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클릭 후, 아동이 겪는 진짜 이야기’에 응답해야 할 때
아이들에게 안전한 놀이 및 교육의 장이어야 할 디지털 공간이 오히려 가장 큰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매일 같이 아동 피해 사례가 기사로 보도됨에도 여전히 아동은 보호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인 경우가 많다. 이는 국가 정책과 플랫폼 운영이 수익과 성인 중심으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초록우산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최근 ‘제7차 유엔아동권리협약 심의 대응 아동보고서’를 발간했다. 우리나라는 1991년 유엔아동권리협약 비준 이후 5년마다 이행 보고서를 제출하고,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심의를 받아왔다. 7차 심의를 앞두고 발간한 ‘클릭 후 우리가 겪는 진짜 이야기’는 지난 20개월간 전국 각지의 초록우산 아동권리옹호단이 6차례 워크숍을 거쳐 완성했다. 아동들이 온라인에서 직접 경험한 문제를 기록하고 스스로 해결방안을 제안한 이번 보고서에는 아동 504명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겼다.
보고서 내 아동들의 설문조사에서는 디지털 환경 속 아동이 겪는 문제의 심각성을 확인할 수 있다. 온라인에서 욕설이나 폭력적인 장면을 본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아동은 360명으로 71.4%에 달했다. 사실이 아닌 거짓정보를 접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아동은 314명으로 62.3%였으며, 설문에 참여한 아동 중 ‘약관을 꼼꼼히 읽는다’고 응답한 아동은 108명으로 21.4%에 불과했다.
아동 71.4% “온라인 욕설, 폭력장면 경험”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이유는 보고서 내 아동의 응답에서 찾을 수 있다. 유해 콘텐츠는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알고리즘을 통해 끊임없이 추천된다. 약관은 수천 자에 달하며 ‘법적 책임’, ‘면책 조항’ 같은 어려운 용어로 가득하다. 복잡한 약관, 미흡한 개인정보 보호, 유해·불법 콘텐츠 노출, 사이버폭력과 그루밍, AI 기술로 인한 새로운 위험까지. 아동들은 디지털 환경을 매일 경험하는 당사자로서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도 제안했다. 아동 친화적인 ‘쉬운 약관’ 제공, 자극적 콘텐츠 노출 차단 시스템 강화, 온라인 그루밍 규제와 플랫폼 내 아동보호 장치 마련, 딥페이크 성착취물에 대한 법적 대응 강화 등이다.
디지털 환경에서의 아동 보호를 아동 개인의 노력이나 자기조절에만 맡길 수 없다. 현 상황은 유해 콘텐츠 노출을 통제하기 어려운 구조, 과의존을 유도하는 추천 알고리즘, 미흡한 연령 검증, 개인정보 기반 프로파일링까지 플랫폼 설계와 운영 방식에서 비롯되는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동을 배제한 채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은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진정한 보호 체계는 당사자인 아동이 직접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 방안을 제안하며, 함께 변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질 수 있다.
아동들이 직접 만든 이번 보고서는 우리나라의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 심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며, 정부의 디지털 정책과 기업의 플랫폼 운영에 있어서도 중요한 나침반이 되리라 생각한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소피 킬리아즈 위원장은 이번 제7차 협약 심의 대응 아동보고서에 담긴 대한민국 아동 청소년의 목소리를 심의 과정에 확실하게 반영하겠다고 약속했다.
아동이 안전한 디지털 환경 만들어야
이제 정부와 국회, 플랫폼 기업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아동이 직접 참여한 보고서의 목소리에 응답하고, 지금이라도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기 위해 힘써야 한다. 아동이 안전한 디지털 환경을 만드는 일, 그것이야 말로 우리 사회가 앞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책임이자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