할 예정이다. 나머지는 전력 여유 지역에서 초고압 송전선로로 끌어올 계획이다.

클러스터 이전론이 나온 것도 바로 이 지점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남쪽 지방으로 눈길을 돌려 그 지역에서 새로운 산업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도 이를 받아 “용인의 클러스터를 전기가 많은 호남으로 옮겨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이 있다”고 말했다.

당연히 반발이 일었다. 용인지역 국회의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더불어민주당 내 경기지사 후보들도 이전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1분1초가 급한데 이전론으로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또 지방 이전으로 고급 인재 확보는 불가능해진다는 현실론도 들고 나온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속된 말로 입 안에 다 넣은 사탕을 뺏기게 생겼는데 울지 않는 아이는 없을 것이다. 1월 8일 청와대가 “클러스터 대상 기업 이전을 검토하지는 않은 상황”이라며 “기업 입지는 기업이 스스로 판단할 몫”이라고 한발 물러선 것도 이런 반발을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반도체 클러스터에 필요한 전력을 끌어오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다. 송전망이 이미 포화상태인 데다 ‘민원’ 때문에 송전망을 새로 건설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2000년대 후반 765kv의 초고압 송전선 및 송전탑 건설을 두고 벌어진 밀양시민과 한전 간 갈등사태가 이미 전국에서 재연되고 있다. 강행하려면 극단적인 반발을 각오해야 할 상황이다.

원전 건설로 재생에너지 한계 보충하면 공장 이전도 가능

현실적인 대안은 아직 전력 확보를 못한 6개 공장만이라도 전력이 풍부한 지역으로 이전하는 것이다. 특히 신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지역이라면 RE100 이행을 위해서도 유리하다. 다만 신재생에너지는 간헐성이라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안정적인 발전원인 원자력발전의 뒷받침을 받아야 하는 이유다.

물론 원자력발전소는 지역에서 환영받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지역 발전을 넘어 지역의 번영을 가져다줄 반도체 공장 유치와 충분히 맞바꿀 만하지 않을까. 신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지역에서 먼저 손 들고 원전 건설도 수용하겠다고 한다면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반도체 기업도 충분히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윤영호 법무법인 화우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