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회생, 2000억원이 가른다
법원, 회생폐지 의견조회 … MBK·메리츠 공방 속 노동자·투자자 피해 확산
홈플러스 회생 여부가 추가 운영자금 2000억원 확보에 달리게 됐다. 서울회생법원이 회생절차 폐지 여부와 관련해 채권자 등 이해관계자에 대한 의견조회 절차에 착수하면서 다음 달 3일로 예정된 회생계획안 인가를 앞두고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자금 확보에 실패할 경우 회생계획안 심의 자체가 무산되고 회생절차 폐지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24일 법조계와 유통업계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 회생합의4부(재판장 정준영 법원장)는 전날 홈플러스 채권자협의회와 주주, 노동조합, 근로자 대표, 관리위원회 등을 대상으로 회생계획안 배제 및 회생절차 폐지 여부에 대한 의견 조회에 나섰다.
법원은 “홈플러스가 구조혁신형 회생계획안 수행을 위해 2000억원의 외부 자금 조달이 필요하다고 밝혔지만 현재까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소명 자료를 제출하지 못했다”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법원이 홈플러스측에 자금조달 계획이나 방안을 제출하라고 요청한 것은 아니다. 재판부는 회생절차 폐지 결정을 검토하기 전 통상 필요한 채권자 등에 대한 의견조회 절차를 진행한 것으로 파악된다.
업계에서는 이를 회생절차의 중대 고비로 보고 있다. 회생계획안 인가 시한은 다음 달 3일이다. 이때까지 실현 가능한 조달 방안이 확인되지 못하면 회생계획안 자체가 심의 단계에 오르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원, 회생 가능성 검증 착수 = 홈플러스는 최근 슈퍼마켓 사업부문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를 NS쇼핑에 매각했지만 회생계획 이행에 필요한 운영자금 확보에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회사측은 상품 공급 정상화와 영업 회복을 위해서는 2000억원 규모의 긴급운영자금(DIP) 대출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회생계획안 실행의 핵심 변수인 2000억원 조달 방안을 놓고 MBK파트너스와 메리츠금융그룹의 책임 공방도 격화하고 있다.
MBK는 홈플러스 회생이 채권단과 협력업체, 임직원 모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며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에 2000억원 규모의 자금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회생계획안에 담긴 구조조정과 영업 정상화를 추진하려면 최소 2000억원의 운영자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반면 메리츠는 1000억원 규모의 긴급운영자금 지원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대주주의 책임 있는 자금 투입이 먼저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홈플러스 위기가 지난 10년간 MBK의 투자금 회수 중심 경영 과정에서 누적된 결과인 만큼 김병주 MBK 회장의 보증이나 추가 출자 등 책임 있는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MBK는 회생절차 개시 이후 김병주 회장의 개인 증여와 대출 보증 등을 통해 이미 상당한 규모의 자금과 신용을 지원했다고 반박한다. 또 선순위 채권자인 메리츠가 담보권을 보유한 상황에서 협상에 소극적이라고 주장한다. MBK는 홈플러스가 청산될 경우 메리츠가 담보권 행사에 따른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이 요구한 것은 책임론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자금 조달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양측이 상대방 책임을 강조하는 사이 정작 회생계획안의 핵심인 신규 자금 조달과 채권 변제 방안은 여전히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계도 양측의 공방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민주노총 마트산업노동조합은 최근 입장문을 통해 “MBK와 메리츠는 책임 떠넘기기를 중단해야 한다”며 “홈플러스 위기의 가장 큰 책임은 MBK에 있지만 메리츠 역시 최대 채권자로서 회생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정부를 향해서도 정책금융과 정부 보증 등을 포함한 긴급 자금 지원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늘어나는 협력업체·투자자 피해 = 회생 절차가 장기화되면서 협력업체와 투자자들의 피해도 커지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홈플러스 납품 중소상공인 15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 업체의 76.7%가 대금 정산 지연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미정산 납품대금은 평균 7억7400만원으로 집계됐다. 응답 업체의 40.7%는 5억원 이상을 받지 못했고 24.0%는 미정산 금액이 10억원을 넘는다고 밝혔다. 납품일로부터 60일 이상 대금 정산이 지연되고 있다는 응답도 98.0%에 달했다.
전단채(ABSTB) 투자자들의 불안도 여전하다. 홈플러스 회생 신청 직전 판매된 4000억원대 자산유동화 전자단기사채는 이번 사태를 개인 투자자 피해로 확산시킨 대표적 쟁점이다. 투자자들은 회생절차가 넉 달 가까이 이어지는 동안 투자금 회수 여부조차 확신하지 못한 채 불확실성을 감내하고 있다. 상거래채권 변제가 재개된 반면 금융채권 변제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피해자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회생 절차는 단순히 한 유통기업의 존속 여부를 넘어 협력업체와 입점 상인, 노동자, 전단채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들의 피해를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가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회생·연장·청산 갈림길 = 업계에서는 앞으로 일주일이 홈플러스 운명을 가를 최대 고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남은 선택지는 △회생계획안 인가 △회생절차 추가 연장 △회생절차 폐지 후 청산 등 세 가지다.
일각에서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각을 통한 자금 유입과 추가 자금 조달 가능성을 고려해 법원이 한 차례 더 시간을 부여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채무자회생법상 회생계획 인가의 최종 시한은 오는 9월 3일이다.
반면 법원이 회생계획안의 실현 가능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할 경우 회생절차 폐지와 청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직원과 협력·납품업체, 입점 상인, 전단채 투자자 등에게 상당한 후폭풍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법원이 판단할 핵심은 회생계획안의 실현 가능성이다. 업계에서는 회생의 전제 조건으로 제시된 2000억원 규모의 운영자금을 실제로 확보할 수 있을지가 홈플러스의 운명을 가를 최대 변수라고 보고 있다.
장세풍·서원호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