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 속 금값 급락…흔들리는 안전자산 신화

2026-03-26 13:00:19 게재

“위기 때 오히려 판다”

중동 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대표적 안전자산으로 여겨졌던 금이 급락하며 그 역할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지정학적 불안이 커질수록 가격이 오르던 기존 공식이 이번에는 통하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 25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금 가격은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15% 넘게 하락했다. 전쟁 초기 10일간은 주식과 채권이 급락하는 와중에도 가격을 유지했지만, 이후 시장 혼란이 확대되면서 결국 하락세로 돌아섰다.

블룸버그 칼럼에서도 같은 흐름이 지적됐다. 블룸버그의 존 오서스 칼럼니스트는 최근 금 가격이 고점 대비 27% 급락했다고 분석하며 “금은 더 이상 큰 보호막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하락의 직접적인 원인으로는 ‘현금 확보 수요’가 꼽힌다. 금융서비스회사 스톤엑스의 애널리스트 로나 오코넬은 “금은 주식과 국채 시장이 급락할 때 거의 항상 하락한다. 투자자들이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금을 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사모 투자기관과 헤지펀드들은 주식·채권 시장 손실을 메우기 위해 금 보유분을 대거 처분한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 투자은행 베렌베르크의 제이슨 터너는 “금에서 수익을 본 포지션을 청산해 증거금 요구를 충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 ETF에서도 자금 이탈이 뚜렷하다. 데이터업체 반다에 따르면 전쟁 이후 글로벌 금 ETF에서는 약 108억달러가 빠져나갔다.

구조적 변화 가능성도 제기된다. 과거에는 금 가격이 실질금리와 반대로 움직였지만, 최근에는 이 관계가 깨졌다. 블룸버그는 금이 미국 명목금리나 신흥국 주식과 함께 움직이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어 “안전자산과 정반대 성격”이라고 지적했다.

또 금 가격 상승 자체가 과열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자산운용사 가베칼의 찰스 가베와 루이-빈센트 가베는 전쟁 전 금이 과도하게 매수된 상태였으며, 시장 충격이 발생하자 차익실현 매물이 쏟아졌다고 분석했다.

금리 환경 변화도 부담이다. 온라인 금 거래 플랫폼 불리언볼트의 리서치 디렉터 애드리언 애시는 “금과 은은 금리 기대에 매우 민감하다”며 “이제 다시 금이 금리와 연동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전쟁이 길어질 경우 달러 강세 역시 금에는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블룸버그는 전쟁 속에서 달러가 안전자산으로 재부각되면서 금과 경쟁하는 구도가 형성됐다고 분석했다.

다만 금의 역할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평가에는 신중론도 있다. 세계금협회의 존 리드 시장전략가는 “대규모 차익실현과 위험 축소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하며 단기적인 수급 요인이 크다고 봤다.

이번 중동 전쟁은 금이 ‘절대적 안전자산’이라는 기존 인식을 흔드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금의 역할이 재정의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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