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어내고도 맛은 그대로” 식음료 ‘제로 전쟁’
헬시플레저·스포츠 리프레시 확산에 저당·무알코올 제품 경쟁 … 유통까지 ‘제로 전문화’ 가속
국내 식음료 시장 전반에 ‘제로'(Zero)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당과 칼로리, 알코올 등 부담 요소를 줄이면서도 기존 제품의 맛과 경험을 유지하려는 소비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주요 식품·음료 기업들이 앞다퉈 ‘덜어낸 제품’ 경쟁에 뛰어드는 모습이다.
단순한 저칼로리 제품을 넘어 ‘죄책감 없는 소비’를 지향하는 이른바 ‘헬시플레저'(Healthy Pleasure)와 ‘스포츠 리프레시’ 트렌드가 맞물리며 시장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평가다.
최근 소비자들은 건강을 위해 무조건 참는 방식 대신, 즐기면서 관리하는 소비 패턴을 보이고 있다. 특히 러닝 크로스핏 테니스 등 고강도 운동 이후 성취감을 ‘보상 소비’로 연결하는 라이프스타일이 확산되면서, 식음료 선택 기준 역시 변화하고 있다.
운동 후 맥주나 치킨 디저트 등 전통적인 ‘보상 음식’을 찾되 알코올과 당 칼로리 부담을 낮춘 대체 제품을 선택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식음료 기업들은 기존 제품의 맛과 식감을 유지하면서도 불필요한 성분만 제거한 ‘리얼 제로’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28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하이트진로음료는 맥주 대체 음료 ‘테라 제로’를 통해 비발효 공법을 적용, 제조 단계에서 알코올 자체를 발생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차별화했다.
맥아 농축액을 활용해 맥주 특유의 풍미는 살리면서도 알코올 당류 칼로리를 모두 제거해 운동 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제품으로 포지셔닝했다.
무알코올 맥주 시장에서는 오비맥주의 ‘카스 제로’ 역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기존 맥주 브랜드의 인지도를 활용해 ‘맛은 그대로, 부담은 최소화’라는 메시지를 강조하며, 음주 대체 수요뿐 아니라 운동 후 리프레시 음료로 소비 접점을 넓히고 있다.
특히 최근 제품들은 단순한 무설탕을 넘어 탄산감 향 음용감까지 강화하며 제로 제품도 더 맛있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식품 분야에서도 변화는 뚜렷하다. 닭가슴살 저당 디저트 제로 간장 등 전통 식품군까지 ‘덜어내기’ 경쟁이 확대되고 있다. 굽네몰은 오븐 조리 방식으로 튀김 식감을 구현한 고단백 제품을 선보였다.
저당 아이스크림과 요거트바 등 디저트 제품 역시 빠르게 성장 중이다.
샘표는 당류를 0g으로 낮춘 ‘양조간장 제로’를 출시하며 전통 장류 시장에서도 제로 트렌드를 반영했다. 발효 공정을 정교하게 설계해 당과 칼로리, 염도를 동시에 낮추면서도 기존 간장의 풍미를 유지한 것이 특징이다.
커피 프랜차이즈 역시 저당 라인업을 확대하고 있다.
롯데GRS가 운영하는 엔제리너스는 ‘엔제린 밸런스’ 시리즈를 통해 저당 커피와 디저트를 선보이며 건강과 맛을 동시에 잡는 전략을 강화했다.
기존 인기 메뉴를 기반으로 당류만 줄이는 방식으로 소비자 선택 폭을 넓힌 것이 특징이다.
유통 채널에서도 ‘제로 특화’ 전략이 등장했다. 제로 식품만을 판매하는 무인 편의점 ‘제로스토어’는 짧은 기간 동안 점포 수를 빠르게 늘리며 새로운 유통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일반 편의점 시장이 포화 상태에 접어들며 성장 둔화가 나타나는 가운데, 건강 지향 소비자를 겨냥한 차별화된 콘셉트가 통했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제로 트렌드 확산의 배경으로 △건강 관리에 대한 관심 증가 △성분 중심 소비 확대 △운동과 보상을 결합한 라이프스타일 변화 등을 꼽는다.
제품 라벨을 꼼꼼히 확인하는 ‘체크슈머’가 늘어나면서 단순한 저칼로리를 넘어 당·알코올·첨가물까지 세밀하게 관리한 제품이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다.
기업들의 전략도 점차 고도화되고 있다. 초기에는 단순히 당이나 칼로리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최근에는 △기존 제품과 동일한 맛 구현 △기능성 강화 △브랜드 경험 유지 등으로 경쟁 포인트가 이동하고 있다. 여기에 운동 후 소비를 겨냥한 ‘스포츠 리프레시’ 콘셉트, MZ세대 중심 ‘헬시플레저’ 마케팅까지 결합되며 시장 확장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식음료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건강을 위해 맛을 포기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이제는 맛과 건강을 동시에 추구하는 소비가 주류가 됐다”며 “제로 제품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식품 산업 전반의 구조적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석용 기자 sy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