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갈등에 흔들리는 종전 체제
이란 “지정 항로만 허용”
트럼프는 도하 회담 압박
미국과 이란이 종전 양해각서(MOU) 체결 이후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과 후속 협상 일정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최근 나흘간의 군사 충돌 이후 일단 확전은 피했지만 양측이 MOU 핵심 조항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면서 60일 휴전 체제가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엑스(X)를 통해 “합의는 양방향의 일”이라며 “미국이 양해각서를 준수한다면 우리도 의무를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비이성적 허세와 실체 없는 위협에 대해서는 의사결정에서 합리성과 인간 존엄성을 기준으로 삼고 행동에서는 단호하고 두려움 없이 방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의 상선 공격에 대한 보복 공습 이후 “상황이 더 악화하면 이란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 데 대한 맞대응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양국은 지난 25~28일 호르무즈 해협 문제를 둘러싸고 무력 충돌을 벌였다. 이란이 해협을 통과하는 일부 선박에 대해 강경 조치를 취하자 미국은 이란 연안 군사시설을 공습했고, 이란도 걸프 지역 미군기지에 보복 공격을 시도했다. 이후 카타르의 중재로 추가 충돌은 일단 중단된 상태다.
갈등의 핵심은 호르무즈 해협 관리 권한이다.
카젬 가리바바디 이란 외무차관은 이날 국영 TV 인터뷰에서 “오만이 협력하지 않더라도 이란은 해협 관리 체계 구축을 추진할 것”이라며 “이란이 지정하지 않은 항로를 이용하는 선박의 통항을 반대하며 이를 차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오만 측에 통항로 재설정을 공식 제안했다”며 “향후 며칠 안에 양국 전문가들이 기술 협의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란은 MOU 5조에 포함된 해협 관리 관련 문구를 근거로 자국이 호르무즈 해협 운영의 중심적 권한을 가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후속 협상이 끝난 뒤에는 해상 서비스 제공 명목의 통행 수수료 부과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국제 관습법과 유엔해양법 협약상 국제해협에서는 자유로운 통과 통항권이 보장된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이란이 국제수로의 통행을 제한하거나 특정 항로 이용을 강제할 권한이 없다고 보고 있다.
MOU 서명 직후부터 불거진 해석 차이는 결국 실제 군사 충돌로 이어졌고, 양측은 현재도 서로가 합의를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후속 협상 일정도 혼선이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루스소셜을 통해 “이란이 회담을 요청해 왔다”며 “30일 카타르 도하에서 회담이 열린다”고 주장했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와 스티브 위드코프가 도하로 이동해 고위급 회담과 실무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란은 즉각 선을 그었다.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향후 며칠 동안 미국과 어떤 수준의 협상도 예정돼 있지 않다”며 “현재 최우선 과제는 양해각서 조항의 이행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란 전문가 대표단이 이번 주 도하를 방문하는 것은 석유 판매 재개와 동결 자산 접근 등 MOU 이행 상황을 점검하기 위한 것일 뿐 미국 측과의 협상을 위한 방문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또 “최종 종전 합의를 위한 협상 단계에는 아직 진입하지 않았다”며 “양해각서상 핵심 조항의 이행이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란 측 설명에 따르면 최종 종전 협상은 호르무즈 해협 개방, 대이란 제재 완화, 석유 판매 정상화, 동결 자산 접근 보장 등이 실제로 이행된 뒤에야 가능하다.
이와 관련해 카타르 등 중재국들은 양측이 MOU를 전면 파기하는 상황은 피하려 하고 있다고 보고 절충안 마련에 주력하고 있다.
한편 레바논에서도 미국이 추진하는 전후 질서 구축 작업이 난관에 부딪히고 있다.
조셉 아운 대통령은 이날 브래드 쿠퍼 미 중부사령관을 만나 레바논 남부 국경지대까지 정부군을 배치해 국가 통제권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이스라엘군 철수 지역에 레바논군을 투입해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영향력을 축소하려는 미국 구상과 맞물린 조치다.
그러나 이스라엘 카츠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헤즈볼라가 무장해제 되기 전까지 추가 철군은 없다”고 못박아 극명한 인식차를 드러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