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상승장, 반도체→클라우드 옮겨가나
장비주 주가는 사상 최고 수준 … 월가에선 하이퍼스케일러 재부상론
골드만삭스 트레이딩데스크는 반도체 장비주를 AI 투자 사이클의 다음 수혜주로 꼽았지만, HSBC와 모건스탠리는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아마존, 메타 같은 하이퍼스케일러가 다시 주목받을 수 있다고 봤다. 헤지펀드들은 실제로 반도체와 하드웨어주를 4주 연속 팔아치우며 AI 랠리 내부의 자금 이동을 보여주고 있다.
반도체 장비주 강세의 논리는 여전히 분명하다. AI 반도체 수요가 계속 늘어나려면 칩 설계만으로는 부족하다. 파운드리와 메모리 업체들이 반도체 회로를 새기는 실리콘 원판인 웨이퍼 생산을 늘리고 불량률을 낮춰야 한다. 이 과정에서 회로를 새기고 불량을 잡아내는 제조장비 업체들의 역할이 커진다.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AMAT), KLA(KLAC), 램리서치(LRCX)가 대표 종목이다. 골드만삭스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한달 동안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는 62%, KLA는 55%, 램리서치는 35% 올랐다. AI 투자 사슬에서 “다음은 무엇인가”를 찾는 과정에서 장비주가 답으로 떠오른 셈이다.
문제는 가격이다. 장비주는 이미 사상 최고권에 올라섰고, PER이나 EV/EBITDA 등 밸류에이션 지표도 과거 평균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AI 설비투자가 2026년 이후에도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주가에 상당 부분 반영됐다. 이제는 2분기 실적에서 클라우드 기업들의 투자 지속 여부, AI 투자수익률, 주문 가시성이 확인돼야 한다. 기대가 유지되면 장비주는 중장기 매수 후보가 될 수 있지만, 단기 추격 매수에는 부담이 커졌다.
이 틈을 파고드는 것이 하이퍼스케일러 재부상론이다. 하이퍼스케일러는 대규모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서비스를 운영하는 초대형 기술기업을 뜻한다.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아마존, 메타, 오라클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그동안 AI 설비투자 부담 때문에 매도 압력을 받았다. HSBC의 맥스 케트너 수석 멀티애셋 전략가는 “하이퍼스케일러들이 5~6월 약세장에서 20% 가까이 밀린 것은 과도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들 기업이 여전히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는 만큼, AI 인프라 투자가 실제 매출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확인되면 주가 반등의 호재가 될 수 있다고 봤다.
모건스탠리도 비슷한 진단을 내놨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반도체주의 약세를 시장 상승세가 다른 업종으로 넓어지는 신호로 해석했다. AI 사이클이 이동하면서 투자자들이 반도체주에서 하이퍼스케일러, 소비재, 운송, 바이오주로 눈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하이퍼스케일러는 데이터센터에 막대한 돈을 쓰는 기업이지만, 동시에 광고·클라우드·소프트웨어 같은 강한 본업을 갖고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헤지펀드들이 개별 주식을 팔면서도 지수와 ETF 상품은 사들였다는 점은 시장 전체에 대한 노출을 줄이기보다, 급등한 반도체·하드웨어주 비중을 낮추는 움직임에 가깝다. 골드만은 반도체 장비주, HSBC와 모건스탠리는 하이퍼스케일러를 주목하고 있어 AI 랠리의 다음 주도주를 둘러싼 논쟁은 2분기 실적에서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