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긴축의 시대로 회귀하는 세계경제
중동전쟁 후유증으로 물가상승 압력이 커지면서 세계가 ‘긴축의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 중동전쟁 발발 이후 주요국 중 처음으로 유럽중앙은행(ECB)이 정책금리를 인상한데 이어 일본이 31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기준금리를 끌어올렸다.
미국도 17일(현지시간) 케빈 워시 연방준비제도(연준)의장이 처음 주재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올해 한차례 금리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바람과 달리 금리인하 기대감을 꺾고 3개월 만에 연내 1회 금리인하에서 1회 금리인상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우리나라도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최근 한은 창립 제76주년 기념사에서 “물가안정에 중점을 두고 늦지 않게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고 말하는 등 3차례나 금리인상 필요성을 강조, 7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 인상이 확실시 되고 있다. 한은 총재가 속도까지 언급하며 금리인상을 기정사실화 한 것은 무척 이례적이다.
유럽 일본 등 세계 중앙은행들 기준금리 인상으로 전환
5월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월 2.6%에서 3.1%로 높아졌다. 3%대로 올라선 것은 2024년 3월 이후 2년 2개월 만에 처음이다. 특히 4인 가구의 식·주거비(올해 1분기 기준)가 월 200만원에 달하는 등 생활물가 상승률이 3.3%까지 높아졌다. 한은은 유가 충격이 다른 부문으로 파급되면서 물가상승률이 당분간 3%대를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고물가 상황은 민생경제에 최대의 압박 요인이다. 뿐만 아니라 가뜩이나 침체에 빠진 내수경제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한국의 기준금리는 연 2.50%로 3.50~3.75%인 미국 기준금리보다 최대 1.25%p나 낮다. 이로 인해 미 달러화가 금리가 높은 미국으로 빠져 나가면서 원달러환율이 달러당 1500원 선에서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기준금리 격차가 더 벌어진다면 원화가치가 추가 하락하고 수입물가가 올라 고물가 상황이 불가피하다.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인한 고물가 대응은 세계 각국 중앙은행의 공통된 고민이다. 최근 미국과 이란이 전쟁 종식을 위한 양해각서(MOU)에 서명했지만 후속협상이 삐걱거리는 등 불확실성이 크다. 국제유가가 내리면서 인플레 완화와 환율안정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60일 이후의 호르무즈 해협 무료통행 여부뿐만 아니라 에너지 공급망 정상화까지 최소 수개월이 소요되고 이스라엘의 반발, 협정 문안을 둘러싼 미국과 이란 간 딴소리 등으로 대외 악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고물가·고환율·고금리 등 ‘3고’와의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라 하겠다. 고물가를 잡기 위한 기준금리 인상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반도체 특수로 수출이 역대 최대를 기록하는 등 금리인상에 따른 후유증을 덜어줄 만큼 맷집이 좋아진 것만은 불행 중 다행이다.
하지만 금리인상은 실물 경제 전반에 적지 않은 충격파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빚으로 버티고 있는 영세 자영업자와 서민 등 취약계층의 이자상환 부담 증가가 문제다. 특히 자영업자 3명 중 1명은 수입이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런가 하면 기준금리 인상 예고로 시장금리와 제도권 대출금리가 미리 뛰면서 지난달 말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연체율이 역대 최대로 폭등했다. 집값 상승을 우려해 대출을 통해 무리하게 집을 산 ‘영끌’들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현재 가계의 소비여력은 각종 대출 폭증으로 최저수준에 머물러 있다. 여기에 금리 인상까지 더해질 경우 가계소비가 더욱 위축될 것으로 예측된다. 더구나 심상치 않은 수도권 전·월세 시장과 반도체 업체들의 성과급 특수로 인한 경기 남부 지역의 집값 폭등세로 미루어 자칫 빚투와 부동산 투기 심리가 되살아나 자산거품을 키우는 새로운 뇌관이 될 가능성도 있다.
정부의 정책 역량 복합 위기관리의 시험대 올라
반도체 경기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호조를 보이고 있기는 하나 금리인상이 가계대출 부실화를 초래하고 이어 금융 시스템 불안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993조1000억원에 달해 2분기 2000조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우리 경제가 3고의 파고에 휩쓸리지 않도록 선제 대응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정·통화당국의 정교한 정책 조합과 구조적 문제 해결 의지가 필수다. 바야흐로 정부의 정책 역량이 복합위기 관리의 시험대에 올랐다.
박현채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