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개방돼도 정제유값 오른다
휘발유·경유 공급난 원유보다 심각 … 러시아 정제시설 타격에 내년까지 가격압박
파이낸셜타임스(FT) 15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미국과 이란의 휴전이 무너지며 호르무즈해협의 원유 수송은 다시 크게 줄었다. 세계 원유 공급의 약 20%가 통과하는 해협이 사실상 재봉쇄되면서 북해산 브렌트유는 14일 배럴당 87달러를 넘어 한달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15일에는 약 85달러로 마쳐 이번 주 들어 10% 넘게 올랐다.
비축유라는 완충 장치도 거의 소진됐다. 국제에너지기구(IEA) 회원국들은 지난 3월 발표한 4억배럴 규모 긴급 비축유의 약 75%를 이미 공급했다. 에너지시장 분석회사 에너지애스펙츠의 암리타 센 시장정보 담당 이사는 전쟁 직전 민간 원유 초과 재고가 약 4억배럴이었지만 “이제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정제 능력의 훼손이다. JP모건 원자재 부문 수석 연구원 나타샤 카네바는 최근 보고서에서 핵심 질문이 “원유가 언제 돌아오느냐”에서 “돌아온 원유를 정유시설이 얼마나 빨리 처리할 수 있느냐”로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JP모건은 중동에서 정유공장과 원유 처리시설을 겨냥한 공격이 30건 넘게 발생한 것으로 집계했다. 이 지역 정제 능력은 하루 1170만배럴이지만 즉시 재가동할 시설과 장기 수리가 필요한 시설의 비율은 불분명하다. 올해 말에도 하루 25만배럴 규모가 멈춰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 정유시설 가동량도 정책적 결정으로 하루 300만배럴 감소했다. 호르무즈해협이 잠시 열리는 것만으로는 중국 국영 정유회사들이 가동률을 높이기 어렵다. 원유 수송이 안정됐다는 확신과 정부의 정제유 수출 제한 완화가 필요하다. JP모건은 이 과정이 9월 전에는 끝나기 어렵다고 봤다.
가장 과소평가된 위험은 러시아다. 우크라이나는 최근 3개월간 러시아 정유공장과 저장시설을 잇달아 공격했다. 러시아 정유시설의 6월달 원유 처리량은 연초보다 하루 150만배럴 줄어든 하루 380만배럴까지 떨어졌다. 올해 세계 정유시설 가동량 감소분 820만배럴 가운데 약 20%가 러시아에서 발생했다.
공격 표적도 정유공장 건물에서 수소첨가분해설비와 촉매분해설비, 나프타를 고옥탄가 휘발유 원료로 바꾸는 개질설비 등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시설로 옮겨가고 있다. 이들 시설은 일반 증류설비보다 복잡해 복구에 여러 분기가 걸릴 수 있다.
러시아는 세계 2위 경유 수출국으로 세계 수출량의 약 12%인 하루 80만배럴을 공급해왔다. 중유는 하루 90만배럴, 세계 수출량의 16%를 차지하는 최대 수출국이다. 그러나 최근 경유와 중유 수출은 약 3분의 2 감소했다. 정제하지 못한 원유는 수출시장으로 흘러 원유 공급을 늘리는 반면 정제유 공급은 줄고 있다.
러시아 내부에서도 연료 부족이 확산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주유 제한과 주유소 임시 폐쇄가 이어졌고 독립 주유소 가격이 평소보다 50% 이상 오른 사례도 보고됐다. 러시아 정부는 휘발유를 수입하고 저품질 휘발유 생산을 허용하는 한편 연료 수출을 통제했다.
JP모건은 러시아 정유시설 가동량이 현재 하루 360만배럴에서 2027년 초 450만배럴로 회복되겠지만 2027년 평균은 470만배럴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드론 공격 이전의 하루 530만배럴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에 따라 정제유시장이 더 빠듯한 상태가 2027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호르무즈해협 개방은 원유 가격을 낮출 수 있지만 휘발유와 경유, 항공유 가격까지 곧바로 끌어내리기는 어렵다. 카네바는 세계 정제유 수급의 핵심 변수가 이제 호르무즈에서 약 3200km 북쪽의 러시아 정제시설로 옮겨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