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칼럼

역대급 반도체 호황기, 소부장 생태계 다질 골든타임

2026-07-13 13:00:06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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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인공지능(AI) 수요 폭발로 역대급 초호황기를 구가하고 있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필두로 전례 없는 실적을 기록 중이다. 엔비디아의 수장 젠슨 황이 아시아 순방길에서 대만과 한국을 연이어 찾으면서도 과거 반도체 왕국이었던 일본을 제외한, 이른바 ‘재팬 패싱’ 행보는 국제 무대에서 K-반도체의 전략적 위상을 보여준 단면이다.

그러나 화려한 호황의 이면에는 안팎의 냉혹한 현실이 교차한다. 안으로는 원청 기업이 역대급 실적을 올리는 와중에도, 소재·부품·장비(소부장) 하부 생태계는 원가상승과 단가인하 압박으로 이익률이 정체되는 K자형 양극화가 엄존한다. 이번 기회에 호황의 결실이 한쪽으로 쏠리는 구조적 불균형을 과감히 개선하고, 협력사와 실질적인 상생의 틀을 짜야 한다.

밖으로는 주변국의 전방위적 추격이 매섭다. 일본은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해 대만 TSMC를 구마모토에 유치했고, 범용 비메모리를 생산하는 1공장에 이어 최근에는 6~7나노급 첨단 미세공정을 아우르는 2공장 건설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일본의 강점인 탄탄한 소부장 기반이 TSMC의 최첨단 파운드리 및 패키징 기술과 결합해 본격 양산에 돌입할 경우 이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새로운 중대 변수가 될 것이다.

과거 한국이 반도체 사업에 처음 뛰어들었을 때, 세계는 우리의 성공 가능성을 비웃었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기술 집념 하나로 세계 1위에 올랐다. 이 역사는 일본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비록 현재 일본의 제조력이 다소 정체되어 보일지라도 그들 특유의 기초과학 역량과 과거 반도체 패권의 경험, 대만과의 전략적 동맹, 인프라 경쟁력이 유기적으로 맞물렸을 때 어떤 혁신적 결과가 도출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대만 반도체기업들의 유기적 생태계 주목

주목해야 할 부분은 대만정부와 TSMC가 다져온 유기적인 생태계 전략이다. 대만 경제부는 중소 소부장 기업이 차세대 패키징 장비나 핵심 소재를 개발할 때 파격적인 보조금을 지원한다. 정부는 민관 협력 플랫폼을 구축하고 산학연 공동개발을 유도하며, TSMC는 자사의 테스트 라인에서 국산 장비와 신소재의 성능을 직접 검증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 엄격한 검증을 통과한 대만 소부장 기업들은 ‘TSMC 공급망 진입’이란 확실한 보증수표를 쥐고 글로벌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뻗어나가고 있다.

우리에게도 위기를 돌파한 성공 DNA가 있다. 7년 전 7월, 일본의 기습적인 수출규제 당시 정부는 범부처 총력지원 체계를 가동하고 파격적인 R&D 예산을 투입해 소부장 국산화의 마중물을 부었다. 대기업 역시 국내 협력사의 시제품을 실제 라인에 전격 투입하며 검증의 길을 열었고, 그 결과는 놀라웠다. 수출규제 품목이던 불화수소와 감광제를 국내 기업들이 단시간에 국산화하며 공급망을 조기에 안정시켰다.

외산 독점 구조였던 기계산업의 두뇌 컴퓨터수치제어기(CNC)는 과감한 예타 면제 속에 출연(연)과 대기업의 협력 R&D로 상용화에 성공했고, 일본에 절대 의존하던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핵심 소재 파인메탈마스크(FMM)도 대·중소기업 간 공조로 최근 공급망 이원화에 성공했다. 전례 없는 위기를 기술 주권 확보라는 기회로 승화시킨 모범사례다.

최근 모 기업의 대국민 페스티벌은 사회적 책무를 다하려는 전향적인 행보다. 하지만 지금은 일회성 이벤트를 넘어 공급망 전체를 아우르는 훨씬 거시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상생의 밑그림을 그려야 할 때다.

반도체 호황기 속에서 대만 TSMC는 재생에너지 직접구매계약(PPA)에 과감히 투자하고 있다. 특히 계약 물량 일부를 협력사에 배분해 저렴하고 안정적인 녹색전기를 조달하는 공동구매 모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기업이 친환경 인프라를 주도하며 협력사를 품고 공급망 전체 RE100 경쟁력을 견인하는 것, 이것이 글로벌 무대를 주도하는 진정한 키 플레이어의 역할이다.

이번 반도체 초호황은 AI 수요 폭발이라는 외부 요인이 한국의 기술 경쟁력과 동조된 결과다. 주변국과의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우리는 기본에 충실해야 하며, 그 핵심은 탄탄한 소부장 생태계 구축에 있다. 원청 대기업의 투자 여력이 확대된 지금이야말로 생태계의 기반을 다질 최적의 골든타임이다.

대기업 리스크 나누고 정부는 조력자 역할

대기업이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국내 공급망을 합리적으로 활용하고, 중소기업의 신기술 테스트 기회를 제공하며 리스크를 나눌 때 이는 산업의 지속 발전 가능성을 담보하는 가장 확실한 투자다. 첨단기술 경쟁에서 생태계 하부의 부실은 결국 K-반도체 전체를 흔드는 약한 고리가 될 뿐이다.

정부 역시 규제완화를 넘어 대·중소기업 간 협력을 실질적으로 견인할 인센티브를 적극 제공하는 제도적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소부장 상생 생태계를 함께 공고히 다져나갈 때 비로소 글로벌 경쟁에 맞서 반도체 초격차를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연세대 특임교수

전 과학기술인공제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