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AI 시대의 최대 병목은 송전망이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정부는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피지컬AI 등 이른바 ‘3대 메가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질문에는 아직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들 프로젝트에 필요한 막대한 전력을 어디서, 어떻게 안정적으로 공급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그동안 우리나라 에너지정책은 발전설비 확대에 집중돼 왔다. 원전을 더 지을지, 재생에너지를 얼마나 확대할지가 늘 논쟁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발전량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생산한 전기를 필요한 곳까지 제때 전달하는 송전망이다.
우리나라 전력계통의 가장 큰 특징은 발전소와 전력 소비지가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동해안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야 하고, 앞으로는 호남에 조성될 반도체 클러스터에도 막대한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한다.
하지만 송전망은 이러한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동해안~수도권 초고압직류송전(HVDC) 사업이다. 2009년 착수한 이 사업은 주민수용성과 인허가 문제에 막혀 17년 가까이 완공되지 못하고 있다.
송전망이 제때 확충되지 못하면서 곳곳에서는 발전한 전기를 보내지 못해 출력을 줄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태양광 발전제어는 2023년 2건에서 2025년 상반기 44건으로 급증했다. 송전망의 구조적 병목을 보여주는 신호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AI 데이터센터는 일반 산업시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전력을 24시간 소비한다. 송전망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투자 유치는 공허한 약속에 그칠 수 있다.
미국도 같은 고민에 직면해 있다. 버지니아를 포함한 PJM(전력거래소)관할 지역에서는 데이터센터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100억달러가 넘는 송전망 투자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텍사스 역시 대규모 송전 인프라 확충에 속도를 내고 있다.
물론 송전망 확충이 쉬운 일은 아니다. 주민수용성과 환경문제를 외면할 수 없고, 계통 신뢰도를 완화하는 방안 역시 대규모 정전 위험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안고 있다. 그렇다고 더 이상 미룰 수도 없다. 이제는 발전소 건설과 송전망 건설이 별개가 아닌 하나의 국가 핵심 인프라 사업으로 접근해야 한다. 발전계획과 송전망 계획을 동시에 수립하고, 실시간 계통운영과 에너지저장장치(ESS), 수요반응(DR) 등 새로운 기술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주민 수용성을 높일 수 있는 합리적인 보상체계와 제도 개선 역시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다.
메가 프로젝트라는 화려한 청사진도 송전망이라는 혈관이 막히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AI 강국의 출발점은 국가 전력망의 핵심축인 송전망을 적기에 확충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