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국가 접은 일본…세계 방산시장 진격
무기 수출 규제 대폭 완화
함정·미사일 세계시장서 경쟁
일본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자국 기업의 치명적 무기 수출 규제를 대폭 완화하면서 글로벌 방산 시장의 경쟁 구도가 흔들리고 있다. 미국·유럽 중심이던 무기 공급망에 일본이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최근 수출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는 한국 방산업체들도 새로운 경쟁자를 맞게 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블룸버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21일 미쓰비시중공업·가와사키중공업 등 자국 방산업체들이 사실상 대부분의 군사 장비를 해외에 수출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그동안 수색·구조·감시·기뢰 제거 등 비살상 장비 중심으로만 수출이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미사일·군함·항공기 등 치명적 무기까지 판매할 수 있게 된다. 다만 현재 진행 중인 분쟁에 직접 관여한 국가에는 원칙적으로 수출이 제한된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이끄는 일본 정부는 중국의 군사력 확대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 현재 안보 환경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수준”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다카이치 총리가 방위비를 GDP의 2% 수준까지 끌어올리고 일본을 글로벌 방산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로 만들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으로 미국의 무기 공급이 빠듯해지면서 다른 국가들이 미사일·드론·군함 공급에 나설 기회가 열린 점도 배경으로 꼽힌다.
가장 주목받는 기업은 미쓰비시중공업이다. 미사일 시스템, 구축함·잠수함, 전차, 방산 항공기까지 보유한 일본 최대 종합 방산업체로, 최근 호주와 모가미급 호위함 3척 공급 계약도 체결했다. 가와사키중공업은 초계기·수송기·헬기·잠수함 등 항공·해상 분야가 강점이다. 일본은 영국·이탈리아와 차세대 전투기를 공동 개발 중이며, 인도네시아·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들과도 장비 수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 방산업체들 입장에서는 함정과 미사일 분야에서 경쟁 압박이 커질 수 있다. 동남아·호주처럼 해군력 증강 수요가 큰 시장에서 한화오션·HD현대중공업과 미쓰비시중공업·가와사키중공업이 직접 맞붙을 가능성이 있고, 미사일·방공 체계에서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LIG넥스원이 일본 업체들과 같은 입찰에 설 수 있다.
다만 일본 방산의 현재 규모는 아직 제한적이다. SIPRI에 따르면 2024년 글로벌 방산 매출 비중에서 미국 49.0%, 영국 7.7%인 반면 일본은 2.0%에 그쳤다. 생산 능력을 빠르게 늘릴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있고, 재계 내부에서도 “우선순위는 일본 자체 방어여야 한다”는 신중론이 나온다. 치명적 무기를 구매할 수 있는 국가도 군사기술 기밀 보호 협정을 맺은 약 17개국으로 제한된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