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위 창작자 ‘모디슈머’가 식품업계 이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콘텐츠화 … SNS 화제의 이색 간식
식품을 그대로 소비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소비자는 제품을 완성품이 아닌 ‘재료’로 바라본다. 자신만의 취향과 아이디어를 더해 새로운 메뉴를 만들고, 이를 SNS 콘텐츠로 공유하는 흐름이 확산되면서 식품 소비 문화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상징하는 키워드가 바로 ‘모디슈머’(Modisumer)다.
모디슈머는 ‘수정하다’(Modify)와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로, 기존 제품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 즐기는 소비자를 뜻한다.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이 문화가 확산되면서 식품은 단순한 소비 대상이 아니라 창작과 놀이, 그리고 자기 표현의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모디슈머 트렌드 핵심에는 SNS가 있다. 레시피는 더 이상 전문가 영역이 아니다. 누구나 간단한 조합과 아이디어로 새로운 메뉴를 만들고 이를 영상이나 게시물로 공유한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는 ‘구매자’를 넘어 ‘콘텐츠 생산자’이자 ‘트렌드 메이커’가 된다.
과거에는 출시된 제품을 그대로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면, 지금은 서로 다른 식품을 섞거나 변형해 새로운 맛을 찾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놀이 문화로 인식된다.
짧은 영상 플랫폼과 SNS 알고리즘은 이러한 실험적인 레시피를 빠르게 확산시키며 집단적 유행을 만들어낸다.
10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소비자가 만든 조합이 화제가 되면 이를 공식 제품으로 출시하거나, 자유롭게 변주 가능한 형태의 제품을 선보이는 사례가 늘고 있다.
풀무원요거트 그릭은 SNS를 통해 화제된 ‘요거트 치즈케이크’ 핵심 재료로 주목받고 있다. 일본 SNS에서 시작돼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이 레시피는 ‘풀무원요거트 그릭’에 비스킷을 가득 채워 냉장 숙성시키는 방식으로 완성된다. 별도 도구나 조리과정 없이도 치즈케이크와 유사한 식감과 풍미를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모디슈머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릭 요거트는 기존에도 그래놀라 꿀 과일 등과 함께 조합해서 즐기는 대표적인 식품이다. 최근에는 활용 범위가 더욱 확장되고 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릭 요거트로 지중해식 차지키 소스를 만들거나 마요네즈 대신 사용하는 소비자도 있다. 샐러드나 샌드위치에 곁들이는 사례도 빠르게 늘고 있다.
‘풀무원요거트 그릭 설탕무첨가 플레인’은 설탕을 더하지 않고 저지방으로 설계한 락토프리(유당 0%)제품이다. 우유 2배 이상 단백질까지 함유하고 있어 맛있고 건강한 요리법에 폭 넓게 활용되고 있다.
라면 시장 역시 모디슈머 트렌드 대표 무대다. 소비자 조합에서 시작된 레시피는 이제 공식 메뉴로 진화한다.
라볶이와 해물라면 조합, 어묵탕과 짬뽕 결합 같은 아이디어는 SNS에서 확산된 뒤 실제 상품 기획으로 이어지고 있다.
농심은 라볶이에 너구리의 얼큰하고 시원한 해물맛을 결합한 용기면 신제품 ‘라뽁구리 큰사발면’을 출시했다.
너구리는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 ‘카구리’(카레+너구리) 등 소비자가 기호에 맞게 다양한 조리법을 창조하는 핵심 재료로 주목받는다. 라뽁구리 큰사발면 소스는 고춧가루 고추장 간장을 활용한 정통 라볶이 소스에 너구리 특유 해물 풍미를 더해 감칠맛을 끌어올린 것이 특징이다.
오뚜기 진짬뽕을 활용한 이색 레시피도 화제를 모았다.
편의점 어묵탕과 진짬뽕을 함께 끓여 먹는 ‘진짬뽕 어묵탕’ 레시피가 온라인상에서 확산되며 진짬뽕 특유 불맛 국물과 어묵 담백함이 어우러진 조합으로 소비자 호응을 얻은 것이다.
외식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시즌 한정 메뉴나 SNS 인기 디저트를 재해석한 메뉴는 소비자 참여 욕구를 자극하며 브랜드 경험을 확장한다. 소비자가 직접 요청한 메뉴가 재출시되는 사례는 기업과 소비자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음을 상징한다.
모디슈머 트렌드는 단순한 식문화 유행을 넘어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반영한다. 개인 취향을 중시하는 문화, 콘텐츠 생산을 통한 자기 표현 욕구, 건강과 재미를 동시에 추구하는 소비 패턴이 맞물린 결과다.
특히 집에서 간편하게 조리하거나 변형할 수 있는 식품은 ‘DIY 미식 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요리는 더 이상 노동이 아니라 창작 활동으로 인식되며, 실패조차 콘텐츠가 되는 시대다. 소비자는 새로운 조합을 시도하며 자신만의 시그니처 레시피를 만든다.
이런 흐름은 향후 식품 개발 방향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모듈형 식품, 커스터마이징 가능한 메뉴, 조합을 전제로 한 제품 설계 등 소비자가 참여할 여지를 남긴 제품이 경쟁력을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모디슈머 문화 본질은 ‘참여’에 있다”며 “소비자는 더 이상 기업이 만든 트렌드를 따르지 않고 스스로 실험하고 공유하며 시장 흐름을 만들어낸다”고 평가했다. 또 기업은 이를 빠르게 포착해 제품과 마케팅에 반영한다.
결국 식탁 위의 변화는 소비자의 손에서 시작된다. 창의적인 조합과 놀이 같은 요리 문화는 식품 산업을 넘어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모디슈머는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오늘의 먹거리 문화를 설계하는 공동 창작자라 할 수 있다.
정석용 기자 sy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