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대도약 프로젝트’에 앞서 해야 할 숙제

2026-07-07 13:00:07 게재

정부가 최근 발표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로 전국이 들썩이고 있다. 호남권에 800조원을 들여 반도체 팹 라인을 짓고 충청권에 81조원 규모의 패키징 거점, 영남권 등에는 550조원을 투입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등 국토 전체를 ‘한국판 실리콘밸리’로 탈바꿈시킨다는 게 ‘대도약 프로젝트’의 골자다.

이재명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국민보고회를 주재하고 “반도체와 피지컬 AI, AI데이터센터의 압도적 경쟁력을 확보해서 전국 모든 국민에게 성장과실이 골고루 퍼지도록 해야 한다”며 “그 성과가 대한민국의 20~30년을 책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AI 전쟁에서 천문학적 규모의 기업 투자, 정부 지원이 어우러진 국가 대항전이 펼쳐지고 있는 만큼 오직 속도전만이 살 길”이라고도 했다.

성공의 선제조건은 시장의 활력

정부는 청와대에서의 종합 발표에 이어 호남 영남 충청 등 전국을 순회하며 권역별로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를 열어 지역별 비전을 구체화했다. 이 대통령은 광주에서 열린 서남권 보고회에서 “한국형 인공지능 산업혁명을 서남권에서 시작해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첨단산업의 전략 거점으로 우뚝 서게 될 것”이라고 했고, 영남권 보고회에서는 “국내 제조업 1위를 넘어 세계 제조업 1위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이라고 했다. 충청권에서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바이오 등의 집중 투자계획을 설명했다.

주요국들 사이에 AI를 필두로 ‘글로벌 신산업 패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하준경 청와대 경제성장수석이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를 박정희정부 시절의 산업화에 비견하며 ‘선도형 2차 산업화’라고 할 만큼 정부의 의욕도 대단하다. 규모가 방대해서 실행 가능성 여부를 놓고 논란이 빚어지고 있지만 대한민국의 대도약 비전을 담은 큰 그림을 제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평가받을 만하다. 1960년대 이후 대한민국의 대도약을 이끌었던 한국인 특유의 “해 보자” “하면 된다” 정신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지렛대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가 먼저 해야 할 ‘숙제’가 있다. 기업들의 활동 터전인 시장에 온전한 활력이 돌 수 있도록 ‘판’을 재정비하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오랫동안 지속가능한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한계기업, 이른바 ‘좀비기업’을 선별해서 정리하는 조치가 시급하다. 한국은행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는 ‘좀비기업’이 통계 집계 이후 최고치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이자보상비율이 100%에 못 미치는 기업들의 비중이 지난해 39.9%에 달했다. 이자보상비율은 영업이익으로 이자 등 금융비용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로, 100% 미만이면 영업이익보다 금융비용이 많다는 의미다. 시장에서는 이를 ‘한계기업’ 또는 ‘좀비기업’을 판단하는 대표적인 지표로 삼는다. 한계기업 중에서도 영업적자를 기록한 ‘이자보상비율 0% 미만’ 기업 비중이 2024년 26.2%에서 지난해 28.2%로 2.0%포인트 높아졌다.

한국은행은 이런 한계기업들이 정상적인 기업의 투자·고용·생산성·수익성을 떨어뜨리는 ‘혼잡효과’를 유발한다고 지적했다. 은행 등 금융회사들의 자금이 한계기업들에 잠기는 만큼 정상 활동을 하는 기업들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그 여파가 해당 기업들은 물론 전체 일자리 생태계에까지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한은은 특히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한계기업들에 의한 피해를 크게 입는다고 밝혔다. 신용보다 담보, 성장가능성보다 외형이 우선시되는 한국의 기업금융 환경에서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성장기업 발목 잡는 좀비기업 구조조정 선행돼야

이런 상황을 방치해서는 창의와 기술력으로 무장한 기업들의 출현과 성장, 도약을 기대할 수 없다. 산업 내 한계기업 비중이 1%p 높아질수록 정상기업의 투자·고용 성장률은 0.14~0.18%p 낮아지고, 이런 효과는 2~3년 지속된다는 게 보고서의 결론이다. ‘좀비기업’이 정상기업의 발목을 잡아 투자와 고용까지 억누르는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보고서다.

대한민국의 온전한 ‘대도약’을 위해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급선무다. ‘좀비기업’을 정리하는 일은 시행 과정에서 당사자들의 고통과 반발이 불가피해 역대 정부가 꺼리고 미뤄왔지만 더는 방치할 수 없는 숙제가 됐다. 3대 메가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서 특히 중요한 책무임을 새겨야 할 것이다.

이학영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