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자원개발, 잃어버린 10년 ②
무너진 자원공기업, 다시 뛸 수 있나
잇단 실패에 재무악화 … 신규사업 멈춤
세계는 자원 확보전 … 우리만 뒤처지나
일본 ‘JOGMEC’ 본뜬 통합론 유력 대안
미국·이란 전쟁과 중동 정세 불안, 미·중 자원패권 경쟁으로 에너지와 핵심광물 확보가 국가안보의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명박정부 시절 해외자원개발 실패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원 공기업들은 대규모 부실과 재무 악화로 신규 투자 여력을 잃었고, 해외자원개발은 위축됐다. 본지는 2회에 걸쳐 이명박정부 해외자원개발의 후유증을 진단하고 새로운 자원개발 모델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이명박정부 해외자원개발이 남긴 폐해는 수십조원에 달하는 투자 손실에 그치지 않는다. 잇단 사업 실패는 국내 자원공기업의 발목을 잡았고, 해외자원개발 사업은 10년 넘게 사실상 중단됐다. 세계 주요국들이 국가안보와 산업 경쟁력을 위해 자원 확보 경쟁을 벌이는 동안 우리나라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던 셈이다. 이에 따라 다시 해외자원개발을 추진할 수 있도록 자원공기업을 통합하는 방안이 부상하고 있다. 석유와 천연가스, 광물자원개발 기능을 통합해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내실 있는 해외자원개발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2015년 이후 해외투자 단 3곳뿐 = 이명박정부에서 무리하게 추진된 해외자원개발 사업은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광해광업공단, 한국가스공사 등 자원공기업의 재무구조를 크게 악화시켰다. 대규모 차입을 통해 해외 광구와 광산을 사들였지만 상당수 사업에서 투자금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했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공기업 부채와 손실로 남았다.
공공기관 알리오에 따르면 석유공사는 지난해 말 기준 총자산 19조4442억원, 부채 21조9733억원으로 자본은 –2조5290억원을 기록했다. 캐나다 하베스트 등 이명박정부 시절 대규모 해외자원개발 투자에서 막대한 손실이 발생하면서 석유공사는 2020년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6년째 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광물자원공사와 광해관리공단이 2021년 통합해 출범한 광해광업공단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해외자원개발을 위해 조달했던 차입금이 쌓이면서 공단은 출범 이후 줄곧 자본잠식 상태다. 지난해 공단의 총자산은 4조9034억원인 반면 부채는 8조653억원에 달했다.
가스공사는 자본잠식은 아니지만 해외자원개발 투자 부담과 도시가스 미수금 등으로 높은 부채비율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기준 가스공사의 자본은 10조7989억원인 데 반해 부채는 42조8289억원에 달해 부채비율이 396.6%에 달했다.
재무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내 자원공기업의 신규 해외자원개발은 10년 넘게 사실상 끊긴 상태다. 지난 2015년 이후 새로 추진한 해외자원개발 사업은 석유공사의 UAE ADNOC 사업(2020년)과 호주 광구 두 곳(2025년) 등 3건이 전부다. 광해광업공단은 열악한 재무사정 때문에 해외 직접투자가 금지된 상태다.
◆치열해진 핵심광물 확보 경쟁 = 반면 세계 주요국들은 자원 확보 경쟁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중국 등은 반도체와 인공지능·전기차 등 첨단산업이 부상하면서 이에 필요한 리튬·니켈·코발트·희토류 등 핵심광물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핵심광물 공급망 재편을 국가 전략으로 추진하고 있고, 유럽연합(EU)도 역내 공급망 구축과 해외 광산 투자 확대에 나서고 있다. 중국은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자원개발에 공격적으로 나서는 한편 희토류와 배터리 원료 광물에 대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자원안보를 전략 무기화하고 있다. 일본도 정부와 민간이 함께 해외 광산 투자와 장기구매 계약을 늘리는 중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충돌에 이어 미국·이란 전쟁까지 발발하면서 석유와 가스 등 전통적인 자원 확보의 중요성 또한 다시 커지고 있다.
에너지 빈국인 우리나라의 경우 자원 확보는 생존·안보와 직결된다. 또한 반도체와 전기차 등 첨단산업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자원 확보는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10여년간 해외자원개발이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이명박정부의 실패가 뼈아프다.
◆해외자원개발 ‘새 판’ 짜야 = 전문가들은 다시 해외자원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새 판’을 짜야 한다고 지적한다. 과거처럼 단기간 성과를 앞세워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해서는 안 되겠지만 자원안보와 국가경쟁력 확보를 위해 해외자원개발에 다시 나설 수 있는 새로운 틀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에너지·금속광물자원기구(JOGMEC)를 본뜬 자원공기업 통합 방안은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된다.
앞서 일본 석유공단도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해외자원개발에 공격적으로 나섰다가 유가 하락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일본 정부는 2004년 석유·천연가스 확보 업무를 하던 석유공단과 비철금속광물자원 개발을 담당하던 금속광업사업단을 통합해 JOGMEC을 출범시켰다. JOGMEC은 석유와 천연가스, 금속광물 개발 기능을 하나로 통합해 탐사부터 투자, 채무보증, 기술지원, 정보 제공까지 종합적으로 지원한다. 그만큼 전문성이 높고 효율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에서도 지난 박근혜정부와 문재인정부에서 석유공사와 가스공사를 통합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하지만 20조원에 달하는 석유공사 부채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하면서 진전을 보지는 못했다. 최근에는 석유공사의 부실자산을 한국자산관리공사에 넘기거나 청산하는 방법으로 정리하고 알짜자산만 가스공사와 통합하는 방안이 제기된다. 자원공기업을 통합하고 재무구조를 안정시켜 정상적인 해외자원개발에 다시 나설 수 있도록 하자는 구상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경쟁국들에 비해 해외자원개발이 뒤처지고 있어 걱정된다”며 “부실자산은 배드컴퍼니로 떼어내 정리하고 우량자산을 중심으로 자원공기업을 통합해 해외 자원 확보에 나서도록 하는 게 가장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공기업 개편과 함께 해외자원개발 추진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적 성과를 앞세운 무리한 투자는 배제하고 경제성과 사업성을 중심으로 추진해야 과거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