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란, 다시 전면전 문턱에 섰다
호르무즈 통제권 놓고 무력 충돌
종전 양해각서 사실상 효력 상실
미군의 전투기와 순항미사일이 다시 이란 남부 군사시설을 향했다. 지난달 종전 양해각서(MOU) 체결로 가까스로 멈췄던 미국과 이란의 무력 충돌이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갈등 속에 다시 격화하는 양상이다.
미군 중부사령부(CENTCOM)는 12일(현지시간) “호르무즈 해협을 자유롭게 통과하는 민간 선박과 선원을 공격하는 이란의 능력을 지속적으로 약화시키기 위해 추가 공습을 개시했다”고 밝혔다. 중부사령부는 이번 공격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직접 지시에 따른 것이라며 “이란 병력에 책임을 묻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번 공습은 미국이 지난 7일 이후 이란의 군사 목표물을 공격한 네번째 사례다. 미국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민간 상선에 대한 공격을 재개했다고 주장하며 연쇄 공습을 이어가고 있다.
미 인터넷매체 악시오스(Axios)는 미국 당국자를 인용해 미군이 이날 이란의 미사일 시설과 방공망,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의 소형 고속정 등을 타격했다고 보도했다. 공격 대상에는 호르무즈 해협 주변에 배치된 혁명수비대 전력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역시 남부 군사시설이 미군의 공격을 받은 사실을 인정했다. 국영 IRNA 통신은 호르무즈 해협 인근의 게슘섬(Qeshm Island)에 10~11발의 포탄이 떨어졌으며 군사시설이 공격 목표였다고 보도했다. 이어 반다르아바스와 하지아바드 등 남부 지역에서도 추가 공격이 발생했다고 전했다. 다만 이란 당국은 인명 피해는 없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NBC와 CNN 인터뷰에서 “우리는 어젯밤 그들을 매우 강하게 공격했다”며 “호르무즈는 열려 있고 우리는 그들을 사정없이 폭격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란이 최근 협상 과정에서 사실상 미국 측 제안에 동의했음에도 곧바로 민간 상선 공격에 나섰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은 회담장을 떠난 뒤 한시간도 지나지 않아 드론을 발사하고 함선을 출격시켰다”며 “정신 나간 행동이었다”고 비난했다.
이란은 미국이 먼저 종전합의를 훼손했다고 맞서고 있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는 이날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전면 봉쇄한다고 선언했으며, 최근 출범한 페르시아만해협청(PGSA)은 “미군의 불법적인 군사 활동 때문에 현재 해협 통항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 중부사령부는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제하지 않는다”며 “해협은 국제법에 따라 모든 선박에 열려 있다”고 반박했다.
이란 외무부는 중부사령부의 발표 직후 낸 성명에서 “(미군의) 야만적인 공격은 유엔 헌장의 기본원칙을 심각하게 위반한 것일 뿐 아니라 국제 평화와 안보에도 중대한 위협이 된다”고 밝혔다.
충돌은 페르시아만 전역으로 번져가는 모습이다. CNN에 따르면 미국의 대규모 공습 이후 쿠웨이트는 국경 초소와 해상 석유 시추시설이 드론 공격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카타르는 드론 요격 과정에서 어린이를 포함한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밝혔고, 요르단과 아랍에미리트(UAE)도 미사일 또는 드론 위협을 탐지했다고 전했다.
전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은 미국과 이란 모두에게 전략적 요충지다. 미국과 이란이 서로 상대방이 먼저 합의를 깨뜨렸다고 주장하면서 공습과 보복이 반복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과 항행의 자유를 둘러싼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 한 지난달 체결된 종전 양해각서는 사실상 효력을 잃은 채 중동의 불안만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