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건설 현장이 위태롭다
안전규정 안지키고, 외국인노동자 급증
건설업 사망자, 전체 산업현장 사망자의 절반 차지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 늘면서, 안전교육 어려워져
고용부 겨울철 현장 점검, 973곳 중 339곳 사법처리
건설 현장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안전 규칙이 강화되고 안전 관련 사회적 인식은 향상되고 있지만 사망 사고 등 중대재해는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다.
문제는 사고의 많은 경우가 가장 기초적인 안전 규정을 지키지 않은데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건설 현장 인력 구조도 골치다. 안전관리시스템 재정비와 건설 인력의 현실을 감안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건설현장 사망자 해마다 증가 = 건설현장 사망자 수는 늘어나고 있다. 2015년 437명이던 전국 건설현장 사망자 수는 2016년 499명으로 늘어났다. 건설현장 사망자는 다른 산업현장 사망자 수를 압도한다. 2015년 전체 산업현장 사망자(955명)의 45.8%(437명), 2016년 사망자(969명)의 51.5%(499명)가 건설현장에서 발생했다.
서울시 상황도 마찬가지다. 2015년 산업현장 사망자 103명 중 43명(41.7%)이 건설 현장에서 발생했다. 2016년엔 사망자가 56명으로 늘었다.
사고는 늘고 있지만 건설 현장의 안전관리 체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지난달 12일 방문한 서울 강북 지역의 한 건설 현장에서도 여러 건의 법규 위반이 발견됐다.
최근 시와 발주처에서 안전용구 착용을 강화하는 캠페인을 벌인 덕인지 모든 작업자가 안전모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서울시 관계자가 작업장 주변을 둘러보자 이내 위반 사항이 적발됐다. 고정 보관함에 보관해야할 가스통이 여러 작업 도구들과 함께 방치돼 있었다. 작업장 주변 청소 상태도 고르지 않았다. 시 관계자는 "청소와 정돈이 잘 되어 있지 않으면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서류 점검에서 드러났다. 안전 관리를 위해 제출, 구비해야할 서류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안전 규정을 현장 소장이 아예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2015년 개정된 건설기술진흥법에 따라 모든 건설 현장은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하고 발주처의 승인을 받아야 공사가 가능하며 그에 따른 정기안전점검도 실시해야 한다. 소장은 "현장 소장 경력만 20년이 넘지만 안전관리계획을 승인까지 받아야 하는 줄 몰랐다"며 "법규를 꼼꼼히 따지는 우리 현장이 몰랐다면 다른 현장은 더 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 관계자에 따르면 안전관리계획 승인받지 않으면 1차 적발 때는 '계도'에 그치지만 계속 될 경우 2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형이 내려질 수 있는 중대 과실이다.
건설현장의 안전불감증은 실제로 여전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1월 8일부터 12월 20일까지 겨울철 대형사고 위험이 높은 전국 973개 건설 현장에 대한 현장 감독을 실시해 339곳 사업주를 사법처리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화재 위험장소에서 용접을 하거나 갈탄을 피워 콘크리트 굳히기 작업을 하는 등 질식 예방조치를 소홀히 한 건설 현장이 대거 포함됐다. 추락위험에 대비해 작업 발판을 설치하지 않는 등 사고위험을 방치한 97곳에는 작업중지 명령이 내려졌다. 안전교육이나 건강진단을 하지 않은 651곳은 시정지시와 함께 과태료를 부과했다.
◆외국인 노동자, 건설 안전 복병으로 = 갈수록 늘어나는 건설 현장의 외국인 노동자 비율은 건설 안전의 또다른 골치거리다. 불법 체류 외국인이 많은 탓에 정확한 통계조차 없지만 건설업계에선 절반 이상 건설 인력이 외국인 노동자라고 추산한다. 하지만 이는 철근, 목수 등 전문 건설인력을 포함했을 때 이야기다. 서울시 관계자와 현장소장들에 따르면 착공 초기나 공사 마무리 시점에 많이 필요한 일용직 잡부의 경우 무려 90% 이상이 외국인 노동자다. 외국인 노동자의 안전 사고 가능성을 높이는 것은 신분 문제가 크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의하면 합법적 취업 비자(E-9)로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 노동자는 2016년 기준 23만3082명이며 이중 9843명이 건설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돼있다. 하지만 건설현장 관계자들은 이 숫자에 대해 "현실은 한참 다르다"며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어림잡아 수십만명 수준일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불법체류자가 많아 정확한 집계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황 파악이 어려우니 지원 제도가 있어도 쓸모가 없다. 작업자들에 대한 안전교육도 이뤄지기 어렵다.
건설 현장에서는 일용직의 경우 일일이 외국인 등록증을 체크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교육 이수증을 검사하는 수준이다. 이수증은 4시간 교육만 이수하면 받을 수 있고 한번 받으면 평생 사용이 가능하다. 건설업 종사자들은 기본적인 안전용구만 갖춰도 대다수 건설 안전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신분 문제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안전용구 지급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 현장소장은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는 일용직이다. 하루 일하고 떠나는 이들이 많은데 매번 안전용구를 지급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라며 "안전모는 가격이 싸기 때문에 수차례 지급이 가능하지만 켤레당 15만원씩 하는 안전화는 매번 지급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제도적 한계도 존재한다. 현행법은 안전모, 안전장갑 등 안전용구 구입비를 안전관리비에 포함해 발주처에 청구할 수 있게 하고 있다. 하지만 총 공사비를 놓고 발주처의 눈치를 봐야 하는 현장 하청업체 입장에선 안전용구를 마음껏 구매하기가 어렵다. 안전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공사비 100억원 이하 소형 사업장일수록 문제가 심각하다. 총 공사비에서 안전관리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높이기 어렵기 때문에 악순환이 발생하는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 수의 증가와 건설 현장의 악순환은 실제 사고율 증가로 이어졌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3년 1151건이던 외국인 노동자 산재 신청건수는 2014년 1401건, 2015년 1778건, 2016년 2023건 등으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회사, 노동자 모두 안전 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안전관리시스템 재정비에 나서야 한다"며 "정부도 외국인 노동자 실상 등 현장 파악에 주력하고 관련 대책 마련에 시급히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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