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치매머니 시대,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

2026-06-22 13:00:22 게재

우리 사회가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새로운 사회문제가 떠오르고 있다. 바로 ‘치매머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65세 이상 치매환자는 약 124만명이며, 이들이 보유한 자산은 약 154조원에 달한다. 앞으로 고령화가 더욱 빠르게 진행되면서 2050년에는 치매환자가 397만명, 치매머니 규모는 488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과거에는 노후 빈곤이 가장 큰 사회적 과제였다면 이제는 또 다른 고민이 치매 환자를 위한 사회안전망이다. 치매는 단순히 기억력이 떨어지는 질환이 아니다. 금융거래와 계약, 투자 판단, 재산 처분 등 경제적 의사결정 능력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결국 평생 모은 재산이 정작 본인의 노후를 위해 사용되지 못하거나 범죄의 표적이 될 위험이 커진다. 치매 환자의 재산 피해는 단순한 금전 손실에 그치지 않는다. 재산이 사라지면 의료비와 요양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결국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 전체가 부담해야 할 비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고령사회의 숨은 뇌관 ‘치매머니’

세계에서 가장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치매머니’가 사회적 화두가 되면서 성년후견제도를 통해 재산을 보호하고 있다. 영국은 본인이 건강할 때 미리 재산관리 권한을 지정하는 위임장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미국 역시 신탁과 위임장, 후견제도 등을 활용해 인지능력 저하에 대비한 자산관리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성년후견제도가 운영되고 있지만 절차가 복잡하고 이용률이 높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치매가 상당히 진행된 이후에야 대책을 찾는 경우가 많아 예방적 기능도 충분히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정부와 국민연금공단은 올해 4월부터 ‘치매안심재산관리서비스’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치매나 경도인지장애 등으로 재산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이 재산을 위탁하면 공단이 본인의 의사를 반영한 지출계획에 따라 생활비와 의료비, 요양비 등 필요한 곳에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사실 공단의 재산관리 지원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공단은 2025년부터 발달장애인 재산관리지원서비스를 운영해 왔다.

이 같은 경험은 치매안심재산관리서비스의 중요한 토대다. 발달장애인 재산관리 지원 과정에서 축적한 상담과 모니터링, 지출관리 노하우를 바탕으로 지원 대상을 치매·경도인지장애 노인으로 확대했다. 사회적 약자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축적해 온 경험을 고령층 복지 분야로 넓혀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아직은 시범사업 단계인 만큼 대상자와 위탁 가능한 재산 범위가 제한적이다. 하지만 치매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재산관리 위험을 사전에 예방하고, 평생 모은 자산이 본인의 돌봄과 생활 안정을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앞으로는 보다 다양한 자산을 포괄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하고 치매안심센터와 지방자치단체, 금융기관 간 협력도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

안전한 노후 재산 보호도 복지다

노후소득 보장은 단순히 연금을 지급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지급된 연금과 자산이 실제로 수급자 생활 안정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돕는 것까지 포함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치매머니가 급증하는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자산이 아니라 자산을 안전하게 지키고 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다. 치매안심재산관리서비스가 그 첫걸음이 되기를 기대한다.

서동현 국민연금공단 부산지역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