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교육현장, 국정교과서 이렇게 생각한다 ②
1948년 건국 '자기모순'에 빠지는 길
국정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촛불민심에 놀라 국정화 강행에서 한 발을 뺐던 교육부가 현장 검토본 공개를 강행하고 사실상 국정교과서 발간을 공식화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계와 학교 현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교육부가 박근혜정부와 국민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시작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내일신문은 주요 쟁점들에 대한 학계와 교사들의 의견을 연재한다. <편집자주>
국정 교과서 문제와 함께 역사 논쟁이 식지 않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뜨거운 감자는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볼 것이냐 '대한민국 수립'으로 볼 것이냐 하는 문제이다. 이는 일부 세력이 주장하는 '건국절' 주장과 맞물려 사회적 파장을 불러오고 있다.
그러나 '1948년 건국' 주장은 역사 사실 측면이나 역사 교육 측면에서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교육부 장관은 2015 교육과정 국정교과서 현장 검토본을 내면서 "역사교과서는 학생들이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있는 역사관과 올바른 국가관을 가질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 개발했다"고 설명했고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은 "특정 이념으로 치우친 편향성을 바로 잡고, 실사구시의 자세로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만들어 청소년들에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를 보여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정교과서 개발과 거기에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명시하는 것 자체가 이미 특정 이념에 치우친 편향성이며 청소년들에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를 보여주지 못하는 자기모순에 빠지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통상 교과서를 집필할 때에는 해당 분야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를 반영하되 연구자들이 대부분 동의하는 수준에서 서술하고 있다. 이는 교과서가 개인의 논문이 아니라 집단 지성이 산물이며 보편성을 지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현대사를 연구하는 연구자 대부분은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보는데 크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이미 국정교과서와 검인정 교과서에서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표기했으며 이것은 교육부의 집필 지침이었던 것이다.
보수정권 교육부 집필지침도 인정
살펴보면 1919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수립이 곧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것은 당시 우리 민족쁜 아니라 국제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었다. 우리 역사의 자부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의 무단 식민통치 탄압을 뚫고 거족적으로 일어난 3.1 운동의 결과 국내외에 여러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 여러 임시 정부들은 곧바로 대한민국 임시정(1919. 4. 13 임시정부 수립 선포) 하나로 통합됐다. 이로서 민족의 독립을 주도할 통합 정부가 마련된 셈이다.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과 독립군들은 이후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웠다. 우리 민족의 역사적 자존감을 높여준 일대 금자탑이다.
임시 정부는 이후 부침을 거듭했지만 광복되는 시기까지 중국 정부와 협력해 일제에 저항했다. 그리고 2차 대전 종전 후 열린 카이로 선언에서 국제사회는 '한국의 독립'을 약속함으로써 한국(의 임시정부)을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모스크바 3상 회의 주요 논의점도 '대한민국 수립'이 아니라 국가를 재건할 수 있도록 '대한민국의 정부 수립'을 돕자는 것이었다. 이미 대한민국을 하나의 민족 국가로 인정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 속에서 1948년 8월 15일 이승만 정부도 '정부 수립 축하식'을 거행한 것이다. 더욱이 이승만 정부는 1948년 9월 1일 발행한 '대한민국 관보 제1호'에 발행일을 '대한민국 30년 9월 1일'이라고 규정, 건국원년을 1919년으로 공식화했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현행 헌법 전문에는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계승한 정부'라는 것을 천명하고 있다. 이를 인정하고 자랑하는 것이야 말로 분단 시대에 우리가 역사적 적자(嫡子)임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왜, 이승만 스스로가 공인한 정부 수립을 일부 세력들은 갑자기 '1948년 건국'이라고 강변하고 나서며 위헌적인 주장을 하는 것일까? 1948년을 건국의 시점으로 하게 되면 일제 식민 통치에 맞서 독립 운동에 헌신 했던 사람들은 존재하지도 않은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을 한 것이 된다. 반대로 친일파들의 반민족적 행위는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또 미래의 청소년들에게 우리 역사의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하는 것이 역사 교육의 목표라고 강변하는 사람들 스스로 역사적 자부심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럼에도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이라고 강변하는 사람들은 의식 속에는 어쩌면 식민 통치 시기의 친일 행적을 지우고 싶은 계략이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반민족행위 면죄부 받으려는가
이번 국정 교과서의 해당 부분 서술을 들여다보면 '제헌 헌법에 따라 이승만과 이시영을 정·부통령으로 선출하고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여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이 수립되었다'는 난해한 문장이 들어있다. 같은 페이지의 이승만 정부 수립 축하식 기념사진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지금까지 교육부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교육과정 평가원 등 국가 기관에서 시행한 한국사 시험에서는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규정했다. 한 번도 '대한민국 수립'으로 규정한 적은 없다. 이번 국정교과서를 책임진 국편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하는 길목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소모적인 논쟁에 빠져 있는지, 그리고 그 책임은 어디에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식민 통치라는 암울한 시기에도 국가와 민족의 독립을 위한 지난한 몸부림들이 있었다는 자랑스러운 역사를 당당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교실을 지키고 싶다.
이건홍 백영고 수석교사
['학계·교육현장, 국정교과서 이렇게 생각한다' 연재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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