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 칼럼

‘닥치고 공급’에서 ‘사려 깊은 공급’으로

2026-07-15 13:00:07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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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 전 한동안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았다. 대학본부 8층 교직원 식당도 계단으로 오르내렸다. 남자에게는 허벅지가 중요하고, 계단 오르기가 최고의 운동이라는 선배의 말을 듣고 시작했다.

문제는 이미 그 이전부터 내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점이다. 허벅지만 생각했지 무릎은 잊고 있었다. 결국 무릎 통증이 심해져 한동안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했다. 허벅지만 보느라 정작 우리 몸의 토대인 무릎을 망가뜨린 셈이다. 돌이켜보면 몸 전체를 보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요즘 주택 공급정책을 둘러싼 논쟁을 볼 때면 무릎을 다쳤던 그 경험이 겹쳐 보인다. 집값이 오르면 정치권은 한목소리로 ‘공급 확대’를 외친다. 공급은 필요하다. 하지만 ‘주택’이라는 허벅지만 키우려다 ‘도시와 국토’라는 무릎을 망가뜨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오랫동안 “얼마나 많이 공급할 것인가?”에 매달려 왔다. 이제는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공급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수도권 신도시는 분명 주택난 해소에 기여했다. 그러나 동시에 국토불균형을 심화시키는 또 다른 비용도 남겼다. 2021년 토지주택연구원의 ‘1·2기 신도시 종합평가 연구’에 따르면 1기 신도시 입주기에는 비수도권 인구가 약 41만명 감소했고, 2기 신도시 추진기에도 약 27만명 줄었다. 연구진은 수도권 신도시 공급이 비수도권 인구의 수도권 이동을 가속화한 것으로 분석했다. 수도권 주택 공급은 수도권만의 정책이 아니다. 국토 전체를 바라보며 추진해야 할 국가 정책이다.

수도권 공급정책은 전국토 고려해야

도시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도시 외곽에 새로운 택지와 대규모 아파트를 공급하면 새집은 늘어난다. 하지만 그만큼 원도심의 인구와 상권은 빠져나간다. 문제는 신개발만이 아니다. 재개발과 재건축도 예외는 아니다. 대규모 재개발은 오랫동안 살아온 주민을 다른 곳으로 밀어내기 쉽고, 대규모 재건축 역시 리모델링과 비교한다면 막대한 사회적 비용과 탄소를 발생시킨다. 주택 공급은 늘지만 그만큼 도시도 더 건강해지는 것인지 되묻게 된다.

그래서 공급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부작용과 후유증이 없도록 세심하고 사려깊게 공급해야 한다. 하나만 고집하지 말고 다양한 대안을 검토해 최적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해답은 멀리 있지 않다. 도시를 바깥으로 넓히기보다 안을 단단하게 만드는 공급이다. 그렇다면 사려깊은 공급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첫째, 오래된 저층 주거지는 작은 단위로 천천히 갱신하는 게 좋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한때 추진했던 ‘누리재’가 좋은 모델이었다. 건물주가 스스로 집을 고치기 어려운 오래된 저층 주거지에서 공공이 인접 토지들을 매입해 소규모로 새 주택을 공급하고, 기존 주민은 에너지 효율이 높은 새집에서 계속 살도록 하며, 매각대금은 연금처럼 받을 수 있게 한 방식이다. 새로 확보한 주택에는 청년과 신혼부부가 입주하도록 했다.

낡은 집은 새로워지고, 원주민은 떠나지 않으며, 기존 도시는 더욱 단단해지는 공급모델이었다. 작은 단위의 공급이지만 도시 전체로 보면 훨씬 지속가능한 해법이다. 정책 기조가 바뀌며 본격적으로 확산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둘째, 30~40년이 지난 1기 신도시는 재건축만을 답으로 삼지 말고 다양한 대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리모델링을 통해 성능을 높이고 수명을 연장하며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고 친환경적이다. 특히 입주 당시 아이를 키우던 30~40대 부부가 이제 60~70대가 되면서 대형 평형에는 노부부만 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를 세대분리형으로 리모델링하면 어르신은 익숙한 집에서 계속 살면서 임대소득을 얻고, 청년과 신혼부부는 생활 인프라가 잘 갖춰진 아파트단지에 입주할 수 있다. 젊은 세대가 다시 유입되면 학생수 감소로 폐교 위기에 놓인 오래된 신도시의 초·중·고등학교도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

셋째, 기존 도시 안의 빈 사무실과 상가도 주택공급의 새로운 자원으로 활용하자. 미국 시카고는 코로나19 이후 도심 금융지구의 오피스 공실률이 25%까지 급증하자 새 건물을 짓는 대신 빈 오피스를 주택으로 바꾸는 ‘주거 전환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민간의 참여를 유도하면서도 공공이 재정을 지원하고, 그 대신 일정 비율 이상의 서민주택을 공급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공급의 양뿐만 아니라 기존 도시의 재생과 사회적 형평성까지 함께 고려한 좋은 사례다.

허물기보다 고치고, 넓히기보다 채우고, 새로 짓기보다 되살리는 공급. 이것이 바로 사려 깊은 공급이다.

허물기보다 고치기, 넓히기보다 채우기

허벅지만 생각하면 무릎을 다칠 수 있다. 공급만 생각하면 도시를 다치게 할 수도 있다. 좋은 공급은 많이 짓는 공급이 아니라 도시를 더 건강하게 만드는 공급이다. 이제는 ‘닥치고 공급’에서 벗어나 도시와 사람, 지역, 그리고 국토 전체를 함께 살피는 ‘사려 깊은 공급’으로 전환해야 할 때다.

서울시립대 교수

도시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