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노역 중 원폭투하 … 공장 철문에 깔려"

2019-04-05 12:11:20 게재

일제징용 피해자들, 4일 전범 일본기업 상대로 추가 소송

원고 4명은 강제동원 피해자, 27명은 피해자 유족

올해로 102세가 된 김한수씨는 전매청에 다니면 징용당하지 않는다는 소문을 듣고 연백군 전매지국에 취직했다. 김씨는 1944년 8월쯤, 전매청에서 필요한 목재를 싣기 위해 회사트럭으로 연안읍에 갔다가 집에 연락도 못한 채, 청년 200여명과 함께 강제징용을 당했다. 부산, 시모노세키를 거쳐 미쓰비시조선소에 도착한 김씨는 7일간의 군사훈련을 받고 사이와이·후쿠다 숙소에서 열악한 식사와 생활환경, 강압적인 규율 속에서 생활했다. 김씨는 작업장에서 선박에 사용하는 대형철판을 구부리다가 체인이 끊어져 왼쪽 엄지발가락을 다쳤다. 병가를 받지 못한 김씨는 발가락이 계란만큼 부은 상태로 계속 일할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1945년 8월 나가사키 원폭투하 때 폭심지에서 3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공장에서 작업하다가 피폭 당했지만, 공장의 대형철문 밑에 깔려 목에 부상을 입었다. 김씨는 1945년 10월 동료들과 함께 구한 소형 목선을 타고 귀국했다.

◆1인당 최대 1억원 손해배상 청구 = 광복 74년을 앞둔 시점에서 강제징용의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 기업들을 상대로 추가 소송을 제기했다. 김씨 등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 등 31명은 4일, 일본제철(구신일철주금), 후지코시·미쓰비시중공업, 일본코크스공업주식회사 등을 상대로 1인당 최대 1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일제 강제징용 집단 손해배상 접수 시작 | 지난달 25일 오전 광주시청 1층 민원실에 차려진 '일제 노무동원 피해자 손해배상 집단소송 접수처'에서 피해자 유가족들의 소송 신청과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회장 김호철 변호사)의 변호사 12명으로 구성된 '강제동원소송대리인단'이 소송을 맡았다.

민변 등은 이날 오전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원고인 김용화씨는 일본정부에 대해 "인류가 용납할 수 없는 죄악에 대해 마땅히 보상하고 사과하지 않는다면, 한일관계는 정상화될 수 없고 일본은 야만국가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미쓰이광산·만다탄광 강제 노동 = 민변에 따르면, 일본코크스공업주식회사(구 미쓰이광산주식회사)가 운영한 미쓰이광산은 일제강점기 시기 일본 최대의 탄광인 미이케탄광을 운영하면서, 조선인들을 강제연행하고 노동을 강제했다.

추가 소송 원고의 부친인 피해자 고 박 모씨는 1943년 9월부터 일본 후쿠오카현 소재 미쓰이 미이케 광업소 만다 탄광에서 강제노동을 강요당했고, 1945년 10월 사망했다.

피해자의 유족들은 2006년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자진상규명위원회에서 구체적 증거를 통해 위 피해자의 피해사실을 인정받은 바 있다.

민변은 "이번 추가 소송을 통해 미쓰이광산의 강제동원 사실을 입증하고, 미쓰이광산을 실질적으로 승계한 일본코크스공업주식회사에 대해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책임을 묻고자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일본 전범 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대한민국이 사건에 대한 국제재판관할권을 가진다는 점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1965년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 △피고인 일본 전범 기업의 소멸시효 항변은 권리남용에 해당돼 허용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민변은 "강제동원에 책임 있는 그 어떤 주체도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나 배상에 나서지 않는 현실은 여전하다"며 "일본제철을 포함한 가해 기업들은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 이후에도 이를 인정하지 않은 채 사법부를 통해 확인된 손해배상채무의 임의 변제에 나서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민변, 지속적 소송 제기할 것" = 민변은 대법원 판결 선고 직후 2018년 12월 일제에 의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추가 소송을 대리하고자 '강제동원소송대리인단'을 구성했고, 대리인단과 민족문제연구소 및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등 시민사회는, 지난 2019년 1월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설명회를 개죄한 이래 두 달 여에 걸쳐 200여명이 넘는 강제동원 피해자 및 그 유족들과 상담하면서 추가 소송을 준비해 왔다.

민변은 "대리인단은 일본제철, 미쓰비시중공업, 후지코시 뿐만 아니라, 일본 가해 기업의 대상을 확대하면서 지속적으로 소송을 제기해 나갈 것"이라며 "일제강점기 시대 광범위하게 자행된 강제노동에 대해 일본 정부의 가해 기업의 공식적인 사과와 자발적인 피해보상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에게 대법원 판결과 후속 소송 상황을 고지함으로써 강제동원 피해자의 헌법상 기본권인 재판청구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 달라"고 강조했다.

안성열 기자 son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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