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윤태환 루트에너지 대표

“에너지전환 새 길을 여는 뿌리는 지역주민”

2026-06-01 13:00:01 게재

‘보상받는 피해자’에서 ‘투자하는 설계자’로 … 인공지능 플랫폼으로 문턱 낮추고 마을공동체 연결도

“에너지전환의 열쇠는 주민입니다. 태양광 풍력 등 주민이 사업 주체로 서면 그 지역은 과거로 되돌릴 수 없어요. 돈이나 기술이 없어서 에너지전환을 못하는 게 아닙니다.“

5월 15일 윤태환 루트에너지 대표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이른바 ‘지역 수용성 솔루션’기업인 루트에너지는 2013년부터 주민참여형 재생에너지 시장을 개척 중이다.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위한 큰 과제 중 하나는 지역 주민 수용성 확보다. 정부 역시 지역사회가 참여하는 재생에너지 개발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 중이지만 ‘서류상 참여자’에 불과한 곳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윤 대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발점부터 달리했다. 발전소 인근 주민이 사업에 참여하면 정부가 수익을 더 얹어주는 방식 대신 실제 주민들이 자기 자본으로 투자에 나서도록 했다.

“재생에너지가 늘어날수록 공간 제약이 있기 때문에 민가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어요. 자연히 갈등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지죠. 그만큼 주민들이 능동적인 주체로 재생에너지 사업에 참여하는 게 중요해요. ‘수동적인 피해자’로 보상을 받는 게 아니라 개인 돈을 투자해 ‘공동 설계자’이자 ‘투자자’로 정체성의 변화가 필수죠.”

윤 대표는 인터뷰 내내 ‘자발성’과 ‘투명성’을 강조했다. 그래야 행여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겨도 지역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업 안정성 측면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사항이다. 윤 대표와의 인터뷰는 서울 성동구 서울숲 인근 루트에너지에서 이뤄졌다.

윤태환 루트에너지 대표. 사진 김아영 기자

태양광은 기본 풍력까지 주민참여형으로

주민참여형 재생에너지 사업은 대부분 태양광에 집중된다. 초기 투자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고 사업 구조 특성상 주민들이 접근하기 쉽기 때문이다. 반면 풍력은 사업 규모가 크고 이해관계자가 복잡해 주민참여 모델을 적용하기가 까다롭다. 하지만 루트에너지의 사업 영역은 태양광은 물론 풍력까지 다양하다. 루트에너지는 2020년 태백 가덕산에서 국내 최초로 풍력발전 주민참여형 사업 인증을 받았다.

“태백 가덕산 풍력발전사업과 영덕 호지마을 풍력발전사업은 주민 한 분 한 분이 직접 돈을 내 사업에 참여했어요. 정부가 모든 투자금을 융자해 주는 방식과는 달랐죠. 단순히 자금 조달 방식의 문제가 아니에요. 한 예로 1000만원을 투자하려면 배우자를 설득해야 하는 경우가 많죠. 그 과정에서 왜 이 사업인지, 안정성은 무엇인지 등 스스로 투자 목적을 정리하게 되고 듣는 사람도 설득이 됩니다. 개인 자본이 들어가는 순간 사업의 본질을 보기 시작하는 거죠.”

반면 보상금만 받는 구조로 접근한 지역은 다르다는 게 윤 대표의 설명이다.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든 말든 돈만 더 받으면 되는 식으로 갈등이 일어나기 십상이라는 지적이다.

“길 하나 차이로 보상금을 월 10만원과 월 100만원을 각각 받았다면 두 사람은 자연히 싸우게 됩니다. 사업의 본질을 잊어버린 채 남이 더 돈을 받는 게 배 아파서 혹은 다음 사업에서 더 많은 보상금을 요구하기 위해 싸우죠. 단순 현금 보상 방식은 지역사회에 갈등의 씨앗이 됩니다. 투자자로 참여한 주민들은 사업이 궤도에 오른 뒤 오히려 ‘신규 사업을 더 해주면 안 되나요’ ‘우리 마을 혹은 문중에 땅이 남는데 더 재생에너지 사업을 할 수 없을까요’라며 추가 참여를 요청하곤 합니다.”

루트에너지는 재생에너지 개발사와 지역 주민을 연결하는 플랫폼을 운영하며, 주민이 소액으로 직접 발전사업에 투자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한다. 단순한 이익 배분을 넘어 △주민협의회 △민관협의회 등 사업 초기 단계부터 지역사회가 의사결정에 참여하도록 돕는 것이 핵심 역할이다. 태양광·풍력을 중심으로 전국 수십 개 사업지에서 커뮤니티 펀드를 운용하며, 에너지전환과 지역 자본소득을 동시에 실현하는 모델을 확산시키는 중이다.

루트에너지가 관여한 재생에너지 사업의 약정용량은 5.8GW에 달한다. 연계된 커뮤니티 펀드 규모는 약 1조8000억원이다. 이 중 주민들이 주민참여 방식으로 직접 뛰어든 시민펀드 모집금액만 누적 2300억원이다. 윤 대표는 이 수치가 단순한 사업 실적이 아니라 에너지 자본소득 시대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한다.

“선진국이 될수록 노동소득보다 자본소득 비율이 높아집니다. 고령화와 지역 인구감소가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 에너지소득은 새로운 자본소득이 될 수 있어요. 약 20년 동안 매년 10% 소득을 얻어 가는 모델을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이렇게 되면 에너지전환은 전문가만의 영역이 아니라 국민과 함께 가는 과정으로 인식될 수 있죠. 자연히 에너지전환 속도도 빨라질 수밖에요.”

사업 설계 단계부터 주민 의견 들어야

윤 대표는 지역사회의 자본소득을 높이는 구조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절차적 정당성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주민이 진짜 투자자로 나서려면 자기 자본을 투입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처음부터 사업 설계에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줘야 한다는 게 윤 대표의 지론이다. 발전소를 다 지어놓고 주민 동의를 구하러 다니는 지금의 방식으로는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 보급이 빨라질수록 이 문제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모든 결정을 해 놓고 공청회를 열어 주민 의견을 듣는 방식은 당연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사업 기획 단계에서부터 민간협의회를 구성하고 진행 과정을 투명하게 공유합니다. 이미 갈등이 불거진 사업의 경우에도 다시 처음부터 이 과정을 밟습니다. 당장은 6개월 혹은 그 이상 지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3~5년 혹은 그 이상의 장기적인 사업 지연을 막을 수 있어요. 제주 한림해상풍력이나 밀양 송전탑 등이 각각 9년, 10년 지연된 것도 이 과정이 미흡했기 때문이죠. 송전탑이든 인공지능 데이터센터든 민관협의회를 먼저 시작하는 구조로 제도화할 수 있다면 각종 기후환경 갈등은 한결 덜 할 겁니다.”

인공지능 햇빛소득마을 플랫폼 전국 확대

주민참여형 에너지전환. 말처럼 간단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전환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한 윤 대표는 주민참여형 사업에 1만원부터 소액 커뮤니티 펀딩을 접목해 주민이 실제 투자자로 서는 새로운 사업 모델을 만들었다. 기존에 없던 시장을 하나하나 개척해 온 터라 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이제 시장이 형성됐고 좀 쉬어 가도 좋으련만 그는 또 다른 도전에 한창이다. 바로 ‘인공지능 기반 햇빛소득마을 플랫폼’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일이다.

“주소만 입력하면 해당 부지가 태양광 사업에 적합한지를 알 수 있는 서비스를 준비 중입니다. 태양광 사업 적합도부터 △규제 현황 △일사량 △주민 여론까지 9단계로 진단해 주죠. 관련 신청서류 등도 만들어주고요. 마을 이장님 등 주민들이 큰 전문성 없이도 사업 검토부터 신청까지 한 번에 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지방자치단체 관리자는 관내 발전소 현황과 주민 배당을 한눈에 볼 수 있고 조합원들은 수익금 지출 내역까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어요. 사업은 최대한 쉽게 접근하고 수익을 낼 수 있으면서도 불신이 생기지 않도록 원스톱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죠.”

윤 대표는 전남 곡성군과 함께 인공지능 기반 햇빛소득마을 플랫폼을 구축 중이다. 이를 시작으로 영광 부안 당진 태안 등 여러 지자체들과 협업을 벌일 계획이다. 그의 꿈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에너지 플랫폼을 넘어 지역 주민을 연결하는 마을 공동체 실뿌리 플랫폼으로 확장하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햇빛소득마을 플랫폼은 소프트웨어를 설치하지 않고 인터넷으로 접속해 쓰는 구독형 서비스 방식으로 선보일 겁니다. 매월 일정 금액을 내고 플랫폼을 이용하는 식이죠. 본인이 원하는 서비스만 선택해서 이용할 수도 있어요.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연결이 되면 이 플랫폼에서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는 더 다양해질 수 있죠. 실뿌리가 연결돼 새로운 생태계를 만드는 것처럼 △정부 지원사업 매칭 △건강관리 서비스 △구인구직 등 지역 주민들이 원하는 서비스들로 사업 영역을 확대해 나갈 수 있습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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