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평
미국의 안보전략과 미-대만 무역협상의 딜레마
2025년 미국 국가안보전략(NSS)이 발표되면서 대만과 미국의 무역협상은 단순한 경제협상의 범주를 넘어섰다. NSS는 대만의 첨단기술과 공급망을 미국 국가안보를 지탱하는 핵심자산으로 규정했다. 이로써 양국의 통상관계는 안보와 지정학적 경쟁의 틀 안에 편입됐다.
미-대만 무역협상이 아직 최종 타결에 이르지 않았지만 이번 협상이 NSS의 논리가 직접 작동하는 안보 및 공급망 협상이라는 점은 분명해지고 있다. 관세인하나 시장접근을 넘어 대만의 산업구조와 기술주권을 재편하는 문제로 협상 범위가 확대됐기 때문이다.
2025년 NSS의 특징은 전통적인 군사안보 개념에서 벗어나 반도체와 첨단기술, 그리고 공급망을 국가안보의 핵심요소로 명시했다는 점이다. 이는 미국이 안보를 군사력만으로 유지할 수 없으며 기술과 산업 기반이 핵심이라는 인식전환을 보여준다. 그 결과 대만은 단순한 교역상대를 넘어 미국의 기술패권과 인도태평양 전략을 지탱하는 핵심기지로 재규정되고 있다.
이런 인식 전환은 무역협상 방식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미국은 관세문제를 논의하는 동시에 대만 기업의 대규모 투자와 미국 내 생산 확대 그리고 공급망 이전 등 포괄적 조건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무역협상이 사실상 미국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실행하는 정책수단이 된 셈이다. 대만 입장에서 이는 협상이 곧 미국의 국가안보 전략에 어느 정도까지 편입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과정이 된다.
미 국가안보전략이 바꾼 게임의 규칙
문제는 이러한 미국의 압박이 대만의 산업주권, 오랫동안 쌓아온 산업생태계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점이다. 최근 TSMC가 미국의 ‘미국 내 생산 비중 50%’ 요구에 반대 입장을 밝힌 사례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기업의 비용문제가 아니라 대만의 핵심기술과 산업생태계를 어디에 유지할 것인가의 문제다.
대만의 반도체 경쟁력은 축적된 인력과 연구개발, 그리고 협력 네트워크가 국내에 집중돼 있기에 가능했다. 이 구조가 약화될 경우 산업경쟁력뿐 아니라 안보전략의 중요한 축인 ‘실리콘 방패’의 기능 역시 흔들릴 수 있다.
미-대만 무역협상은 바로 이 지점에서 대만에 중대한 전략적 딜레마를 제기한다. 안보 신뢰를 얻는 대신 산업과 기술을 미국 중심 공급망으로 이전할 것인가, 아니면 일정한 경제적 부담을 감수하고 기술주권과 핵심산업의 자율성을 지킬 것인가의 선택이다.
중요한 점은 협상이 아직 타결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며 이는 대만이 여전히 협상 여지가 있음을 의미한다. 대만은 2025년 NSS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할지, 조정과 제한을 통해 균형점을 찾을지를 결정할 시간적 여유가 있다. 결국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타결의 내용과 조건이다.
이는 대만만의 고민에 그치지 않는다. 대만의 선택은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에 중요한 선례가 된다. 한국 역시 반도체와 배터리 등 전략산업을 둘러싸고 미국의 공급망 재편 압력에 직면해 있다. 대만이 미국의 요구에 순응할 경우 미국은 한국을 비롯한 다른 동맹국에도 유사한 조건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대만이 기술주권을 지키며 협상에서 일정한 균형을 만들어낸다면 한국 역시 산업 자율성을 주장할 외교적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2025년 미국의 NSS는 미-대만 무역협상을 단순한 경제협상에서 주권의 경계를 시험하는 전략협상으로 바꾸어 놓았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협상 타결 여부가 아니라 대만이 어떤 방식과 조건으로 타결하느냐다. 기술주권과 산업기반을 지키는 균형 있는 타결만이 대만의 경제와 안보를 동시에 지킬 수 있으며 그 선택은 동아시아 전체의 산업안보 질서에도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대만이 만들 선례가 한국에도 적용
나아가 이 선택은 기업이나 특정 산업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2025년 NSS가 전제하는 논리는 대만정부의 정책 결정 전반에도 영향을 미친다. 무역협상이 동맹 관리 논리에 종속될 경우 자율적 산업 정책이나 사회적 이해가 충분히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또한 미국이 강조하는 ‘가치동맹’ 담론 역시 재검토가 필요하다. 안보협력이라는 명분 아래 산업 이전과 공급망 재편이 일방적으로 요구된다면 이는 상호호혜적 동맹이라기보다 비대칭적 의존 관계에 가깝다. 특히 미국이 국익과 현실적 이익을 우선하는 실용주의 외교를 분명히 한 이상 이러한 이익 중심 접근이 동맹국의 산업경제적 이해와 충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대만에 가장 중요한 것은 협력 여부가 아니라 자국의 미래를 훼손하지 않는 조건과 한계 속에서 협력할 수 있는 기준을 분명히 세우는 일이다. 그리고 이 물음은 같은 상황에 놓인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