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정대철 헌정회장

“제왕적 대통령제 없앨 개헌, 더 미룰 수 없다”

2026-06-18 13:00:10 게재

“대통령이 용서·화해·통합에 앞장서길”

“선관위, 시스템 유지하며 투명성 강화”

“분권형 대통령제로 권력구조 바꿔야”

정대철 헌정회장이 지난 15일 내일신문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이의종
“1987년 이후 39년간 미뤄온 개헌이 가장 크고 절박한 정치개혁이다.”

대한민국 헌정회 정대철 회장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가능성을 없애는 권력구조 개헌을 거듭 강조했다. 9·10·13·14·16대 국회의원과 새천년민주당(더불어민주당 전신) 대표를 지낸 정 회장은 6.3 지방선거 민심부터 개헌, 선관위 개혁, 남북 관계까지 폭넓은 현안에 대해 “상생·협치·통합의 정치”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정 회장은 1944년 서울에서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8선 의원을 지낸 정일형 전 외무부 장관과 대한민국 최초 여성 변호사 이태영 여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장남인 정호준 전 의원(19대)까지 3대가 금배지를 달았다. 헌정회장 선출이 직접 투표 방식으로 바뀐 2009년 이후 첫 민주당 계열 회장으로 2023년 23대 회장에 올랐고 지난해 단독 출마해 24대 회장을 맡고 있다. 인터뷰는 15일 내일신문에서 약 1시간 동안 진행됐다.

●이번 지방선거 민심을 어떻게 보나.

여야 모두에게 민심의 소재를 잘 알고 올바르게 정치하라는 경고였다. 여당에는 소수라도 야당과 충분히 협의해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정치를 하라는 것, 입법 폭주를 하지 말라는 것, 사법부 장악으로 비치는 행태를 조심하라는 것, 재판받는 대통령의 공소를 무리하게 취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점은 서울시장 선거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야당에는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여당의 무리한 사법 장악 행위를 막으며 진영을 새롭게 정비해 여당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라는 주문이었다.

●거대양당의 반목과 대치를 협치로 옮길 해법은.

아홉 가지를 제시하고 싶다. 첫째 서로 다르고 다를 수 있다는 민주주의 기본 원칙 곧 ‘상호 인정(Agree to Disagree)’에 대한 이해와 인정의 폭을 넓혀야 한다. 정치·사회 지도자와 국민 모두에게 확산돼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학교 교육과 사회교육으로 길러야 한다. 둘째 보수와 진보가 서로를 대안세력으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셋째 다수결과 거부권 행사로 맞서는 일방적 힘의 논리는 자제해야 하며 탄핵도 신중해야 한다. 넷째 대통령책임제 아래에서 대통령이 직접 야당 대표·의원, 시민단체 대표를 만나 대화하고 타협·조정해야 한다. 다섯째 개헌으로 제왕적 대통령제를 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로 바꿔 갈등과 분열을 줄여야 한다. 여섯째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꿔 비례성과 대표성을 높여야 한다. 일곱째 대통령이 용서·화해·포용·통합의 선두주자가 돼야 한다. 여덟째 책임 있는 여야 정당과 시민사회 종교계 갈등 전문가가 함께하는 국민통합 대타협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유럽이 극심한 노사 갈등을 사회적 대타협으로 푼 사례가 있다. 아홉째 국회 의석을 여야로 가르지 않고 가나다순으로 섞어 배정하면 대화와 협상 분위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강성 지지층의 영향력이 커지고 확증편향이 강화되고 있다.

직접민주주의 확대로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측면도 있어 좋게 볼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른바 팬덤(fandom) 정치로 나타나는 강성 지지층은 집단적으로 행동하고 정보를 확산하며 온라인에서 강하게 활동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문제는 자기가 지지하는 사람과 정당만 따르고 상대의 의견과 주장은 무시하거나 비방하면서 ‘상호 인정’ 원칙을 무너뜨려 갈등과 대결의 정치를 증폭시킨다는 점이다. 정치인과 강성 지지자(fan)들이 스스로 자제하거나 법적·제도적 규제를 통해 자제시킬 필요가 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선관위 개혁 요구가 크다.

헌정사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91개 투표소에서 일어나 국민의 참정권을 훼손했다. 그동안 헌법기관이라는 무소불위의 지위 덕분에 감사 제외기관 혜택을 누려왔다. 개헌이나 법 개정을 통해 선관위를 투명하게 들여다볼 방안을 찾아야 하고 당장은 국정조사나 특검을 발동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예컨대 전체 유권자의 110% 정도 투표용지를 인쇄하겠다며 지자체로부터 예산을 받았지만 사전투표자수를 뺀 본투표 선거인수의 50%를 하한선으로 인쇄했다. 처음부터 110%를 인쇄했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다만 헌법기관으로서 위상은 인정하되 현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하자는 것이 내 생각이다. 대법관이 중앙선관위원장을, 법관이 각급 선관위원장을 맡는 것이 옳은지도 따져봐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 집권 1년을 평가한다면.

1년밖에 안 돼 평가하기 이른 감이 있다. 윤석열정부 이후 무너졌던 민주주의 절차가 어느 정도 정상궤도로 돌아온 점, 특히 잦은 기자회견과 정부 정책 보고를 국민과 언론에 개방한 국민과의 소통은 잘한 일이다. 우려스러운 점은 세 가지다. 야당·재야세력·국민과 심사숙고하지 않고 힘의 논리로 입법권을 행사하는 입법독주, 법왜곡죄와 4심제 도입 등 위헌적일 수 있는 방식으로 사법부마저 장악하려는 시도, 그리고 무엇보다 재판받는 대통령의 공소를 취소하려는 움직임이다.

대법관을 14명에서 26명으로 늘리면 한 정권이 임명하는 대법관의 2/3 내지 3/4에 이르러 균형에 맞지 않는다. 앞으로 중점적으로 해야 할 일은 첫째 용서·화해·포용·통합의 대통령이 되는 것, 둘째 행정의 달인보다 입법의 달인으로 국정운영 중심축을 국회로 옮겨 타협·협상·설득을 중시하는 정치적 조정자가 되는 것, 셋째 개헌이다.

●우원식 전 의장의 ‘단계적 개헌론’이 실패한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개헌안 통과에는 3분의 2인 200석 이상이 필요해 여야 협의와 합의가 전제돼야 하는데 야당과의 합의를 얻어내지 못하고 시작했다. 또 개헌의 가장 긴급하고 중요한 내용인 권력구조 개헌, 곧 제왕적 대통령제의 가능성을 없애거나 축소하는 문제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결국 여야 공감대와 국민적 공감대를 크게 불러일으킬 요소가 없었다. 쉬운 것부터 한다고 했지만 달리 보면 하는 척하면서 큰 것은 하지 않으려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불식시키지 못했다.

●국민이 원하는 개헌을 하려면.

여론조사에서 개헌 필요성에 찬성하는 응답은 60~70%로 국민적 공감대가 있다. 권력구조 개헌을 통해 제왕적 대통령제의 가능성을 제거하거나 축소하는 방안 곧 내각책임제나 분권형 권력구조로 가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오히려 문제는 국민이 아니라 정치지도자와 대통령에게 있다. 1987년 이후 여덟 대통령이 권한 축소 개헌을 공약하고도 막상 자기 권한을 줄이는 데 대해서는 모두 우물우물하며 미뤘다. 국민에게 무엇을 불러일으킬 게 아니라 대통령과 정치지도자, 국회의원에게 39년간 정체된 체제를 국가 백년대계와 민주주의·정치 발전을 위해 바꿔야 한다는 소명의식을 다시 불러일으켜야 한다. 12.3 계엄의 교훈도 빨리 고쳐가야 한다는 근거다.

●개헌의 적절한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국민적 편의와 공감대 확산을 위해 총선과 함께 추진하는 것도 편리하거나 더 나을 수 있다.

●어떤 권력구조가 적절한가.

개인적으로는 내각책임제로 하고 싶다. 국민적 이해와 여야 정치인의 성숙도는 거의 완성됐다고 본다. 그러나 국민은 아직 자기 통치자를 직접 뽑는 대통령제를 더 선호한다. 그래서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는 분권형 대통령제가 지금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분권형 대통령제의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대통령 권한을 총리에게 넘기고 국회에서 선출해 책임지게 하는 책임총리제, 둘째 상원에 임명권 동의 등을 주는 양원제, 셋째 중앙정부 권한을 지방정부로 이전하는 분권이다. 개헌을 어렵게 하는 경성헌법에서 연성헌법으로 가는 방안도 학자들이 거론하는데 일리가 있다.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 돌파구는.

북한이 두 국가론과 한민족 부정론을 채택한 데는 다섯 가지 배경이 있다. 첫째 체제 안정을 위해서다. 체제 경쟁에서 남한에 졌다는 자각 때문이다. 2023년 남북 국내총생산(GDP)은 북한 36조2142억원, 남한 2161조7738억원이다. 60배 차이가 난다. 2024년 1인당 GDP는 북 143만원, 남 3744만원으로 27배다. 자동차는 북 24만7000대, 남 2550만대로 100배, 항공기는 북 24대, 남 732대로 30배 차이다. 문화적으로도 반동사상문화배격법(2020) 청년교양보장법(2021) 평양문화어보호법(2023) 등 3대 악법을 만들어 한류 흡수를 막으려 한다.

둘째 평화통일은 불가능하고 핵을 앞세운 무력통일만 가능하다는 인식이다. 김정은은 군사력에서 북한이 우위라고 보지만 우리 군사 전문가 100명 중 3명만 북한 우위를 인정하고 대부분은 양적으로는 북한, 질적으로는 남한이 앞선 비대칭이라고 본다. 김정은의 인식과 주장은 과장되거나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

셋째 교류·협력 확대가 북한 정권 붕괴와 남한 중심의 흡수통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다. 넷째 신냉전 대결구도가 핵보유 정당성과 두 국가론에 유리하다는 인식이다. 다섯째 핵보유국 지위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영구화하려는 목적이다.

두 국가론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주장한 통일의 당위성을 뒤집고 1971년 남북기본합의서 이후 다섯 차례 정상회담과 2018년 판문점선언·평양공동선언까지 스스로 번복한 것이다. 1300년 이상 통일국가를 이뤄온 한민족을 둘로 나누려는 반민족적·반역사적 행위다. 한민족 부정론 역시 단군으로부터 공유해온 역사와 동질 의식에 비춰 역사적·현실적·논리적 기반이 취약하다.

대한민국은 단호성·불가분성·일관성·비타협성의 네 가지 원칙 위에서 대응해야 한다.

정책적으로는 헌법적 가치를 강조하는 평화통일 의지 재확인, 자유·평화·민족공동체라는 통일담론 주도, 한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한 민족담론 의제화, 군사적 억제와 평화관리, 북한 주민 대상 통일의식 함양, 700만 해외동포 등 한민족 디아스포라와의 연대 강화, 기후위기 등 초국가적 이슈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다만 당분간은 필요 이상으로 다가가기보다 인내심을 갖고 상황을 관리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

김기수·박준규 기자 k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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