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공방에 멈춘 홈플러스 회생
서울회생법원 “실행 가능한 자금조달 없어” 회생절차 폐지
노동자·점주 피해 현실화 … 2주 내 책임 있는 결단이 분수령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버텼는데 이제는 가게를 접어야 할 것 같습니다.” “퇴직금이라도 받을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서울회생법원의 회생절차 폐지 결정 이후 홈플러스 현장에서는 생존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생을 멈춘 것은 ‘2000억원’의 부족이 아니라 그 돈을 책임질 주체의 결단 부재였다. 법원이 요구한 것도 단순한 운영자금이 아니라 회생계획을 실행할 현실적인 자금조달 방안이었다. 그러나 최대주주 MBK파트너스와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은 끝내 공동의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고, 그 부담은 노동자와 협력업체, 입점 점주들에게 먼저 돌아가고 있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 회생4부는 홈플러스 회생절차를 직권으로 폐지했다. 재판부는 회생계획안과 수정 회생계획안 모두 최소 2000억원의 외부 운영자금 확보를 전제로 하고 있지만, 회생계획 가결기한까지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자금조달 방안이 제출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회생계획안을 관계인집회의 심리·의결에 부칠 실익이 없다고 보고 회생절차를 폐지했다.
다만 회생의 문이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다. 법원은 폐지 결정 후 14일 안에 운영자금을 확보해 즉시항고하면 폐지 결정을 취소하고 관계인집회를 다시 열 가능성을 열어뒀다. 결국 앞으로 남은 2주가 홈플러스 회생의 마지막 분수령이 됐다.
◆책임 공방만 남았다 = 서울회생법원이 공개한 결정문은 회생 무산의 원인을 분명히 보여준다. 홈플러스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각으로 확보한 1206억원만으로는 운영자금이 부족하다며 최소 2000억원의 추가 자금이 필요하다고 법원에 설명했다. 수정 회생계획안도 적자 점포 37곳을 정리하고 핵심 점포 67곳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하는 내용을 담았지만, 전제는 외부 운영자금 확보였다.
쟁점은 돈의 규모보다 누가 그 돈을 책임질 것인가였다. 법원 결정문에 따르면 MBK는 메리츠가 회생계획 이행에 필요한 2000억원 전액을 대출할 경우 그 가운데 1000억원에 대해 MBK와 김병주 회장이 공동 연대보증을 제공하겠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반면 메리츠는 MBK와 김 회장의 연대보증이 제공되더라도 지원 가능한 DIP(회생채무자대출)는 최대 1000억원이라는 입장을 유지했다.
결국 양측은 각자의 책임 범위만 제시했을 뿐 회생을 위한 공동의 해법에는 이르지 못했다. 법원도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다만 회생계획을 뒷받침할 현실적인 자금조달 방안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했고, 이를 근거로 회생절차를 폐지했다.
회생절차 폐지 이후에도 입장 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메리츠는 MBK와 김병주 회장의 책임 있는 자금 출연을 요구하고 있고, 홈플러스는 MBK가 김 회장의 연대보증 의사를 전달했다며 메리츠에 2000억원 전액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 현장이 떠안은 대가 = 책임 공방이 이어지는 동안 가장 먼저 흔들린 것은 기업이 아니라 현장이었다.
법원 결정문은 홈플러스가 6월 직원 급여를 지급하지 못했고 거래처 대금 지급도 지연되면서 상품 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적시했다. 회생 지연으로 인한 자금난은 영업 현장으로 번졌고 피해는 거래망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일부 직원들은 임금과 퇴직금 지급 여부를 걱정하며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 홈플러스 일반노조와 마트산업노조는 “14일 안에 운영자금 2000억원이 마련되지 않으면 사실상 청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MBK와 메리츠, 정부에 책임 있는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입점 점주들도 한계에 몰렸다. 회생절차 이후 보상을 기대하며 적자를 감수한 채 영업을 이어왔지만, 회생절차 폐지 이후 폐업을 준비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한 점주는 “정상영업을 해야 보상에 유리하다는 말을 믿고 버텼지만 이제는 가게를 정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서는 홈플러스와 거래하는 중소기업·소상공인 150곳의 미정산 납품대금이 업체당 평균 7억74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원은 임금을 걱정하고, 점주는 적자를 감수하며 버티고, 협력업체는 납품대금을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 회생을 둘러싼 책임 공방이 길어질수록 피해는 가장 약한 고리부터 현실이 되고 있다.
◆ 남은 2주, 결단뿐 = 회생절차 폐지가 곧바로 파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법원은 폐지 결정 이후 14일 안에 운영자금을 확보해 즉시항고하면 회생절차를 다시 진행할 가능성을 열어뒀다. 결국 남은 2주는 홈플러스 회생의 마지막 기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는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법조계는 파산 절차가 시작되면 임금·퇴직금과 조세 등 재단채권, 담보채권이 우선 변제되고 협력업체와 입점업체, 전단채 투자자 등 일반 채권은 후순위로 밀리게 된다고 설명한다. 재단채권이 계속 늘어나면 일반 채권은 사실상 변제를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홈플러스 자가 점포 62곳이 메리츠금융그룹에 신탁 담보로 제공돼 있다는 점도 일반 채권자의 회수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으로 꼽힌다. 파산이 현실화될 경우 담보권 실행이 우선 이뤄질 가능성이 커 협력업체와 입점업체, 전단채 투자자들의 피해는 더욱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임금 체불 근로자에 대한 대지급금과 협력업체 대상 4400억원 규모의 긴급 유동성 지원에 나섰다. 그러나 이는 회생을 위한 운영자금이 아니라 피해 최소화를 위한 안전망이다. 회생 여부를 결정할 변수는 결국 2000억원의 운영자금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에 달려 있다.
법원이 요구한 것은 새로운 회생계획이 아니라 이를 실행할 현실적인 자금 확보였다. 하지만 MBK와 메리츠는 끝내 공동의 해법을 마련하지 못했다. 이제 공은 다시 최대주주와 최대 채권자에게 돌아갔다. 정부와 국회 역시 이해관계자 간 협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적인 조정과 점검 역할이 요구된다.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앞으로 2주는 홈플러스의 존속 여부만 결정하는 시간이 아니다. 회생 실패의 비용을 누가 떠안을 것인지, 그리고 누가 회생을 책임질 것인지를 가르는 마지막 시간이 될 전망이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