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극장을 만드는 사람 요꼬 한승연 교수
2015-03-04 17:57:25 게재
‘주말에 뭐해? 문래동에서 같이 놀자!’
문래창작촌 입구 건물에 자리 잡은 독특한 외관의 요꼬스튜디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 또한 예사롭지 않다. 좁은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작가다운 감성으로 개성 있게 꾸민 공간이 나온다. 사진작가이자 서울예술직업전문학교 패션디자인학과 교수인 한승연씨의 작업실이다. 프로필사진, 모델, 제품광고 등을 촬영하는 광고전문스튜디오인 이곳은 주말이면 극장으로 변신하는 색다른 공간이다. ‘주말극장’은 주로 소규모 극단이나 1인극을 하는 예술인들, 실험적인 내용으로 자유롭게 공연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무대에 선다. 발상의 전환으로 주말극장을 시작한 기획자 한승연씨를 만나보았다.

사진과 사람, 징검다리처럼 이어진 만남들
한승연 씨는 요꼬라는 닉네임을 달고 다닌다. 궁금증을 자아내는 그 별명은 뜻이 의외로 단순하다. ‘욕쟁이 꼬마’를 줄인 말로 고등학생 시절 담임선생님이 지어준 별명이란다.
“덩치가 작아 힘으로는 이길 수 없으니 말이 거칠게 나갔지요. 특히 욕을 잘했어요. 혼내실 법 한데 오히려 귀여운 별명을 지어주신 좋은 선생님을 만났던 거지요.”
사진과의 첫 만남은 중학 1학년 때다. 향토연구반이라는 학교동아리활동을 했는데 동아리 특성상 사진 찍을 일이 많았다. 좋은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에 학교 교사이자 아마추어 사진작가인 교회 선생님의 지도아래 출사를 다니며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입학 후 자연스레 사진동아리에 들어갔는데 부모님을 졸라 당시 70만원이 넘는 고가의 카메라를 살 정도로 사진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주목받은 적이 없고 늘 외로웠어요. 사진을 찍어 주면 사람들이 고마워하고 관심을 가져주니 어린 마음에 너무 좋았었지요. 사진을 업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은 고3 때 했어요. 입시를 앞두고 전문사진작가인 남일성 선생님을 찾아가 개인레슨을 받았습니다. 취업 준비 학생으로 분류돼 6개월 동안 학교에 가지 않고 하루 20시간을 선생님 옆에서 청소와 심부름, 사진작업 조수 역할을 하며 배웠지요.”
관심 받고 싶어 시작한 사진, 업이 되다
사진은 추억이 담겨있고 삶의 기억을 잠시 멈추게 하는 힘이 있다. 찰나를 잡는 기술은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고 작품으로 인정받기도 한다. 한승연 씨는 사진을 배우며 살아 있는 인물의 표정과 생생한 장면을 담고자 시장상인들을 자주 찍으러 다녔다. 초상권을 침해당한 상인들에게 욕을 먹기도 했지만 몰래 사진을 찍은 후 줄행랑을 치면서까지 욕심을 냈다. 사진병으로 군을 제대하고 스튜디오에서 학업을 병행하며 일을 했다. 대학 졸업 후 예술사진을 찍고 싶어 프리랜서로 전향, 개인 작업실을 열고 틈만 나면 출사를 다녔다.
“월세를 제외하고 하루 용돈 2000원만 채워지면 일을 안했어요. 사진동호회를 운영하면서 사람들을 가르쳤지요. 동호회 회원이었던 출판사 관계자의 권유로 책을 집필했고 그 일을 계기로 강단까지 서게 됐습니다.”
그는 ‘꼭 한 번은 가봐야 할 DSLR 출사지&촬영테크닉’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5권의 사진관련 책을 펴냈다. 그 중 ‘스마트폰카메라 무작정 따라하기’는 스마트폰 카메라로 DSLR 카메라 못지않은 품질과 다양한 효과를 줄 수 있다는 내용의 촬영 가이드를 제시해 대중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독특한 발상 주말극장, 공연비는 감동후불제로
주말극장은 공연비가 없다. 대신 감동후불제가 있다. 관객에게 공연 중 조용히 해달라고 하지 않고, 젖먹이 아기와 동행한 엄마를 돌려보내지 않는다. 공연자와 관객의 거리가 가까워 관객이 공연의 일부가 되거나 가끔 무대로 초대되는 일도 있다. 입구에 마련된 음료수와 간식을 먹으며 공연을 즐기고 무대가 끝나면 주인공들과 관객이 같이 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일반적인 극장과 전혀 다른 주말극장은 우연한 계기로 시작됐다. 한승연씨는 자신의 책 ‘스마트폰카메라 무작정 따라하기’ 출판기념회에 초대된 공연팀의 무대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소규모 공연이나 퍼포먼스 정도라면 스튜디오에서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거리 공연팀이나 연습팀, 혹은 실험적인 극을 할 경우 관객 모으기에 앞서 무대를 빌리는 것조차 힘이 들죠. 연극배우를 꿈꾸지만 여력이 없는 사람들을 돕고 싶었습니다.”
한 달 정도 로고와 엽서를 만들고 입간판을 준비했다. 공연비를 받지 않는다는 조건이라 무대에 설 공연팀을 섭외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감동후불제라는 새로운 시도가 효과가 있을지, 그 또한 고민이 되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용기를 냈다. 관객을 무료로 초대하고 자유롭게 감동비를 내도록 하면 지인이 아닌 진짜 관객으로 객석을 채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사랑’이라는 주제로 12주 동안 이어진 워크샵 공연은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2014년 3월, ‘날아라 주말극장’ 프로젝트를 만들어 14개의 공연팀을 섭외했고, 뮤지컬, 밴드, 연극, 스턴트 등 다양한 내용으로 무대를 채웠다.
“주말극장에서 처음 공연을 한 팀이 있었어요. 이후 홍대 ‘살롱극 페스티벌’에 사진을 찍으러 갔다가 그 팀이 1등한 것을 보고 무척 뿌듯했습니다. 지금은 공연 다니느라 바쁘다고 하네요.”

3월부터‘주말에 나와, 같이 놀자!’공연 시~작!
한승연 씨를 도와 함께 주말극장을 꾸려가는 사람들은 그가 평소 알고지내는 후배들이다. 기자, 연예기획사대표, 회사원, 디자이너 등 모두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주말이면 공연을 위해 뭉친다.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홍보와 기획, 연출, 동영상 등의 업무를 맡아 공연팀을 지원하고 관객들의 도우미역할을 자처한다. 이런 노력덕분에 최근에는 대학로나 소규모 극단에서 먼저 연락을 취해올 정도로 입소문이 퍼졌다고 한다. 3월 7일부터 시작되는 ‘주말에 나와, 같이 놀자!’ 프로젝트는 연극, 가야금앙상블, 보컬그룹 등 총 21팀이 14주 동안 무대에 오른다. 그 중 반응이 좋은 두 팀을 뽑아 6월 26일부터 28일까지 문래예술공장 박스시어터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또한 영등포 아트홀에서의 공연도 기획하고 있다.
“주말극장을 시작한지 곧 있으면 1년이 됩니다. 지금은 투자에 비해 수익이 적지만 사람들의 관심이 점점 커져가는 것에 기대를 걸고 있어요. 객석이 그리 넓지 않으니 내년 이맘때쯤이면 매주 관객들로 꽉 찬 주말극장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죠. 주말극장을 통해 실내무대를 경험한 팀들이 좋은 극단을 만나고 훌륭한 배우가 되길 바랍니다.”
정선숙리포터choung2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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