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정치가 응답해야 할 청년 문제
한국 청년세대는 대부분 인생의 중요단계마다 ‘유예’라는 단어를 달고 산다. 어렵사리 대학에 진학해서는 졸업을 유예한다. 인턴을 해보고 자격증을 많이 따도 마땅한 일자리를 얻지 못해서다. 운 좋게 직장을 구하더라도 형편이 갖춰지지 않아 결혼을 미룬다. 결혼한 뒤에도 육아가 걱정돼 출산을 유예한다. 생애 주기에서 아예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너무 많다.
인공지능(AI) 시대로 급격히 접어들면서 청년들이 겪는 1차 난제인 일자리 구하기는 심각 단계에 이르렀다. 지난주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6월 고용동향을 보면 청년층(15~29세) 취업자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19만7000명이나 줄었다. 청년 고용률은 43.9%로 1.7%포인트 떨어졌다. 청년 비정규직이 146만명, 비율은 43.1%에 이른다. 올해 1월 기준 ‘쉬었음’ 청년이 46만9000명으로 늘어났다. 이와는 달리 50대와 60세 이상에서는 취업자가 외려 늘어났다.
AI시대 더욱 길어지는 ‘청년의 유예’
청년 문제는 지금까지 주로 일자리 부족이라는 단선적인 프레임으로 다루어졌다. 청년들이 마주한 어려움은 일자리, 주거, 교육, 소득, 자산 격차, 심리적 박탈감까지 얽히고설킨 구조적 복합 위기다. 날로 심화하는 청년 난제는 정치가 해결해야 할 구조적 과제가 됐다. 청와대가 윤석열정부 때 폐지한 청년미래비서관을 신설한 것은 청년 문제의 심각성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청년층의 정부·여당 반대표 급증에 놀란 나머지 대응책의 하나로 전담 기구를 만든 느낌을 주는 점이 아쉽다. 청년미래비서관실이 청년 문제의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고, 인공지능 전환과 디지털 혁신으로 청년의 삶에 선제 대응하는 성과를 낸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조직 신설만으로는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실질 효과는 청년층이 느끼는 비용 부담, 진입 장벽, 정보 접근성, 정책 효능감을 얼마나 충족시키느냐에 달렸다. 청년미래비서관실의 역할은 새 정책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여러 부처 정책을 청년의 생애 주기 관점에서 조정하는 기능을 갖춰야 한다.
한국 정치는 청년을 표심잡기 ‘이벤트성 소모품’으로만 소비할 뿐 그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꿀 근본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방선거에서 2030세대의 표심이 보수로 돌아서자 청년문제를 고심하기 시작했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반색하며 표정관리만 하는 듯하다. 정치는 ‘청년 인턴 몇만명 확충’과 같은 단기 아르바이트 형태 대책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청년들도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사회 안전망과 임금 격차 완화 정책을 제도화해야 한다. 상생형 임금체계 구축과 격차 해소 보조금 같은 것을 고려해 볼 만하다.
청년을 정치적 도구로 소비하는 정당 구조부터 바꾸어야 한다. 청년 정책은 여러 부처에 파편화해 있어서 일시적인 청년 수당 같은 생색내기용 현금성 지원에 그치는 사례가 많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올해 반도체 초호황 덕분에 예상되는 추가 세수로 마련할 미래대응기금의 가장 우선 투자 순위가 청년이라고 밝혔다. 청년을 위한 맞춤 정책 설계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했지만,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한 달에 몇십만원을 지급하는 시혜성 복지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정치는 청년 문제를 시혜적 관점이 아니라 국가의 생존이 걸린 구조 개혁의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 지금 한국의 청년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기성세대가 구축해 놓은 공고한 기득권 사회와 이를 방치한 정치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나 다름없다. 청년들이 정책의 수혜자를 넘어 설계자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통로를 열어줘야 한다.
정책의 수혜자 아닌 설계자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통로 열어줘야
정치 참여 확대와 거버넌스 혁신이 절실하다. 정당과 국회, 지방자치단체가 청년정책위원회를 상시 운영하고, 청년이 제안한 정책의 검토 결과와 예산 반영 여부를 공개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정당별 청년정책위원회는 이벤트성 자문기구가 아니라 예산 편성 과정과 정책 검토 과정에 연결되는 형태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청년이 제안한 정책이 어떤 근거로 채택됐는지, 왜 반려됐는지, 예산에 어느 정도 반영됐는지를 공개하면 정책 신뢰도를 높일 수 있겠다. 많은 청년 정책이 결정 과정에서 청년들의 목소리는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 지방의회와 국회, 정부위원회 등 다양한 정책 결정 과정에 청년 참여를 늘리고, 청년들의 의견이 실질적으로 정책에 반영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그게 정치의 역할이다.
김학순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