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민간위탁 14조 ‘감독 공백’…회계감사 법제화 목소리
지방자치법 개정안 계류 중, 세무사회 반발에 논의 멈춰 … 6일 입법 토론회 열려
“직역 다툼 아닌 중요한 정책 논의” … 해외는 일정 규모 이상 외부감사 의무화
연간 14조원이 투입되는 지방자치단체 민간위탁사업은 법률상 회계감사 의무 대상에서 제외돼 재정 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지방자치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지만 세무사회의 반발 등으로 국회 논의가 사실상 멈춘 상태다. 전문가들은 이번 법 개정이 회계사와 세무사 간 직역 갈등이 아니라 지방재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이라는 점에서 조속한 입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는 국회의원 연구단체인 ‘국가비전2050포럼’ 주관으로 ‘지방 민간위탁 회계감독 강화를 위한 입법’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주제발표자로 나온 김범준 가톨릭대 교수는 “민간위탁사업 회계감사는 목적 외 사용, 허위거래, 증빙 위조, 가격 부풀리기, 허위 인력 등록 등 부정 집행을 적발해 환수하기 위한 것”이라며 “(세무사 단독으로 수행하는) 간이 검사만으로는 사업비 집행을 제대로 통제하기 어려워 회계감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회계감사는 증빙의 진위 여부와 거래의 실재성, 비용 집행의 적정성, 내부통제 체계 등을 종합적으로 검증하는 반면 결산서 검사는 장부와 증빙 대조 등 형식적인 확인에 그치기 때문이다. 허위거래, 증빙 위조, 단가 부풀리기, 가족 간 거래, 허위 인력 등록 등은 회계감사를 통해서만 적발할 수 있다.
민간위탁사업은 예산을 부담하는 지방자치단체와 납세자, 실제 사업을 수행하는 수탁기관이 분리돼 있어 예산이 목적대로 집행됐는지 감시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일반 기업보다 더욱 엄격한 회계감사가 요구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민간위탁사업은 공공예산으로 운영되는 만큼 납세자인 일반 시민 역시 이해관계자여서 신뢰성 있는 회계정보 제공이 더욱 중요하다.
토론자로 참석한 박성진 한국정부회계학회장도 “현재 국회에 상정된 두 지방자치법 개정안은 직역 간의 영역 다툼이 아니라, 연간 14조원에 달하는 민간위탁 지방재정의 안전망을 어떻게 더 촘촘하고 일관되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정책 논의”라고 강조했다.
◆서울시 회계감사로 복귀, 영국도 중앙집중화 개혁 = 서울시는 2022년 조례 개정으로 민간위탁사업 회계감사를 세무사도 수행할 수 있는 ‘사업비 결산서 검사’로 완화했다가 간이검사만으로는 부정 집행을 적발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이유로 지난해 다시 회계감사 체계로 복귀했다.
박 회장은 서울시의 신속한 환원 조치를 법률 공백을 조례만으로 메우는데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 결정적 사례라고 지목했다. 그는 “민주적 재정 통제는 장부상의 수치가 과연 ‘합리적이고 실질에 부합하는지’를 분석하고, 유사 사업과의 연관 비교를 통해 이상징후를 포착해 낼 수 있는 고도의 감사 숙련도와 독립성이 담보돼야 한다”며 “서울시가 민간위탁 전체의 통합회계감사를 위한 조달청 입찰 단계에서 참여 회계사의 숙련도를 사전 적격심사하는 이유도 바로 감사 품질의 본질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영국의 사례도 소개했다. 영국은 2015년 중앙집중식 지방감사체계를 폐지하고 지방정부 자율에 맡겼지만 감사 기능이 약화되면서 2022~2024년 기한 내 외부감사를 마친 지방자치단체가 1%에 그치는 등 부작용을 겪었다.
결국 영국 정부는 올해 독립 감사기구인 지방감사국(LAO)을 신설하는 등 다시 중앙 관리체계로 전환하는 개혁을 단행했다. 박 회장은 민간위탁 회계감사 역시 일관된 법적 기준 아래 운영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해외 주요국은 대부분 일정 규모 이상의 비영리법인이나 정부 지원기관에 대해 외부 회계감사를 의무화하고 있다. 영국은 일정 규모 이상 자선단체를, 미국은 연방정부 지원금 75만달러 이상을 받은 비영리단체를 감사 대상으로 하고 있다. 캐나다와 호주, 일본도 자산이나 수익 규모 등을 기준으로 외부감사를 의무화하고 있다.
◆"사업비 3억~5억원 이상 외부감사 의무화해야" = 감사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민간위탁사업 부문에서는 그간 부정 집행 사례가 잇따랐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경기지역 한 노인복지관에서는 민간위탁 보조금 10억여원을 횡령해 개인 채무를 갚은 사실이 적발된 사례 등이 발표됐다. 인천의 한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는 10억원이 넘는 민간위탁금을 빼돌려 외제차를 구입하거나 여행 경비 등으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충북의 한 생활폐기물 대행업체는 처리 실적을 부풀려 3억4700만원을 부당 지급받았다가 환수 조치됐다. 지난해 울산시 감사에서도 계약 절차 위반과 보조금 목적 외 사용, 인건비 과다 지급 등 다수의 부적정 사례가 적발됐다. 현재 국고보조금과 지방보조금, 공공위탁 사업은 관련 법률에 따라 외부 회계감사나 검증을 받고 있지만 민간위탁사업은 지방자치단체 조례에 따라 감사 여부와 수준이 달라지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지방자치법 개정안 2건이 계류 중이다. 회계감사 대상을 시행령에 위임하는 방안과 조례에 위임하는 방안으로 갈린다. 박 회장은 “감사비용 관리에 유리한 ‘서울시식 통합감사 모델’을 기반으로 감독체계의 일관성 확보라는 입법 취지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법률의 하위법령인 시행령에 규정해 구속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현행 통상적인 감사 수수료(약 200~300만원선)가 전체 사업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장사 수준인 1% 내외로 합리화되려면, 최소 연 사업비 3억~5억원 이상을 고위험군 외부 회계감사 의무화의 기준점으로 설정해 볼 수 있다”고 제언했다.
또 다른 토론자로 참석한 김상노 회계사(한길회계법인 파트너)는 “제가 현장에서 경험한 사례 역시, 간이 결산검사보다 회계감사가 수행돼야만 납세자 보호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음을 뒷받침하고 있다”며 “향후 입법 논의 역시 형식적 절차의 반복이 아니라 국민의 세금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검증수단으로서 회계감사를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지에 초점을 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광선 건국대 교수(변호사)는 “가장 높은 수준의 독립성을 가지고 있는 전문자격사로 하여금 외부감사 제도를 운영하도록 함으로써 시스템을 정비하는 최근 지방자치법 개정안은 정책적 목적을 충실히 달성하게 할 수 있다”며 “독립성 수준이 높은 만큼 책임도 엄하게 물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