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160엔 눈앞…일본은행의 시간 끌기

2026-04-29 13:00:07 게재

물가전망 올라도 금리동결 시장은 6월 금리인상 기대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가운데) 등이 2026년 4월 28일 일본 도쿄 일본은행 본점에서 열린 금융정책결정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일본은행이 물가 상승 압력에도 기준금리를 동결하며 ‘시간 벌기’에 나섰다. 중동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흔들리고 엔화 약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금리인상 필요성은 커졌지만, 경기둔화와 막대한 정부 부채가 중앙은행의 발목을 잡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 28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일본은행은 이날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약 0.75%로 유지했다. 시장 예상과 부합한 결정이지만, 표결은 6대3으로 갈렸다. 반대한 3명은 즉각 금리를 1%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우에다 가즈오 총재 취임 이후 가장 큰 의견 차이이며, 2016년 마이너스 금리정책 도입 이후로도 이례적인 분열이다.

문제는 일본은행이 금리를 묶어두면서도 물가 전망은 크게 높였다는 점이다. 일본은행은 2027년 3월 끝나는 현 회계연도 근원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기존 1.9%에서 2.8%로 올렸다. 일본은행은 성명에서 “중동 상황의 영향을 반영한 원유가격 상승은 기업 이익과 가계 실질소득을 낮출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또 경제 활동 위험은 아래쪽으로, 물가 위험은 위쪽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평가했다.

일본은 에너지 충격에 특히 취약하다. FT는 일본이 수입 에너지 의존도가 높고 원유의 90% 이상을 중동에서 조달한다고 전했다. 원유가격 상승은 수입 물가를 끌어올려 엔화 약세와 맞물릴 경우 생활비 부담을 더 키울 수 있다. 동시에 제조업 비용을 높여 기업 수익과 생산에도 부담을 준다. 일본은행도 중동 전쟁에 따른 공급망 차질과 일부 소재 업체의 공장 가동 축소 가능성을 언급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도 일본은행의 딜레마를 짚었다. 엔화는 달러당 160엔에 가까워지며 30년 만의 저점 부근에 머물고 있다. 일본은행이 지난 2년간 금리를 올렸고, 그 전에는 17년간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했지만 엔화 약세 흐름을 꺾지 못했다. 우에다 총재가 기자회견에서 강경한 발언을 내놓으면 엔화가 반등할 수 있지만, 완화적인 태도를 보이면 추가 하락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6월 금리 인상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아시아태평양 책임자 마르셀 틸리언트는 고객 메모에서 중동지역 긴장이 다시 고조되지 않는다면 일본은행이 6월 회의에서 정책금리를 다시 올릴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일본은행의 물가 전망 상향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다만 급격한 긴축은 쉽지 않다.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의 높은 공공부채와 총리의 완화적 재정 기조가 일본은행의 운신 폭을 좁힌다고 분석했다. 금리를 빠르게 올리면 엔화 방어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국채 이자 부담과 경기둔화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일본은행이 물가를 우려하면서도 당장 금리 인상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다.

일본은행의 시간 끌기는 선택이라기보다 부담스러운 균형 잡기에 가깝다. 엔화 약세와 물가 상승은 금리 인상을 압박하지만, 경기와 재정 부담은 속도를 늦추라고 말한다. 6월 회의는 일본은행이 언제까지 기다릴 수 있는지를 가늠할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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