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멈춘 전쟁, 아직 끝나지 않은 갈등
트럼프 종전카드, 양보 많고 성과 불분명 … 순방향으로 들어섰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일러
종전을 위한 14개 항목의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개전 106일 만이다. 앞으로 60일간 양측은 안건별로 구체적인 협상에 들어간다. 하나하나 만만찮은 의제들이다. 의제 설정은 상황 파악의 척도다. 그 점에서 미국이 우위라 할 수 없는 양해각서다. 미국이 요구했던 기준점에서 상당히 물러난 모양새고, 오히려 이란의 의지가 관철된 의제들이 더 많이 눈에 띈다.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이란을 선제타격했던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체제 교체에 사실상 실패했다. 바라던 시민봉기도 없었다. 이란 해군과 미사일 자산 등 재래식 전력 역량을 약화시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란 비대칭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드론 공세를 효과적으로 막지 못했고, 무엇보다 호르무즈의 실질적 봉쇄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이번 양해각서 14개 항목을 찬찬히 살펴보면 미국은 도대체 이 전쟁을 왜 했을까 갸웃하게 된다.
4월 10일 일시 휴전하고 협상을 타진해 온 양측의 핵심 논점은 크게 세 가지였다. 이란의 농축우라늄, 호르무즈 재개방, 그리고 전후 재건을 위한 이란의 배상 요구 등이었고 이번 양해각서에도 포함되었다. 본래 미국은 이란의 핵개발이 위협적이며 이를 선제 차단한다는 명분으로 전쟁을 시작했다. 그러나 핵심의제가 둘 더 추가되었다. 전쟁이 미국의 의도와 다르게 전개된 까닭이다.
핵 농축, 오바마 합의보다 낮아질까
세 논점에 관한 양해각서를 살펴보자. 첫째, 이란이 보유한 60% 농도의 우라늄을 희석시킨다는 내용이 8항에 담겨있다. 주목할만한 점은 전량 해외 반출이 아니라 이란 영토 내에서 국제원자력기구 (IAEA)의 감시 하에 이루어진다는 부분이다. 미국은 그동안 이란 내 여하한 우라늄 농축 등 핵활동 금지를 요구해왔다. 그러나 희석이든 뭐든 어떻든 이란 국내에서 핵관련 활동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이란은 핵주권을 강조할 수 있는 여지를 얻게 되었다.
또 하나의 관심 포인트는 희석 정도다. 440여kg으로 추산되는 60% 농축우라늄을 몇 %로 낮출 것인가를 향후 두달 동안 논의하게 된다. 2015년 오바마 대통령이 주도했던 이란 핵합의 즉,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에 의거한 3.67%보다 얼마나 더 낮출 수 있을까가 관건이다.
두번째 논점은 5항에 나오는 호르무즈 사안이다. 양해각서 합의문에 따르면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의 향후 관리 및 해상 서비스를 정의하기 위하여, 적용 가능한 국제법과 호르무즈 해협 연안국들의 주권적 권리에 부합하게 다른 페르시아만 연안국들과 협의하면서 오만과 대화를 진행한다”고 되어 있다.
께름칙한 부분이 있다. ‘향후 관리 및 해상 서비스’ 그리고 ‘연안국들의 주권적 권리’ 언급이다. 전쟁 이전 호르무즈 해협은 국제해협으로 유엔해양법 협약 그리고 국제관습법이 준용되던 지역이었다. 자유로운 항행이 가능한 바다였다. 국제사회와 마찰이 생길 때마다 이란은 호르무즈 봉쇄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으나 실질적으로 막은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 전쟁과 함께 이란이 호르무즈를 전쟁 종식 및 재발 억제 카드로 활용하면서 상황은 급반전했다.
양해각서에 담긴 호르무즈 관련 문안은 2월 28일 개전 이전의 호르무즈가 복원되기 어려울 것임을 암시한다. 이란은 차제에 호르무즈 항행 관련 메커니즘을 만들어 일차적으로는 재정을 확보하고 이차적으로는 안보 우위 카드로 활용하려 할 것이다.
국제해협의 통행료 부과에 따른 반발이나 여론압박도 고려, 서비스 비용을 징수하는 형태가 예상된다. 전례도 있다. 1936년 몽트뢰협약을 통해 튀르키예가 자국 해협 보스포루스와 다르다넬스 통과 선박에 부과하기 시작한 서비스 비용 사례다. 최근 나오는 아이디어는 호르무즈 항행 구간에 대한 이란 독점 유료 보험 가입 의무화 추진설이다.
세번째는 6항 재건 및 경제발전 기금 문제다. 미국은 국제사회와 조율해 이란을 위한 최소 3000억달러의 재건 기금 제공을 보장했다. 앞의 두 사안보다 훨씬 더 파장이 큰 문제다. 미국은 적성국이자 테러지원국으로 이란을 규정하고 있다. 전쟁을 벌였음에도 체제가 바뀌지 않은 이란에 대한 재건 기금 논란은 당연했다. 제재 중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 주요 인사들은 단 한푼도 미국 세금이 이 기금에 투입되지 않을 것이라 밝혔다. 아직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달할지 알 수 없으나 주로 걸프 산유국 및 미국의 주요 동맹국들이 우선 거론될 가능성이 있다. 개전 당사자가 아니었음에도 이란으로부터 미사일 공격을 당한 걸프국가들은 황당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마치 패전국의 전쟁 배상금 같은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충격’, 걸프국가들 ‘황당’
합의문이 발표되자 미국 국내는 물론 각국의 여론도 들썩였다. 민주당은 섣부르게 시작한 전쟁에 대한 비판을 내어놓았다. 공화당도 비판기조가 우세하다.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이나 마이크 폼페이오 전국무장관 등의 강경론이 잇따르고 있다. 린지 그레이엄 의원 등 신중론도 있지만 대략 이란에게 너무 많은 양보를 했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이스라엘의 충격은 말할 것도 없다. 보수 진보진영을 막론하고 미국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하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의 정치적 위기설도 나오고 있다. 반면 대부분의 국제사회는 어떤 형태든 전쟁이 종료되고 호르무즈가 다시 열리게 될 기회를 얻었기에 환영하는 분위기를 보인다. 다만 이란의 공격 대상이 되었던 걸프 왕정국가들은 일단 전쟁의 중단에 안도하면서도 근본적인 이란 위협이 지속될 것이기에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결국 손절 선택한 거래의 달인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왜 이렇게 불리해 보이는 양해각서를 수용하고 협상을 시작하게 된 것일까? 두가지 가설을 추론해볼 수 있다. 하나는 시간벌기용 협상이라는 설이다. 3개월을 훌쩍 넘기면서 주고받은 이란과의 미사일 교전으로 인해 미국과 이스라엘의 요격 자산 즉 방어용 미사일 재고가 점차 소진되고 있다는 추론에 근거한다.
공격용 자산은 충분하지만 이란이 드론과 함께 섞어서 이스라엘을 비롯 중동 전역의 미군기지 방공망 전체를 타격하고 있기에 방어용 미사일 재고가 위험 수위에 이르렀을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따라서 일단 숨고르기 및 재정비 이후 대규모 군사작전에 나서기 위한 시간벌기라는 논리다. 그러나 저가로 생산 가능한 공격 자산 확대 및 미사일 발사시설 복구에 나선 이란 역시 같은 시간을 번다. 설득력이 약하다.
반면 이란체제 붕괴는 불가능하고, 지상군 투입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트럼프가 아예 근본적 전환을 시도한다는 분석이 논리적으로 들린다. 이대로 전쟁이 지속될 경우 인플레이션 및 대외 개입 논란으로 11월 중간선거와 맞물려 위기국면을 맞을 수 있어 아예 산식(算式)을 바꾸었다는 해석이다.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기세로 거세게 저항한 이란의 버티기도 한몫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스스로 협상 및 거래의 달인으로 믿고 있다. 논리적 일관성이나 가치판단보다 상황전개에 따라 적응하며 재빨리 그 시점에서의 이익을 포착하는 거래 행태를 보여온 인물이다. 이번 전쟁에서도 여러차례 말이 바뀌었다. 거래의 달인은 익절은 물론 손절도 빠르다. 결코 손해 보지 않았다는 명분은 만들기 나름이다.
트럼프는 이미 두 그룹의 이란 지도부를 제거했다며 세번째 지도부는 상대적으로 온건하고 대화가 통할뿐만 아니라 이란을 사랑하는 이들이라고 상찬했다.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음을 암시하고 싶은 메시지다. 일단 이란에서 나가고자 결심하면 관련 합의에 이란 요구가 많이 반영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번 양해각서가 보여주는 맥락이다.
다만 이 양해각서에 나와 있는대로 60일내에 순탄하게 종전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아직 불명확하다. 이대로 끝낼 수 없다는 내외의 반발이 극심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부가 끝까지 레바논 공습을 이어갈 경우 합의가 틀어질 수도 있다.
특히 지난 2024년 대선 당시 트럼프 캠프에 1억달러 정치헌금을 쾌척한 유대인 카지노 재벌 미리암 애덜슨 측의 반발도 변수다. 공화당 정치인들은 애들슨 가문과 척지는 선택은 쉽지 않다. 주요 자금원을 스스로 차단하는 결과이기에 그렇다. 전쟁은 순식간에 시작되지만 끝낼 때는 몇 배 더 오래 걸린다. 일단 순방향으로 들어섰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이른 이유다.
국립외교원 교수
전략지역 연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