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이 현실로 기후테크
국제 기후테크 ‘자금 절벽’…마중물 자본이 해법될까
미국 영국 등 기술 성공해도 상용화 문턱 못 넘어 … 공공·민간 촉매 펀드로 ‘죽음의 계곡’ 건넌다
‘스타라이징 기업 얘기만 하지 말고 실제 스타기업은 언제 탄생하나’. 환경분야에서 꽤나 오래전부터 나온 이야기입니다. 기후변화 붐을 타고 최근 이러한 열망이 좀 더 구체화하는 분위기이지만 업계에서는 ‘과연 얼마나 실현될까’라며 의구심을 표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일각에서는 기술 혁신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제도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고 우려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렵게 얻은 기회를 또다시 놓칠 수는 없습니다. 기후테크 육성을 위해 해외에서는 어떠한 시행착오를 겪어왔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떠한 변화를 일궈내야 할지 등 다양한 고민을 담아봤습니다.
“기후테크 기업에 대한 지원이 생애주기별로 다르게 진행될 필요가 있습니다. 초기 지원과 중후기 지원 내용이 달라야, 기술개발에 성공하고도 사업화 자금이나 시장 수요 부족으로 상용화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이른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기술 지원 정부 정책이 있는 만큼, 기후테크 분야는 중후기 지원에 강점을 두는 방향도 고려해볼 만합니다.”
16일 김종규 한국기후테크협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기후테크협회는 클린테크·카본테크·에코테크·푸드테크·지오테크 등 기후테크 5대 분야 기업과 투자사들이 뜻을 모아 탄생한 협회다. 죽음의 계곡을 어떻게 넘을까를 둘러싼 고민은 국내만의 문제는 아니다. 기후테크 산업을 앞서 육성해온 해외에서도 비슷한 단계에서 자금이 끊기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영국 국가혁신기관 이노베이트UK의 ‘영국 기후테크 스케일업 해법’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에는 2600개 이상의 기후테크 스타트업이 있지만 기술을 처음 상업규모 설비에 배치하는 ‘최초상용화(FOAK)’ 단계에서 자금이 끊기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이 단계에 필요한 자금은 통상 2500만파운드에서 1억파운드 이상으로, 벤처캐피털의 투자여력을 넘어서는 규모다. 매출이 발생하기 전 단계라 은행 대출도 받기 어렵다. 보고서는 초기 단계는 이미 그랜트·벤처캐피털 지원이 탄탄하다고 짚으면서도, 정작 이 후기 단계에서 공백이 벌어진다고 진단했다.
벤처투자기관 월드펀드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 ‘유럽 기후테크의 시리즈B 펀딩 갭’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확인됐다. 2010~2020년 시드 투자를 받은 기업 중 2025년 2분기까지 시리즈B에 도달한 비율은 미국이 24.5%인 반면 유럽은 14.7%에 그쳤다.
이러한 격차는 유럽 전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시리즈B 진입 비율이 가장 높은 독일(20%)조차 미국에 못 미쳤고, 네덜란드·북유럽 국가들은 11%로 가장 낮았다.
또한 영국의 평균 시리즈B 투자 규모는 2570만달러로, 유럽에서 가장 큰 독일(5570만달러)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유럽 기후테크의 시리즈B 펀딩 갭’ 보고서에서는 이러한 시리즈B 공백이 2020~2024년 유럽과 미국 간 135억달러 규모의 자금 격차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시드 투자는 아이디어나 시제품 단계에서 받는 초기 투자 단계다. 시리즈B 투자는 사업모델 검증을 마친 기업이 생산설비 구축이나 시장 확대 등 본격적인 사업 확장을 위해 받는 후속 투자 단계다.
유럽 클린테크 정책단체인 클린테크포유럽은 ‘클린테크 1분기 브리핑(Cleantech Q1 Briefing 2025)’에서 유럽 클린테크 기업이 2030년까지 1000억유로 이상의 투자공백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노베이트UK는 정부자본을 촉매로 쓰는 ‘우산형’ 펀드를 제안했다. 정부가 먼저 자본을 투입해 신뢰신호를 주거나 손실 일부를 보증하면, 원래는 투자를 꺼리던 연기금 등 대형 민간자본이 뒤따라 들어온다는 구상이다. 목표 레버리지 비율은 1대6, 정부 1파운드로 민간자본 6파운드를 끌어오는 것이다. 최소 9억파운드 규모 펀드 중 정부 부담은 2억4650만파운드에 그친다.
미국에서는 정부가 아닌 민간·비영리 영역에서 유사한 시도가 진행 중이다. 비영리 임팩트투자기관 엘리멘털임팩트는 보스턴컨설팅그룹(BCG)과 함께 발표한 보고서 ‘트래버싱 더 클라이밋 테크놀로지 스케일 갭’에서 이 자금공백을 1500억달러 규모로 산정했다. 이 기관은 문제를 벤처캐피털이 감당하는 초기 투자와 대규모 기반시설·성장자본 사이의 ‘자금 공백’으로 규정했다. 엘리멘털임팩트는 또한 ‘어나운싱 더 디세이프’ 발표 자료를 통해 인허가·부지확보·설계 등을 처리하는 개발자금이 특히 부족하다는 점에 주목해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와이콤비네이터의 투자계약 방식을 응용한 자체 금융상품(D-SAFE)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도 기후테크 육성을 위한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인공지능 전환(AX)과 녹색전환(GX)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덩달아 기후테크 산업 육성이 화두다. 지난해 10월에는 범부처 기후테크 전담반(TF)이 발족해 관계부처 합동으로 ‘기후테크산업 육성방향’을 수립해왔다. 올해 3월에는 기후에너지환경부와 중소벤처기업부가 공동으로 민관 상시 소통창구인 ‘기후테크 혁신연합’을 출범시켰다.
국회에서도 기후테크 육성을 위한 법안 발의가 잇따르고 있다. 김주영 의원(더불어민주당·경기 김포시갑)은 6월 8일 ‘기후테크 산업 육성 및 혁신 생태계 조성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발의했다. 박 정 의원(더불어민주당·경기 파주시을)도 6월 29일 ‘기후테크 육성 및 혁신 생태계 조성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발의했다.
두 법안 모두 기후테크 기업의 감축·적응 기여도를 기후테크 성과로 규정하고 이를 과학적으로 평가하는 체계를 도입하는 한편, 정부의 5년 단위 기본계획 수립과 전담기관·지역 지원센터 지정을 통해 산업 육성 추진체계를 갖추도록 했다.
아울러 초기 사업화 지원금 지급, 투자조합 등 금융·세제 지원 근거를 마련하고 규제 신속확인·실증특례·임시허가 등 규제특례 제도를 도입해 죽음의 계곡 문제 해소에 초점을 맞췄다. 야당인 국민의힘에서도 관련 법안 발의를 준비 중이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