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공불락 폐암 변이 유전자, 신약이 뚫었다
뇌 전이 환자에도 효과 확인
초기 단계, 대규모 임상 필요
수십 년간 치료제 개발을 가로막아 온 폐암의 핵심 유전자 변이 ‘KRAS’를 겨냥한 실험적 신약 두 종이 초기 임상에서 고무적인 결과를 내놓으며 의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오랫동안 뚜렷한 표적 치료제가 없었던 환자들에게 새로운 선택지가 열릴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미국암연구학회(AACR)는 20일 연례회의에서 각기 다른 KRAS 변이를 표적으로 삼은 신약 두 종의 임상 결과를 공개했다.
KRAS는 인간 암에서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동시에 공략이 가장 어려운 유전자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암세포의 가속 페달처럼 작용하는 이 유전자는 단백질 표면이 매끈하고 뚜렷한 결합 부위가 없어 약물이 달라붙기 어렵다는 이유로 일부 연구자들 사이에서 ‘죽음의 별’로 불려 왔다. 수십년간 연구자들을 좌절시켜 온 이 유전자를 겨냥한 첫 승인 약물이 등장한 것도 2021년에 이르러서였다.
레볼루션 메디슨스가 개발한 경구용 신약 ‘졸돈라십’은 폐암 환자의 약 4%에서 나타나는 특정 KRAS 변이를 표적으로 삼는다. 27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무진행 생존 기간 중앙값이 11.1개월로 나타났으며, 환자의 약 절반에서 종양이 줄어드는 효과가 확인됐다.
마크 골드스미스 레볼루션 메디슨스 최고경영자(CEO)는 인터뷰에서 “과거 보고된 수치와 비교해 확연히 다른 결과”라고 평가했다. 레볼루션 메디슨스는 이달 초 자사가 시험 중인 또 다른 신약이 췌장암 환자에서 화학요법 대비 전체 생존 기간을 거의 두 배로 늘렸다고 발표해 시장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상하이에 본사를 둔 디쓰리 바이오의 ‘엘리스라십’은 현재 암젠과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의 승인 약물이 겨냥하는 것과 같은, 보다 흔한 KRAS 변이를 표적으로 한다.
이전에 KRAS 표적 치료를 받은 적 없는 환자 가운데 약 60%에서 종양이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났는데, 이는 기존 승인 약물의 반응률인 약 3분의 1과 비교하면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같은 환자군에서 무진행 생존 기간 중앙값은 12.2개월이었다.
특히 이 약물은 앞선 KRAS 치료 이후 암이 재진행된 환자와 암이 뇌로 전이된 환자에서도 효과를 보였다. 기존 치료제 상당수가 이런 환자군에는 충분히 도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두 연구 모두 표준 화학요법과 면역항암제 치료가 더 이상 효과를 내지 못한 진행성 암 환자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임상적 의의가 크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시애틀 프레드 허치 암센터의 레이 덩 종양내과 전문의는 “KRAS 변이에 대해 이처럼 희망적이었던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번 학회 공동 주최자이자 다나파버 암연구소 종양내과 책임자인 앨리스 쇼 박사도 “치료가 매우 어려운 암에서도 이 변이를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표적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다만 두 연구 모두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결과를 확증하려면 더 큰 규모의 후속 임상이 필요하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폐암은 전 세계에서 해마다 다른 어떤 암보다 많은 사망자를 내는 질환이다. 연구자들은 이번 결과가 오랫동안 뚜렷한 해법이 없었던 이 질환에서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한국의 폐암 치료 타깃 제약사로는 글로벌 상업화에 성공한 유한양행, 렉라자 원천기술 보유사인 오스코텍,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EGFR) 변이 폐암 4세대 후보물질을 개발 중인 보로노이 등이 대표적으로 거론된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