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지상군 카드까지 꺼내 이란 압박
하르그섬 점령·핵시설 폭격 등도 검토
이란 “호르무즈 사수·MOU 의무 중단”
미국이 이란과의 전쟁을 끝낼 ‘결정적 한 방’으로 지상군 투입과 지하 핵시설 폭격 등 대규모 군사작전을 검토하는 가운데 미군은 닷새 연속 이란 군사시설을 공습하며 압박 수위를 끌어올렸다. 이에 맞선 이란은 종전 양해각서(MOU) 이행 중단과 호르무즈 해협 사수를 선언했다.
15일(현지시간) 미국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날 백악관 상황실에서 참모들로부터 이란에 대한 대규모 공세 방안을 보고받았다. 검토된 선택지는 기존 공습 강화, 지하 핵시설 폭격, 지상군을 투입한 호르무즈 해협 주변 섬 점령 등 크게 세 가지다. 미군이 이란 영토에 병력을 투입할 경우 공습 위주로 진행돼 온 전쟁이 사실상 전면전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지상군 작전의 핵심 표적으로는 이란 원유 수출의 약 90%가 통과하는 하르그섬이 거론된다. 이란 해안에서 약 25㎞ 떨어진 하르그섬을 점령하면 이란의 핵심 자금줄을 차단할 수 있지만 국제유가 급등과 점령군에 대한 미사일·드론 공격 가능성이 부담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하르그섬 점령 여부에 대해 “말할 수 없다”면서도 “우리가 그들을 충분히 약화하고 밀어낸다면 그렇게 할 것”이라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아부무사, 대툰브, 소툰브 등 호르무즈 해협의 전략적 섬을 점령하는 방안도 검토 대상이다. 미군이 이들 섬을 장악하면 이란의 해협 통제력은 약화하지만 병력을 장기간 주둔시키는 과정에서 미군 피해가 발생할 위험이 크다. WSJ은 미국이 직면한 진짜 난제는 공격 자체가 아니라 “그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미 중부사령부(CENTCOM) 부사령관 출신인 로버트 하워드 전 해군 중장도 “미군이 지상에 있는 상태에서 이란이 미사일과 드론을 발사하는 것이 가장 큰 위험”이라며 “점령보다 점령 상태를 유지하는 일이 더 어렵다”고 말했다.
미군은 이날 닷새 연속 이란 군사시설을 공격했다. 그동안 주로 야간에 한 차례 공습했던 것과 달리 이날은 주간과 야간에 걸쳐 두 차례 타격했다. 중부사령부는 오전 공습에서 대툰브섬의 해안 방어체계와 순항미사일 저장·발사 시설에 정밀유도무기를 투하했다고 밝혔다. 이어 오후 3시부터 두 번째 공습에 나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을 위협하는 이란의 군사 능력을 표적으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미군은 해상봉쇄 재개 이후 24시간 동안 봉쇄를 뚫으려던 상선 한 척을 무력화하고 두 척을 회항시켰다고 밝혔다. 퀴라소 국적 유조선 벨마호가 경고를 무시하고 하르그섬으로 향하자 미군 항공기가 굴뚝에 헬파이어 미사일을 발사해 운항을 중단시켰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속한 조건 수용을 압박했다. 그는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취재진과 만나 이란의 교량을 공격하기 전 데드라인이 있느냐는 질문에 “나는 데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서도 “그들은 상황을 잘 알고 있으며 제대로 행동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다음 주까지 종전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발전소와 교량 등 이란의 민간 기반시설까지 공격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지하 90~145m 깊이에 건설 중인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곡괭이산’(Pickaxe Mountain) 핵시설에 벙커버스터를 다시 사용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란은 미국의 압박에 협상 거부와 결사항전으로 맞섰다.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현재 미국과 어떤 협상도 계획하고 있지 않으며 오직 국가 방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합의는 상호 의무 이행을 전제로 한다”며 “상대방이 먼저 약속을 위반하면 이란 역시 의무 이행을 중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 측 종전 협상단장인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회 의장도 “미국이 의무를 위반해 이란이 아무런 이익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도 합의를 지킬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갈리바프 의장은 이란의 최우선 군사 목표로 호르무즈 해협 사수를 제시하며 “이란의 국가안보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식 질서’를 유지하는 데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군사 대응과 외교 협상을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도 언급해 향후 협상 가능성을 완전히 닫지는 않았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