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그린란드 압박에 달러 흔들
1년전 ‘마러라고 합의’ 전운 시작점 … 투자 거장 레이 달리오, 자본전쟁 경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 확보를 위해 동맹국에 관세 압박을 가하자 세계 금융시장이 즉각 요동쳤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가 국제 질서를 뒤흔들고 있다는 건 이제 명백해졌다. 남은 건 각국이 이 혼란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다.
사실 징후는 1년 전부터 있었다고 FT는 분석했다. 트럼프가 백악관에 복귀하기 전, 핵심 참모 스티븐 미란은 ‘마러라고 합의’라는 구상을 담은 문서를 내놨다. 무역, 금융, 국방은 서로 얽혀 있는 세 축이며, 이를 동시에 동원해 미국 우선주의를 관철할 수 있다는 발상이다. 미란은 이후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CEA) 의장에 오른 데 이어 연준에서도 요직을 맡았고, 트럼프식 금리 인하 기조를 뒷받침해 왔다. 행정부는 당시 문서를 단순한 사고 실험이라고 낮춰 말했지만, 정책 방향은 점점 그 틀을 닮아가고 있다.
이번에 시장을 흔든 계기는 그린란드였다. 트럼프가 영토 구상에 협조하지 않는 동맹을 향해 관세를 거론하자, 시장은 기존의 공식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지정학적 충격이 오면 달러와 미 국채가 강세를 보였다. 그런데 이번엔 달러와 미 국채가 강해지지 않고 오히려 약해졌다. 20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2월 인도분 금 선물은 온스당 4765.8달러로 전 거래일보다 3.7% 급등했다.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은 6bp(0.06%포인트) 오른 4.29%를 기록했다. 채권 가격이 하락(수익률 상승)한 것이다.
‘셀 아메리카’(미국 자산 매도) 우려 속에 뉴욕증시 3대지수도 일제히 급락했다.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1.76%, S&P 500 지수는 2.06%, 나스닥 종합지수는 2.39% 하락했다. 새해 들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던 S&P 500 지수는 이날 하락으로 연초 이후 상승분을 모두 반납했다. 필수소비재를 제외한 대부분 업종이 약세를 나타낸 가운데 엔비디아(-4.38%), 테슬라(-4.17%), 애플(-3.44%)등 거대 기술기업 주요 종목이 하락했다.
짧은 기간의 움직임만으로 결론을 내리긴 이르다. 다만 달러와 미 국채를 안전자산으로 보는 시각이 약해지고, 미국발 충격을 계기로 자금이 금과 유럽·아시아 등 다른 시장으로 분산되고 있다는 신호는 분명하다. 이는 미국에 구조적 부담이다. 트럼프가 지난해 채권시장 불안에 통상 압박을 완화한 것도 국채 금리 상승이 재정 부담으로 직결된다는 점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도이체방크는 유럽이 그린란드를 쥐고 있을 뿐 아니라, 미 국채와 주식도 약 8조달러어치를 보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창업자 레이 달리오는 이날 CNBC 방송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공세와 관련해 “자본전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며 외국인 투자자들이 예전처럼 미국 자산을 사들이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결국 트럼프의 그린란드 압박과 동맹을 향한 관세 경고는 한 가지를 드러냈다고 FT는 지적했다. 미국이 수십 년에 걸쳐 쌓아온 가장 값비싼 금융 자산,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신뢰가 약해지면 안전자산의 지위도 균열이 생긴다. 그 대가는 단기간의 시장 변동이 아니라 앞으로 수십 년에 걸친 자금 흐름의 변화로 돌아올 수 있다고 FT는 경고했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