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강일구 호서대학교 총장
“대학은 사람과 산업을 지역에 붙들어 두는 ‘닻’”
“단순히 졸업장 주는 기관 아니다 … 시대변화 앞서가는 혁신 통해 지역소멸 끊는 마중물 역할해야”
비수도권 지역의 청년 유출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단순 인구 감소를 넘어 생산인구가 줄어 지역 산업 기반이 약화되고 이는 다시 지역 인재 유출과 지역 교육·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에 정부는 지난 4월 종전의 ‘지역혁신 중심 대학 지원 체계(라이즈)’를 ‘지역성장 인재 양성 체계(앵커)’로 개편해 사업 재구조화에 나섰다. 단순히 지역 대학에 예산을 지원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청소년이 지역에서 대학 교육까지 마치고 좋은 직장을 얻어 정주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에 목표를 둔다. 특히 충남 지역은 그 실현 방안으로 조기 취업형 계약학과에 힘을 싣고 있다. 지역의 우수 중견·중소 기업 취업을 보장하는 채용 연계형 계약학과를 지역 대학에 개설, 대학-기업-지역의 인재 확보와 경쟁력 확대를 도모하겠다는 포부다. 충남 라이즈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강일구 호서대 총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호서대는 충남 천안·아산에 위치한 지역 사립대학이다. 이 지역은 수도권 수험생이 진학하는 마지노선이다보니 다른 지역 대학에 비해 인재 확보 측면에선 어려움이 덜하다. 반면 지역 기업과 지자체 입장은 좀 다르다. 지역 대학을 졸업하거나 지역 출신으로 타 지역 대학을 졸업한 우수 인재가 수도권 진출을 선호하면서 인재 확보가 절실하다. 지난달 22일 호서대 총장실에서 만난 강일구 총장은 그 해답을 장영실에게서 찾았다. 82세의 교육자는 시대의 변화를 반걸음 앞서나가는 혁신이 대학 교육에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많은 지자체가 라이즈 대표 사업을 고심했다. 조기취업형 계약학과를 충남 라이즈의 시그니처로 삼은 배경은.
충남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자동차·바이오·수소에너지라는 국가 전략 산업이 집적된 대한민국에서 가장 역동적인 제조 거점이다. 그러나 정작 산업을 떠받쳐야 할 청년은 수도권으로 빠져나가고 기업은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인력 미스매치’와 ‘청년 유출’이 오랜 숙제였다. 앵커의 전신인 라이즈 사업을 설계하면서 우리가 던진 질문은 분명했다. 한정된 지역 재원을 청년과 기업과 지역 모두에게 가장 빠르게 효용이 돌아오는 곳에 어떻게 집중할 것인가. 그 답이 바로 입학과 동시에 취업이 보장되는 조기 취업형 계약학과였다.
조기 취업형 계약학과는 학생이 1학년 때 전공 기초와 현장 실무를 익힌 뒤, 2학년부터 재직자 신분으로 금요일과 토요일에 수업을 들으며 일과 학습을 함께 이어나간다.
교육과정을 대학과 기업이 공동으로 설계하고 졸업장과 동시에 ‘검증된 실무 경력’을 손에 쥔다. 초기취업형 계약학과 확대·내실화를 위해 충남은 2025년부터 2029년까지 약 1천억원 이상의 재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이는 ‘대학의 역할’을 다시 정의한다는 점에서도 뜻깊다. 대학은 더 이상 졸업장을 발급하는 교육기관에 머물 수 없다. 지역 산업의 수요를 읽고 청년의 생애 경로를 기업과 함께 설계하며 사람과 산업을 지역에 붙들어 두는 ‘닻(앵커)’이 되어야 한다.
●‘대학의 역할을 재정의한다’고 했는데, 일각에선 대학이 지나치게 취업에만 집중하는 데 대한 우려도 있다. 이에 대한 의견은.
대학의 역할이 지역이나 학교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한다. 대학은 고등교육 기관으로 학문을 연구할 책무가 있지만 동시에 사회에 진출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대다수 대학생의 학업 역량 등을 고려하면 상당수 대학은 사회 진출 시 필요한 실무 역량·소양 교육의 비중을 더 높여야 한다. 호서대에서의 경험은 이를 확신하게 한다. 호서대는 ‘실사구시의 가치를 추구하는 실용적인 교육’ ‘산업의 요구에 부응하는 실무적인 교육’ ‘사회변화에 대응하는 실현 가능한 교육’ 등 ‘실교육’을 교육 목표로 추구하며 실무 인재를 양성했다.
일반 학과의 교육과정에서도 실제 실무 현장의 문제 해결 역량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아예 기업인이 직접 가르치는 사례도 많다. 자연히 지역 내 견실한 중견·중소기업에서 선호도가 높은 대학으로 꼽힌다. 졸업생은 경력을 쌓아 대기업으로 이직하거나 학업에 뜻을 두고 연구를 하며 발전한 경우가 적지 않고 이들은 대학에 고마움을 표한다.
모든 고등학생이 서울권 대학에 갈 수 없는 것처럼 모든 대학이 연구에 매진할 수 없고, 모든 취업 준비생이 대기업에 바로 취업할 수 없다. 자신의 위치와 경쟁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역량을 높일 방법을 찾아 최선을 다해야 한다. 특히 지금처럼 기술과 산업이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에 속도를 맞춰 대학도 바뀌어야 한다. 호서대가 졸업 연한 특례를 비롯해 학칙과 규정을 전면 개정한 것도 대학 행정 그 자체가 청년의 현실에 맞춰 유연하게 바뀌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기존 대학원 중심의 재교육형 학과를 학부 중심으로 과감히 전환, 2026학년에 반도체디스플레이학과, 첨단산업AI공학과, 물류유통학과를 신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출범 첫해 충남에서만 563명이 지원해 수요를 확인하며 의미있는 첫걸음을 뗐다.
●그간 정부가 지역 대학 육성 및 정주 인력 확보를 위해 많은 정책을 펼쳤지만, 청년이 지역에 남게 하는 것엔 실패했다는 평가가 많은데.
그동안의 정책이 ‘대학을 돕는’ 데까지는 갔지만 ‘청년이 남는’ 데까지 이르지 못한 이유는 정주를 ‘머무름’으로만 보았기 때문이다. 청년은 자신이 성장할 경로가 보일 때 남는다. 따라서 취업률이라는 ‘양’보다 근속·승진·역량 향상이라는 일자리의 ‘질’이 정주의 진짜 조건이다. 이 관점에서 대학과 기업, 지자체의 역할은 분명하게 나뉜다.
대학은 ‘한 번 취업시키는 곳’을 넘어 ‘평생 직무역량을 갱신해 주는 곳’이 되어야 한다. 호서대가 조기 취업형 계약학과와 함께 재직자 대상 재교육형 계약학과를 운영하는 이유다. 입학과 취업으로 끝나지 않고 졸업 이후의 경력 개발까지 잇는 ‘인재 순환 체계’를 만드는 것이 대학의 몫이다.
기업은 ‘채용처’에서 ‘성장 사다리’로 탈바꿈해야 한다. 청년이 떠나지 않게 하려면 명확한 직무 로드맵과 재교육 투자, 그리고 머물고 싶은 좋은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 교육과정 설계 단계부터 기업이 함께 들어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자체는 일자리의 ‘주변’을 채우고 판을 까는 역할이다. 주거·보육·문화·교통 같은 정주 여건을 산업과 동시에 투자하고, 기업과 대학이 상시로 만나는 거버넌스를 행정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결국 핵심은 세 주체가 같은 목표, 즉 ‘5년 뒤 이 청년이 어디서 무엇이 되어 있는가’를 공동의 성과 지표로 공유하는 데 있다. 교육-취업-정주-성장이 끊기지 않고 하나의 선순환으로 돌아갈 때 비로소 청년이 충남에서 ‘있는 것’을 넘어 ‘성장’할 것이다.
●향후 정책적 변화나 정부 예산이 사라진 뒤에도 충남 라이즈의 유산을 이어가기 위한 방안이 있다면.
충남형 모델은 대학 입학이라는 ‘입구’에서의 경쟁이 아니라 ‘출구와 그 이후’를 보장한다. 일단 충남형 계약학과 학생은 20대 초반에 이미 정규직 경력과 학위를 동시에 쌓는다. 재직하며 학업을 이어가기에 등록금과 생활비 부담도 없다. 기업이 직접 설계한 교육과정을 통해 취업 후 ‘바로 쓸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다. 국가 전략산업인 충남의 반도체·디스플레이·AI·수소에너지에 진입할 기회를 얻는 것도 장점이다.
개인적으로 대학 졸업장이 평생을 보장하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첫 일자리를 여는 ‘신호’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 신호보다 더 강력한 경쟁력은 실제 직무역량과 빠른 경력이다. 호서대가 이 모델로 교육부장관상을 받은 것도 이러한 가치가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다. 진로가 비교적 분명하고 현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자 하는 청년에게 가장 강력한 선택지라고 자신한다.
현재 앵커로 재편되고 있는 라이즈 사업이 예산이 사라진 뒤에도 충남에 무언가를 남기려면 적어도 네 가지가 제도로 뿌리내려야 한다고 본다. 먼저 사업비로 만든 계약학과가 유지되도록 대학의 정규 학사 구조와 학칙 안에 내재화해야 한다. 호서대가 졸업 연한 특례 등 학칙을 전면 개정한 것은 바로 이 ‘남기기 위한’ 작업이었다. 사업 단위로 맺고 끝나는 협약이 아니라 지역 산업과 대학을 잇는 상설 거버넌스로의 제도화도 필요하다. 또 도비와 기업 분담, 대학 자체 재원으로 점진적으로 무게중심을 옮겨 국비 의존에서 벗어나는 출구 전략이 처음부터 설계에 들어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졸업생의 근속과 정주, 경력 이동을 추적한 데이터를 지역이 공동 자산으로 축적하고 공유해야 다음 사업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는다.
결국 지역에 남는 것은 돈이 아니라 구조와 관계, 사람이다. 청년과 기업과 대학이 서로를 신뢰하는 지역 생태계, 그 자체가 가장 값진 유산이다.
●향후 ‘충남 앵커는 성공했다’는 평가받으려면 어떤 변화가 나타나야 할까.
성공의 기준은 거창한 수사가 아니라 지역 주민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변화여야 한다. 5년 뒤 2030년 즈음 나타나야 모습은 크게 네 가지다. 청년 순유출의 추세가 꺾이고 전입이 늘기 시작하는 조짐, 충남형 계약학과 졸업생들이 지역 핵심 산업 현장에 자리 잡고 안정적으로 근속하는 모습, 참여 기업이 인재 수급이 수월해졌다고 체감하는 것, 계약학과가 한시적 ‘사업’이 아니라 대학의 정규 간판 학과로 정착하는 것이다.
10년 뒤인 2035년에는 더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을 기대한다. ‘충남에서 배우고, 일하고, 사는 것’이 차선책이 아니라 그 자체로 경쟁력 있는 선택으로 받아들여지면 좋겠다.
1세대 졸업생이 중간 관리자나 창업가로 성장해 후배들을 다시 지역으로 끌어들이고 다른 지역이 충남을 벤치마킹하는 표준 모델이 되어 있기를 바란다.
청년이 ‘떠나지 않아도 되는’ 곳을 넘어 ‘굳이 떠날 이유가 없는’ 충남을 만들어야 한다. 그 중심에 대학이 지역의 닻으로 굳건히 서서 사람과 산업을 함께 붙들고 성장시키는 모습도 원한다. 우리 학생이 지역에 머물며 함께 성장하고 꿈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가진 역량을 모두 쏟겠다. 그것이 라이즈가, 그리고 앵커가 충남에 약속한 미래라고 믿는다.
차염진 기자 yjcha@naeil.com
정나래 내일교육 기자 lena@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