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심력 강해진 리더십…‘초일류 삼성’ 날개 달았다
기술·공존 중시 '이재용식 경영' 본격화
전자 회복 가속도, 바이오 거침없이 성장
16일 종가기준 삼성전자 주가는 10만3400원을 기록했다. 인공지능(AI) 거품론에 전날보다 1.34% 떨어졌지만 ‘10만전자’를 유지했다. 코스피 쌍두마차인 SK하이닉스가 4.33% 하락한 것에 비해 선방한 것이다.
같은 날 국내 바이오 분야 대장주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전날보다 1.07% 오른 179만1000원을 기록했다. 10월 이후 이어진 급등세를 이어갔다.
삼성전자와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삼성 계열사 가운데 맏형과 막내 격이다. 두 회사 시가총액을 합하면 756조5144억원(삼성전자 우선주 포함)으로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의 20% 이상을 차지한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삼성그룹은 맏형 삼성전자가 고전하면서 재계 1위 기업으로서 체면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상황은 급변했다.
그 변곡점은 그룹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리더십 회복이다.
◆10년 굴레 벗고 새로운 출발 = 이 회장은 7월 17일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에 대해 대법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지난 10년 동안 시달려온 사법리스크라는 굴레를 털어냈다. 총수인 이 회장이 많게는 1년에 100차례 법정에 출석하는 동안 삼성 리더십은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
사법리스크를 벗어난 이후 이 회장은 현장방문과 글로벌 네크워크 복원 등으로 책임경영에 나섰다. 최근 삼성전자가 비상조직으로 운영해 온 ‘사업지원TF’를 8년 만에 정식 조직인 ‘사업지원실’로 전환한 것은 비상체제를 정상화하고 책임경영을 하겠다는 이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 회장은 인수합병(M&A)을 통한 경쟁력 강화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 2016년 10월 삼성전자 등기이사에 오른 후 전장·오디오 회사 하만의 M&A 계약 협상을 주도해 총 9조원 규모 계약을 성사시켰다. 그후 사법리스크 심화로 M&A 공백기가 길었다. 하지만 올해 2월 2심, 7월 상고심에서 무죄가 선고되면서 M&A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미국 마시모의 오디오 사업부를 3억5000만달러(약 50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같은 달 유럽 최대 공조기업 플랙트를 약 2조4000억원에 인수했다.
◆종합반도체 약점 이 회장 글로벌 네트워크로 극복 = 그룹 내 맏형인 삼성전자의 경쟁력 회복에는 이 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예전부터 이 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여러 현안을 해결해 왔다.
이 회장은 2014년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를 직접 만나 로열티 분쟁에 대한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이후 양사는 2015년 스마트폰 운영체계(OS) 관련 특허 분쟁을 모두 종료하고 합의했다.
이 회장은 구글의 래리 페이지, 에릭 슈밋 등과도 직접 만나 2014년 삼성전자와 구글의 크로스 라이선스 계약을 성사시켰다. 이 회장은 ‘구글 캠프’ 창립 초기부터 참여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다져왔다.
이 회장은 2014년에는 선밸리 콘퍼런스에서 팀 쿡 애플 CEO를 만나 미국 이외 지역에서의 특허 소송을 철회하기로 합의했다. 이 회장은 미국 투자은행 앨런&컴퍼니가 주관하는 전세계 IT·미디어 거물들의 모임 선밸리 콘퍼런스에도 2002년부터 2016년까지 참석했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대 이동통신사인 버라이즌과 8조원대 5G 통신장비 수주 계약을 체결하고, 일본 NTT도코모, KDDI에 납품할 수 있었던 것도 이 회장의 글로벌 인맥이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이 회장은 버라이즌과의 계약을 위해서도 한스 베스트베리 버라이즌 CEO와 수 차례 화상통화를 하는 등 적극적으로 영업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이 골드만삭스 뉴욕 본사를 찾아가 프리젠테이션(PT)을 한 뒤 골드만 삭스 직원 업무용 전화를 갤럭시로 사용하게 만든 것도 잘 알려진 일화다.
최근에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의 네트워크를 통해 테슬라의 차세대 AI칩을 생산하는 23조원 규모 파운드리 계약을 이끌어 냈다.
테슬라와의 계약은 고객과 경쟁관계가 될 수 있는 종합반도체 회사의 약점을 이 회장의 인맥을 통해 극복한 대표적인 사례다.
◆바이오에서 만든‘제2반도체 신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삼성의 미래를 상징하는 기업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시가총액은 16일 기준 약 82조8608억원으로 2016년 10조원과 비교하면 8배 넘게 성장했다. 2010년 직원 12명이 삼성서울병원 지하 실험실에서 시작한 기업이 15년 만에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경쟁력있는 바이오 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재계에선 삼성바이오로직스 성장이 삼성전자가 1983년 반도체 산업에 진출한 이후 10년만인 1992년에 세계 D램 시장 1위에 올라선 것에 준하는 성공역사를 쓴 것으로 평가한다.
재계에 따르면 삼성의 바이오산업 태동은 이재용 회장의 결단이 큰 역할을 했다.
삼성은 2000년대 후반 신수종 사업을 발굴하며 그동안 한 번도 도전해 본 적이 없는 ‘미지의 영역’인 바이오사업 진출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경영진들이 섣불리 사업 진출 결정을 못 내리고 있던 상황에서 이재용 회장은 신사업팀 보고를 듣고 “검토 해보라”며 힘을 실어줬다.
특히 이 회장은 폭넓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바이오사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2023년 이 회장은 누바 아페얀 플래그십 파이어니어링 CEO, 크리스토퍼 비에바허 바이오젠 CEO 등과 만나 바이오사업 경쟁력 강화와 신사업 발굴을 위한 상호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바이오 시장은 기술 장벽이 높아 M&A, 조인트벤처(JV)를 비롯해 글로벌 바이오 기업과의 협업이 특히 중요한 분야다.
한편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오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25년 10월 바이오 위탁 개발·생산(CDMO) 사업과 삼성바이오에피스가 담당한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완전히 분리하기로 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건희 선대회장은 30여년 전 신경영을 통해 삼성의 체질을 바꾸고 반도체라는 미래 먹거리를 창출했다”면서 “이재용 회장은 제2의 반도체라 불리는 바이오 사업을 직접 일구며 승어부(勝於父)를 실현해 나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고성수 기자 ssgo@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