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진출 기업, 국내 고용·매출 더 늘었다”…KIEP 분석보고서
“해외투자, 국내 일자리 뺏지 않아 … 미국·글로벌 사우스로 생산영토 넓혀야”
KIEP, 트럼프 2기 고관세 파고 속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 재구축 보고서 발간
미국과 첨단동맹 강화하고 인도·베트남 등 신흥거점 다변화 ‘투트랙 전략’ 제안
한국 기업의 해외직접투자(FDI)가 국내 일자리를 앗아가는 ‘산업 공동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통설을 뒤집는 국책연구기관의 분석결과가 나왔다. 해외 생산거점 구축이 국내 본사 매출과 고용을 동시에 늘리는 선순환 효과를 낸다는 실증 결과가 제시되면서 고관세와 대외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 경제의 ‘생산 영토’를 미국과 신흥국으로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22일 발간한 ‘한국의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 재구축을 위한 정책과제 연구’ 보고서에서 2006년부터 2023년까지의 기업활동조사 패널 데이터를 정밀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국내 고용·매출 동시 견인 =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직접투자(FDI)를 집행한 국내 제조업체들이 투자를 하지 않은 유사 기업에 비해 국내 매출액과 고용 규모를 모두 유의미하게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진출이 국내 산업의 ‘공동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와 달리 오히려 국내 본사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KIEP 연구진이 2006년부터 2023년까지의 기업 패널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외직접투자의 실질적 효과를 추정한 결과 해외투자를 단행한 기업은 미진출 기업보다 국내 매출액이 약 8.2%~11.5% 더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고용 역시 동반 상승했다. 해외진출 기업의 국내 종업원 수는 미진출 기업보다 약 4.1%~6.3% 추가 증가했다. 국내 연구개발(R&D) 투자액 또한 5.5%~7.8% 증대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런 결과는 해외 생산거점 구축이 단순한 국내 제조라인의 이전을 넘어서 해외시장 점유율 확대를 통한 ‘국내산 중간재 수출 유도’와 ‘본사 기능(R&D·마케팅·관리) 강화’로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또 해외법인으로 공급되는 부품과 중간재 수요가 늘면서 국내공장 가동률과 고용 기반이 동시에 확대된 셈이다.
보고서는 “보호무역주의 심화 등 대외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한 기업의 해외 생산 네트워크 재구축은 국내 경제 축소가 아닌 성장동력 확보의 전략적 카드”라며 “정부 차원에서도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의 동반 해외진출과 R&D 인력 수급을 다각도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중간재수출 통한 보완관계 형성 = 이 같은 현상의 주요 원인으로는 ‘중간재 수출을 통한 보완관계 형성’이 꼽힌다. 국내 기업이 해외에 생산기지를 구축하더라도 현지 법인이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국내 본사와 국내 기업으로부터 부품, 소재, 장비 등 중간재 매입을 대폭 늘리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해외 생산 네트워크 확장이 국내 본사의 중간재 수출 증가로 이어지는 구조다.
아울러 해외직접투자는 비용절감과 글로벌 시장 접근성 확보를 통해 기업 전반의 생산성과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통해 강화된 국내 사업 기반이 다시 국내 고용 창출과 유지로 연결되는 선순환 채널이 구축된다는 분석이다.
한편 2017년 미·중 통상분쟁 이후 국내외 기업의 해외투자 지도는 크게 요동쳤다. 과거 최대 생산기지였던 중국으로의 투자유입은 급격히 감소했다. 반면 미국의 인센티브 정책과 통상 장벽 회피를 목적으로 한 대미 투자는 폭증했다.
KIEP가 주요 10개 산업전문가와 기업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기업해외진출 전략변화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컸다. 응답자의 81.6%가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 재구축이 필수적이라고 답했다. 주요 위기 요인으로는 ‘미국의 고관세 정책(29%)’과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성(16%)’을 꼽았다. 선호 투자 대상국으로는 미국(49%)이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베트남(10%), 인도(9%)가 뒤를 이었다.
◆거점별 ‘맞춤형’ 재편 전략 제안 = 해외투자의 선순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권역별 차별화 전략도 주문했다. 미국의 경우 한미정례협의체를 강화해 통상 리스크를 줄이고 단순 투자를 넘어 신산업 기술 협력과 인재 양성을 공유하는 ‘양방향 혁신 통로’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기존 중국 내 생산설비의 기능을 고도화하거나 전환해 자산 유휴화를 막고 탈중국 흐름 속에서도 시장협력채널은 전략적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떠오르는 신흥시장인 글로벌사우스(인도·베트남·인도네시아)에 대한 각별한 관심도 촉구했다. 특히 △인도의 중소기업 진출 지원 △베트남의 공적개발원조(ODA) 연계 제조업 생태계 조성 △인도네시아의 핵심 광물(니켈 등) 공급망 협력 등 신흥 생산 거점으로 적극 활용할 것을 주문했다. 미주 거점국인 멕시코·브라질을 북미·남미 시장진출의 우회 거점이자 생산 네트워크 이원화 창구로 삼아 지역 블록화에 대응할 것도 제안했다.
KIEP는 공급망 재편이 성공하려면 정부의 종합 지원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제조기반의 고도화를 위한 ‘AI 팩토리’ 구축을 지원하는 한편, 대기업 해외진출 시 국내 중소·중견기업이 동반 진출할 수 있는 통상 외교력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단발성 지원에 그치던 ODA 정책을 현지 고숙련 인력육성과 연계하는 ‘산업 ODA’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 구경현 KIEP 연구위원은 “저비용과 효율성 중심의 유구했던 글로벌 분업체계는 이미 종식됐다”고 전제하면서 “무조건적인 탈중국이나 리쇼어링(국내 복귀)에 집착하기보다 미국과 첨단기술 동맹을 견고히 하고 글로벌 사우스로 거점을 넓히는 ‘스마트 다변화 전략’을 실행해야 할 때”라고 제언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