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사회적 논란 있는 책, 어떻게 서비스해야 할까
정보접근 보장하는 '지적자유 원칙' 따르는 것이 기본 … 특정 서비스 제한시 "절차 성문화 필요"
#지난 12일 '반일 종족주의' 저자들은 "이영훈 교수 등 '반일 종족주의' 도서의 저자 5인은 도서에 불법적인 비방 스티커를 부착한 파주시중앙도서관 직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이에 앞서 파주시중앙도서관은 2019년 '반일 종족주의' 책 표지에 다음과 같은 안내문구를 붙인 바 있다.
"본 도서의 역사적 관점에 대해 많은 논란이 일고 있는 책입니다. 다음의 책도 참고하셔서 함께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개발 없는 개발/허수열 저/은행나무 발행/2016 △식민지근대화론은 무엇이 문제인가/허수열 저, 독립기념관 발행, 2017 △일제 식민지 정책과 식민지근대화론 비판/신용하 저, 문학과지성사 발행, 2017 △고쳐 쓴 한국현대사/강만길 저, 창비 발행, 2018"
이승만학당이 7월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파주시중앙도서관은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혔다. "해당 도서 구입 관련 찬반논란 민원이 있어 '파주시 장서소위원회' 심의 안건으로 상정하여 그 결과에 의거, 해당 도서 구입을 결정하고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이 공론화되기를 바라는 취지에서 안내문구 부착 서비스를 시행하였으며 현재는 컬렉션 종료 후 절차에 따라 해당도서의 안내문구 스티커를 제거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2월 성북구립도서관 홈페이지에는 "성북구립도서관은 한예찬씨가 참여한 모든 책의 열람을 제한합니다"라는 공지가 게시됐다.
성북구립도서관의 공지는 다음과 같다. "한예찬씨 도서에 대한 논의를 위해 성북구립도서관 사서들이 모여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사실, 도서관이 할 수 있는 조치는 간단합니다. 하지만 도서관에서 책을 의도적으로 옮기는 이유에 대한 고민은 깊었습니다. (중략) 0. 이번 조치는 보편적인 기준이 아니며 개별사건에 대한 특수한 기준으로 적용합니다. 이번 사건은 아동 대상 성범죄이며 대상 도서 또한 어린이들이 주로 읽는 책이기에 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판단했습니다. 1. 성북구립도서관은 한예찬씨와 관련된 모든 책을 자료실에서 서고로 이동합니다. 2. 성북구립도서관은 명백한 피해자가 존재하는 이 사건에 있어 논란을 피하기보다는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 공감하고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성북구립도서관은 가해자의 책이 계속 남아있음으로써 사건이 계속 거론되거나 소비될 수 있는 가능성을 고민합니다. 4. 성북구립도서관은 해당 자료들이 없더라도 대체가능한 많은 어린이책을 소장 중입니다. 5. 한예찬씨가 제작에 관여한 도서 중 책의 내용에 대한 고민과 추가 분석이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성북구립도서관은 이번 사건에 있어 선제적 행동을 취한 뒤 필요에 따라 개별 도서에 대한 추가 검토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하략)
도서관들은 기본적으로 이용자들의 정보 접근을 보장하는 '지적자유 원칙'을 따른다. 지적자유 원칙 아래, 공공도서관들은 사회적 논란이 되는 책에 대한 서비스 방안을 두고 고민하는 모양새다.
◆지적자유 원칙 = 사서들은 도서 구입과 열람 관련 지적자유 원칙을 따른다. 미국의 경우 지적자유 매뉴얼을 통해 지적자유 원칙을 선언했다. 미국도서관협회 지적자유사무국이 편찬한 '지적자유 매뉴얼'에 따르면 지적자유란 용어는 모든 개인이 제한 없이 모든 관점에서 정보를 찾고 받을 권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주로 사용된다. 미국도서관협회는 1939년 이와 관련된 '도서관권리선언'을 채택, 시대의 변화에 맞춰 개정해 왔다. "도서와 기타 도서관 자료는 도서관이 봉사하는 지역사회 모든 주민들의 관심 정보 계몽을 위해 제공되어야 한다. 자료의 창작에 기여한 사람의 출생 경력 견해를 이유로 자료가 배제되어서는 안된다" "도서관은 정보와 계몽을 제공하는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검열을 거부해야 한다"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한국도서관협회(도협)가 '도서관인 윤리선언'을 통해 지적자유 원칙을 밝혔다. "도서관인은 도서관 이용자의 신념, 성별, 연령, 장애, 인종, 사회적 지위 등을 이유로 그 이용을 차별하지 아니한다" "도서관인은 도서관서비스를 제공함에 있어서 자신의 편견을 배제하고 정보접근을 저해하는 일체의 검열에 반대한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전문성 바탕, 도서관 경영" = 파주시중앙도서관은 '사서의 수서권'을 강조했다. 파주시중앙도서관에 따르면 강제노동과 위안부 관련,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확정판결에 반하는 내용이 담긴 '반일 종족주의'는 사서가 작성한 구입목록에는 없었다. 한정된 예산으로 장서를 구성해야 하기 때문에 확정판결에 반하는, 사회적 논란이 되는 책까지 구입할 수는 없었다는 것. 그러나 이용자가 희망도서 신청을 하자 사회적 논란이 되는 책의 구입여부를 심의하는 장서소위원회를 열고 파주시 18개 도서관 중 5개 도서관에 비치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조치하면 상호대차서비스를 통해 파주시 내 다른 도서관 이용자들도 '반일 종족주의'를 대출할 수 있다. 이후 균형적 시각을 위해 함께 읽을 책을 안내해 비치하기로 했다.
윤명희 파주시중앙도서관 관장은 "해당 책에 부착된 스티커의 내용은 역사적 관점에 많은 논란이 있음을 알리고 다른 관점이 있는 책을 단순히 소개하고 있는 것에 불과해 이용을 금지하거나 저자의 인격권을 중대하게 침해한 것은 아니다"면서 "또 이는 도서관법에 명시된 적합한 시설 및 자료를 갖춰야 하는 도서관 고유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실천"이라고 말했다. 이어 "도서관 현장은 그동안 사회적, 정치적으로 논란이 되는 책들이 출간될 때마다 여론에 휘청대 왔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성으로 논란이 되는 책들의 구입여부를 심의하는 장서소위원회를 설치하고 회의 결과에 따라 책의 비치여부와 서비스 방안을 모색해왔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정현태 청주대 교수는 "'반일 종족주의'는 사회적으로 논란이 돼 왔던 책"이라면서 "도서관은 이용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 공간이며 사서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일정한 기준에 따라 도서관을 경영한다. ('반일 종족주의'에 대한 안내문구 부착은) 이용자들에게 여러 의견을 고르게 제공하며 올바른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예찬씨 저서 열람 제한 관련, 이진우 성북문화재단 도서관부장은 "성북구립도서관은 (한예찬씨 저서의 열람 제한 이후) 2회에 걸쳐 지적자유에 대한 교육 및 토론을 진행했다"면서 "성북구립도서관은 검열하지 않는 것으로 원칙적 결정을 내렸다. 앞으로 장서개발정책에 관련 조항을 넣고 운영위원회에 안건으로 올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도협 "논의 진행 예정" = 현장 도서관에서 특정 도서의 열람을 제한하는 것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경우, 이는 인종차별, LGBT 논란 등과 연관된다. 이에 미국도서관협회 지적자유사무국은 해마다 공공도서관으로부터 '도전받는 자료'에 대한 정보를 접수, 분석해 발표하고 있다. 배경재 동덕여대 교수는 "사서들이 가능하면 지적자유 원칙을 지켜야 하지만 현장과 이론은 다를 수 있다"면서 "(특정 도서에 열람 제한을 해야 하는 경우) 이용자 의견을 수렴하고 장서선정위원회, 운영위원회를 거쳐 결정하는 등 절차를 성문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 사안들에 대한 도협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도협은 산하에 지적자유위원회가 있었으나 현 직제에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협은 "협회 지적자유선언문의 가치를 준수하기 위해 지적자유에 대한 TF를 만들어 합리적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