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재(교보생명) 회장-FI(재무적 투자자) 분쟁, 다시 원점으로

2021-09-08 11:27:14 게재

ICC, 주당 40만9912원 인정 안해

양측, 풋옵션 행사가격 다시 정해야

2019년 3월부터 2년 반에 걸쳐 진행된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과 교보생명의 재무적 투자자(FI)인 어피니티 컨소시엄 간의 풋옵션 관련 국제중재사건에서 국제상업회의소(ICC)가 풋옵션 가격을 확정하지 않은 채 판정을 마무리했다. 이에 대해 신 회장 측은 어피니티 컨소시엄이 주장한 풋옵션 가격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에 의미를 두고 있고, 어피니티 측은 풋옵션 행사 권리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에 방점을 찍고 장외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이 사건은 2011년 대우인터내셔널이 자사 보유 교보생명 지분 24%를 매각하기로 하자 신 회장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FI들을 '백기사'로 끌어들인 것이 발단이 됐다. 신 회장이 백기사로 불러들인 어피니티 컨소시엄(어피니티 에쿼티 파트너스, IMM PE, 베어링 PE, 싱가포르투자청)은 2012년 대우인터내셔널로부터 교보생명 지분 24%를 주당 24만5000원의 가격(총 1조2054억원)으로 매입하면서 신 회장과 풋옵션 조항이 포함된 주주간 계약을 체결했다.

이 주주간 계약에 따르면 2015년 9월 30일까지 교보생명의 기업공개(IPO)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어피니티 컨소시엄의 교보생명 지분을 신 회장 또는 신 회장이 지정한 제3자가 매수하도록 했다. 풋옵션 가격에 대해서는 양 당사자가 1명씩 선임하는 감정평가기관의 감정에 따라 정하기로 했다.

이후 교보생명의 상장은 주주간 계약에서 정한 일정 내에 진행되지 못했고 어피니티 컨소시엄은 2018년 10월 신 회장에 대해 풋옵션을 행사했다. 풋옵션 가격 설정을 위해 어피니티는 딜로이트 안진을 감정평가기관으로 선임했고, 딜로이트 안진은 어피니티 컨소시엄이 보유하고 있는 교보생명 주식의 가치를 주당 40만9912원으로 평가했다.

2조원이 넘는 풋옵션 행사에 대해 신 회장은 응하지 않고 평가기관도 선임하지 않자 어피니티 컨소시엄은 2019년 3월에 신 회장이 딜로이트 안진의 평가 가격인 주당 40만9912원에 어피니티 컨소시엄의 교보생명 풋옵션 주식을 매수할 것을 구하는 중재를 ICC에 제기했다.

ICC 산하 중재판정부는 지난 6일 신 회장이 평가기관을 선임하지 않은 것은 주주간 계약 위반이라고 인정했지만 일방 당사자가 감정평가법인을 선임하지 않을 경우 어떻게 풋옵션 가격을 정하는지 전혀 규정하고 있지 않으므로 딜로이트 안진의 감정평가보고서만을 토대로 풋옵션 가격을 산정할 수는 없으며 일방적인 매매청구가 인정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어피니티의 풋옵션 권리는 인정하면서도 어피니티 측에서만 제시한 풋옵션 가격은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따라 신 회장과 어피니티 양측은 풋옵션 가격 산정을 위해 다시 법적 공방을 벌여야 할 상황에 놓였다.

앞서 신 회장 측은 풋옵션의 적법성과 유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응하지 않았고 어피니티 측이 요구하는 풋옵션 가격도 과도하다고 주장해왔다. 이와 관련해 신 회장 측은 딜로이트 안진이 주가 산출기간을 의도적으로 잘못 적용해, 풋옵션 행사가격을 과다하게 산출했다며 검찰에 고발, 현재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이번 중재의 핵심 쟁점은 '어피니티 컨소시엄의 풋옵션 행사에 따른 매매대금 청구'였고 이것은 전부 기각됐다"면서 "중재판정부가 주주간 분쟁에서 신 회장의 손을 들어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어피니티 측은 "신 회장 측이 '계약 상 풋옵션 조항이 무효이기 때문에 본인의 가치평가기관 선임 절차를 밟지 않았다'는 요지로 변론했지만 판정부는 계약 상의 풋옵션 조항이 무효라는 주장이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면서 "이번 판정 결과에 따라 신 회장 측은 더 이상 풋옵션에 따른 의무를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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