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교육현장, 국정교과서 이렇게 생각한다 ③
기념하려는 과욕 버려야 더 오래 기억된다
국정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촛불민심에 놀라 국정화 강행에서 한 발을 뺐던 교육부가 현장 검토본 공개를 강행하고 사실상 국정교과서 발간을 공식화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계와 학교 현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교육부가 박근혜정부와 국민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시작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내일신문은 주요 쟁점들에 대한 학계와 교사들의 의견을 연재한다. <편집자주>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호감도는 역대 대통령 중 1~2위를 오갈 정도로 안정적이다.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며 장기집권을 했지만, 정부주도의 강력한 경제개발 시행으로 절대 가난을 탈피하게 하는데 공헌했다는 국민적 평가가 중첩된 결과일 것이다. 위와 같은 평가는 현재의 검정 역사교과서에도 균형있게 실려 있어 학생들은 박정희정부 시기를 있는 그대로 배우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의 딸 박근혜 대통령이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한 뒤 공개한 한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은 수많은 오류와 단순한 사실 나열로 과연 교과서가 맞나하는 의심을 갖게한다. 그 가운데 아버지 박정희정부 시기에 관한 서술이 유난히 눈에 띤다.
5000년 역사 중 18년에 9쪽 할애
한국사 교과서 안에 '박정희 위인전'을 배치한 듯한 느낌. 292쪽 밖에 안 되는 교과서에 5000년 역사를 구겨 넣으면서도 박정희정부 시기 18년에 9쪽을 할애하는 파격. 그중 현대사가 총 50쪽 분량임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현대사의 18%를 박정희 시대로 채우고 있다. 국정교과서는 근현대사의 비율을 대폭 줄이면서도 박정희 시기의 비중은 오히려 늘려 잡은 것이다.
박정희 시대 서술의 문제점은 분량에 그치지 않는다. 유신체제를 '독재'로 규정하기는 했지만 독재체제에 맞섰던 민주화 운동의 역사는 축소되거나 교묘하게 왜곡되었다. 한일협정과 삼선개헌, 유신체제에 맞섰던 민주화 운동의 주체는 대학생과 일부 재야인사로 한정되어 시민과 언론, 야당은 사라져 버렸다. 1.21 사태의 김신조와 종로경찰 서장 이름, 10.26 사태의 차지철과 김재규의 이름까지 제시하지만 정작 유신 반대 운동에 앞장섰던 장준하는 등장하지 않는다.
새마을 운동 서술도 문제다. 새마을 운동은 정부가 '주도'했음에도 정부의 '독려'로 마치 자발적으로 전개된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산림녹화를 위해 낙엽 채취를 금지하게 했다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넘친다.
경제학 서적에 나올 용어로 가득
박정희 시기 정부 주도의 산업화는 이미 충분히 평가 받아왔다. 그러나 이 시기의 경제 발전 과정을 수치를 들어 세세히 설명한 서술은 이 책이 과연 역사교과서인가를 의심하게 한다. 검정교과서는 이 시기의 지속적인 경제 성장률에 주목하지만 이 책은 유독 수출 증가율을 강조한다. 또한 '중간 원자재' '차입', '후발성의 이익' 등 경제학 서적에나 등장할 경제 용어들이 역사교과서를 장식하고 있다. 경제학자를 동원하여 역사 교과서를 서술하면서 생인 부작용이다. 산업화의 주역이었던 노동자들은 조연으로 밀려났다.
전태일을 서술하기는 했지만 왜 전태일이 분신에 이르게 되었는지는 합리적으로 설명되어 있지 않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 이야기는 겨우 4줄 서술로 끝이다. 사진까지 제시했던 검정교과서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박정희 시대에 노동자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과 저항은 '고속 성장의 그늘'이란 용어로 정리하면서 '새마을 운동'보다도 적게 서술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박정희 위인전은 재벌을 미화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가로 유일한과 이병철, 정주영을 일화를 엮어 소개하며 교과서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들이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가임은 모두가 안다. 그러나 국민들은 2016년 12월 대기업 총수 9명이 국정 감사장에 증인으로 불려나와 정경유착을 추궁 받는 광경을 목격하고 있다. 5공 청문회 당시 정주영은 정경유착을 고백하기도 하였다. 이들이 주역인 전경련은 정경유착의 창구 역할을 하다가 해체 위기에 몰렸다. 정경련 산하기관인 자유경제원은 이름에 걸맞지 않게 검정교과서에 대한 좌편향 공격을 일삼기도 하였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기업가라고 해서 학생들이 역사교과서에서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님을 그들의 아들과 손자들이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얼마 전 타계한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는 자신을 기리는 기념물이나 동상을 세우지 말고, 자신의 이름을 딴 거리나 건물을 만들지 말라고 생전에 유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눈에 보이는 기념물이 없다 해도, 역사교과서에 그가 등장하지 않는다 해도 그는 쿠바인들의 가슴에 그대로 남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쓸데없는 상상을 해본다. 만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의 딸 박근혜가 쓴 국정교과서를 읽는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조한경 중원고 역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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