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 넘어, 차이를 연결하는 유럽과 아시아

2026-07-15 13:00:02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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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 경쟁 넘어 전략 다변화 … 한국도 국가 간 연결과 결합으로 새로운 경쟁력 만들어야

세계를 미·중 또는 서방·비서방의 대립으로만 읽는 순간 우리는 이미 세계의 절반을 놓치게 된다. 강대국 경쟁은 국제질서를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이지만 그것만으로 오늘날의 국가전략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이제 국가들은 국제환경의 변화를 자국 발전의 기반으로 전환하기 위한 새로운 경쟁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그 방식도 과거와 다르다. 냉전시대 전략의 출발점은 어느 진영에 속하느냐였다. 이제는 상대국 전체를 선택하기보다 국가마다 다른 ‘차이’를 자국 발전전략과 연결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차이란 시장, 기술, 산업구조, 금융, 제도, 외교적 이해관계와 같은 국가별 조건이다.

영국은 일본과 첨단기술 협력을 확대하고, 독일은 중국 시장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한국·일본과 산업구조 재편을 위한 협력을 확대한다. 프랑스와 인도도 서로를 전략 파트너로 활용 중이다.

어느 나라도 하나의 관계에 미래를 맡기지 않는다. 각국은 서로 다른 조건과 역량의 차이를 연결하고 조합해 새로운 발전 기반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곳이 바로 유럽과 아시아의 관계다.

유럽은 왜 아시아를 다시 보나

유럽이 아시아를 바라보는 시선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한때 값싼 생산기지이거나 소비시장 공략 대상이었던 아시아는 이제 국가전략을 함께 설계하는 공간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에너지 위기, 공급망 재편을 겪으며 유럽이 경쟁력을 유지할 새로운 기반을 찾게 된 결과다.

이 변화는 중국을 대하는 방식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유럽연합(EU)의 대중국 상품무역 적자는 2025년 3606억유로까지 확대됐고, 2026년 4월의 월간 적자도 319억유로에 달했다. 하루 평균 10억유로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이에 따라 EU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상계관세 부과(최고 세율 45.3%), 철강에 대한 무관세 쿼터 축소와 관세인상(25%→50%), 탄소규제 등을 통해 핵심산업 보호와 역내 생산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대응은 국가마다 다르다. 프랑스는 반덤핑 조치와 역내 제조업 보호를 적극 추진하는 반면 독일은 EU의 중국산 전기차 상계관세 부과 조치를 끝까지 반대했다. 중국 의존도가 높은 자국 자동차·화학 산업(폭스바겐, 비엠더블유, 바스프의 중국 현지생산 등)을 고려한 철저한 실리적 선택이었다. 스페인은 중국산 수입은 경계하면서도 닝더스다이(CATL), 상하이자동차(SAIC), 체리자동차 등 중국 기업의 투자를 적극 유치하고 있다. 같은 디리스킹이라도 우선순위가 다르다.

이는 유럽이 하나의 대중국 전략이 아니라 국가별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전략을 선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7월 1일 시행된 EU의 철강 세이프가드 개편에서도 국가별 이해관계에 따른 차등 접근이 나타났다.

유럽의 대아시아 전략은 ‘탈중국’보다 ‘중국 이후의 선택지’를 넓히는 데 가깝다. 중국 의존은 낮추되 산업·기술·공급망 협력은 일본·한국·인도·아세안으로 확장하고 있다. 중국은 시장이자 경쟁자, 일본은 기술·경제안보 파트너이며, 한국은 제조와 디지털 산업의 협력국이다.

인도는 성장성과 전략적 자율성의 축이고, 아세안은 공급망 재편의 거점이다. 그리고 대만은 반도체 생태계의 중요 연결점이다. 유럽이 아시아를 여러 나라로 나누어 접근하는 이유는 국가마다 서로 다른 조건이 유럽이 필요로 하는 시장 기술 공급망의 빈틈을 메워 주기 때문이다.

아시아는 유럽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아시아 국가들도 유럽을 과거와 다르게 바라보고 있다. 유럽은 더는 선진시장이나 투자 대상만이 아니다. 중국 일본 인도는 유럽 각국의 산업구조와 정책, 기술과 제도의 차이를 활용해 자국의 국가발전 전략을 새롭게 설계하고 있다. 아시아 역시 유럽을 하나의 블록으로 보지 않는다.

중국은 유럽 내부의 차이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EU가 하나의 대중국 정책으로 수렴하지 않는 점을 전략적 공간으로 삼아 산업협력은 유지하고 투자와 생산거점은 확대하고 있다. 독일의 산업협력과 프랑스의 전략적 자율성, 스페인의 투자 유치가 중국에는 서로 다른 협력의 통로가 되고 있다. 중국이 기대하는 것은 유럽이 미국과 결별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 내부의 산업적 이해 차이가 계속 남아 있는 것이다.

중국은 그 틈에서 유럽과의 경제적 연결망을 유지·강화하려 한다. 그 결과 올해 5월에 중국 자동차 제조사들은 EU의 관세 장벽에도 불구하고 유럽 시장에서 신차 기준 14만대를 팔아 13만대에 그친 일본 경쟁사들을 사상 처음으로 추월했다. 올해 1~5월 중국의 대 EU(영국 포함) 무역액도 전년 동기 대비 13.5% 증가했다.

일본은 미일동맹 연계된 전략축으로 활용

일본은 유럽을 미일동맹과 연계된 또 하나의 전략축으로 활용하고 있다. 영국과의 경제안보 공동선언과 프런티어 기술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반도체·핵심광물·공급망 협력을 제도화했고, 프랑스와는 우주·원자력 협력을, 독일과는 수소·배터리 등 첨단 제조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일본이 유럽에서 구축하려는 것은 시장 확대가 아니라 첨단기술과 경제 안보 규범을 함께 설계하는 규칙 제정(룰 메이커) 연대다.

인도 역시 유럽을 성장 기반과 전략적 선택권을 넓히는 핵심 파트너로 활용하고 있다. EU와 인도의 상품교역은 2025년 1180억유로이며 최근 10년간 83.7% 증가했다. 영국과는 2025년 체결한 자유무역협정이 2026년 7월 15일 발효하면서 교역과 투자, 제조업과 서비스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프랑스와는 2026년 2월 ‘특별 글로벌 전략 동반자 관계’를 바탕으로 방산·원전·우주 협력을 심화하고, 독일과는 녹색수소·기술혁신·직업교육 협력을 통해 제조업과 녹색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인도 역시 어느 한 진영에 의존하기보다 다양한 협력축을 활용해 발전 기반을 넓히는 전략을 선택하고 있다.

결국 아시아 국가들이 유럽에서 찾는 것은 단순한 시장이나 투자가 아니다. 중국은 유럽 내부의 다양성을, 일본은 기술과 규범, 인도는 산업과 성장 기반을 활용한다. 세 나라가 찾는 대상은 같지 않지만, 모두 혼자서는 만들 수 없는 경쟁력을 유럽과의 결합에서 찾고 있다는 점은 같다.

한국은 이 흐름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나

2026년 상반기 한국의 정상외교를 보면 하나의 공통된 흐름이 읽힌다. 협력 대상은 넓어졌고, 내용은 제조업 중심에서 디지털 AI 공급망 에너지 첨단기술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유럽 관계에선 새로운 협력의 중심으로 디지털과 첨단기술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은 EU와 디지털 통상협정을 체결하며 데이터 이동과 전자상거래, 디지털 규범 구축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EU와 한국의 상품교역은 2025년 1240억유로를 넘어섰고, 한국은 EU의 여덟번째 교역 상대다.

한국은 이를 바탕으로 프랑스와 원전·핵심광물·에너지안보를, 이탈리아와 AI·반도체·항공우주를, 동유럽과는 방산·원전을 넘어 제조·에너지·인프라 협력으로 관계를 넓히고 있다. 이는 유럽의 새로운 수요와 한국의 제조 역량이라는 서로 다른 차이를 연결하는 전략이다.

이러한 흐름은 앞서 살펴본 영국 독일 프랑스 중국 일본 인도의 전략 변화와 다르지 않다. 한국 역시 국제환경의 변화에 대응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그 변화를 새로운 국가 경쟁력으로 전환하는 전략을 이미 현장에서 실행하고 있다.

아시아-유럽, 공동의 연결자산 구축해야

향후 유럽과 아시아는 미국과 아시아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투자와 생산기지의 이전을 넘어, 기술·데이터·인재와 같이 쉽게 이전되거나 외부 압력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공동의 연결자산을 구축해야 한다.

21세기의 국가발전 전략은 어느 블록에 속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서로 다른 국가가 가진 시장과 기술, 자본과 생산 역량을 어떻게 결합해 혼자서는 만들 수 없는 새로운 경쟁력을 만들어 내느냐가 더 중요하다. 유럽과 아시아에서 나타나는 변화는 바로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찬우 일본경제연구센터 특임연구원 전 테이쿄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